주간동아 681

2009.04.14

대한민국 동명이인들 반갑거나 황당하거나

  • 이기호 antigiho@hanmail.net

    입력2009-04-10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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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동명이인들 반갑거나 황당하거나
    ● 요즘 이메일함을 열어보기가 겁난다. 스팸 메일이니, 고지서 메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그런 것들이야 좀 번거롭기는 해도 제목만 보고 바로 삭제할 수 있으니, 그 정도를 가지고 엄살떨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 이름 석 자를 수취인으로 하는 소녀 혹은 소년들의 이메일이다. 대부분 고소 취하를 읍소하는, 메일을 읽는 내내 마음이 짠해지는 메일들. 그 메일들을 열어보기가 겁이 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사정은 이렇다. 나와 동명이인인 만화가 한 분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분의 만화는 인터넷에서 꽤 인기가 있어, 학생들이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무단으로 ‘퍼간’ 듯했다. 저작권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 없는 학생들이니 죄의식 없이 자신의 홈페이지로 담아왔을 터. 한데 어느 날, 만화가 분이 변호사를 동원해 그 학생들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모양이었다. 합의금 얼마를 내지 않으면 정식재판으로 갈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식의 통보가 학생들에게 갔고, 당황한 학생들이 만화가 분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메일을 보냈는데, 하필이면 그게 주로 나에게 온 것이다(내 이메일 주소가 포털에 노출된 까닭인 것 같다. ‘주간동아’도 그 부분에서 단단히 한몫했다).

    전후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만화가 분이 잘했다 잘못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열어본 학생들의 이메일은 그저 단순한 실수다, 그 문제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합의금을 좀 깎아달라, 공부도 안 되고 미치겠다, 라는 식으로 구구절절 채워져 있었다. 읽어보면 모두 딱한 처지였고, 안쓰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니 내가 어쩌겠는가. 안 읽었으면 모를까, 뻔히 딱한 사정인 걸 알면서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 이것이 잘못 배달된 메일이라고 일일이 답장을 해줘야만 했다(성품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송사에 관련된 일이라 모른 척하기가 찜찜했기 때문이었다). 내 답장을 읽은 학생들이 실망한 어투로 ‘그럼, 전 이제 어떡해야 하죠?’라는 메일을 다시 보내오고…. 아무튼 요사이 그렇게 ‘저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메일만 계속 쓰고 있다.

    동명이인 덕분에 생긴 문제인데, 사실 그 정도는 내 친구 ‘김영삼’ 군이 겪은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말 ‘깜도 안 되는’ 일이다. 군의 부친께서 어쩌자고 그런 이름을 아들에게 내렸는지 알 순 없으나, 어쨌든 그 덕에 내 친구 ‘김영삼’은 툭하면 교련 선생님(당시는 군사정부 시절이었다)에게 불려나가 일장훈시를 듣거나(하여간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들은 다 빨갱이다, 라는 식의 훈시였다), 수학 선생님의 독점적인 지목을 받아 거의 매일 칠판 앞으로 나가 문제를 풀어야 했다(그래서 그는 매일 맞았다).

    동명이인들이여, 부디 착하게 살아주기를∼



    동명이인 정치인께서 대통령에 당선, 이제 내 친구 ‘김영삼’도 호시절을 누리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연이어 터지는 게이트와 자녀 비리 덕택에 친구는 계속 선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IMF 결정타가 찾아왔을 때, 내 친구 ‘김영삼’은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되었다. 취직이 안 되는 것도, 물가가 오르는 것도 내 친구 ‘김영삼’의 탓인 양, 그가 끼는 술자리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그러니까 내 친구 ‘김영삼’이 연상작용을 일으킨 탓일 게다. 실제로 내 친구 ‘김영삼’은 다른 친구와 그 문제로 드잡이를 벌인 적도 있다). 내 친구 ‘김영삼’ 역시 오랫동안 취직이 되지 않았고, 그것을 이름 탓으로 여긴 그는 남몰래 개명 신청을 하기도 했다(물론 군의 아버지 반대로 무산됐지만). 동명이인 정치인께서 야인으로 돌아가시고, 그래서 한시름 놓을까 싶었던 내 친구는 요 근래도 그분이 간간이 하는 정치적 발언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제발 조용히 지내셨으면 하는 것이 십수 년간 고통받은 내 친구의 작은 바람이다.

    그 친구의 일이 생각나, 인터넷 미니홈피 사이트에 들어가 현직 대통령의 이름으로 ‘사람 찾기’를 해보았다. 검색된 사람은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이었다(물론 다 남자였다). 그들 모두의 미니홈피를 방문해보니 방명록이 없는 이는 두 사람이었다(그중 한 명은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의 방명록에는 이런 식의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이름이 참 깜찍하시네요. 고생 많으시겠어요’ ‘욕먹느라 욕보십니다’ ‘방명록 닫으시는 게 어떠세요? 보기 안쓰러워서’ 등. 그들 네 명의 동명이인 남자들이 이름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전적으로 나머지 한 명의 손에 달려 있는 듯하다. 그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나쁜 쪽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일이나 현재까지는 내 친구 ‘김영삼’이 당한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것 같다. 뭐, 사건사고가 많았으니까.

    사실 이름이야 같아도 상관없고,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름이란, 어찌 됐든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작은 포장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이름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 이름과 이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라도 광주에 사는 ‘이기호’와 서울에 사는 ‘이기호’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부분인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나의 동명이인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

    우울하게도 요즘은 그 차이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만 같다. 상도동에 사는 ‘김철수’와 신림동에 사는 ‘김철수’가 모두 한 가지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는 느낌이다. 차이가 없는 동명이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의미의 ‘도플갱어’가 아니겠는가. ‘도플갱어’가 서로 만나면 어찌되는가. 답은 모두 알고 있을 터. 우리는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도플갱어’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찬찬히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동명이인 따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열심히 내게 메일을 보내오는 소년 소녀들에게 답장을 해주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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