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1

2009.04.14

사진에 찍히면 ‘전문시위꾼’?

경찰 200여 명 선정 기준 논란 … 지적장애인 보호자 없이 수사·구속도

  • 김승훈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hunnam@seoul.co.kr

    입력2009-04-10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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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찍히면 ‘전문시위꾼’?

    2월 7일 열린 ‘용산 철거민 희생자 범국민 추모대회’.

    서울 경찰이 총력을 기울이는 ‘전문시위꾼’ 검거 드라이브를 놓고 근거가 미약한 과잉·표적 수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경찰은 용산참사 100일(4월29일)과 촛불시위 1주년을 앞두고 전문시위꾼 200여 명을 추적, 체포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와 인력을 투입했다. 경찰은 3월7일 용산참사 추모 시가행진 과정에서 일어난 경찰관 폭행사건 이후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이 ‘전문시위꾼 200여 명 추적 발본색원’을 주문하자 매우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3월10일 서울경찰청(이하 서울청)은 청 내 504호실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뒤 ‘용산참사 이후 야간에 도로를 불법 점거하고 지속적인 불법시위를 벌이는 전문시위꾼 200여 명을 일망타진하는 동시에 배후세력을 색출’하기로 했다.

    수사본부는 서울청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서울청 소속 수사팀, 사이버범죄 수사팀, 광역수사대 소속의 베테랑 경찰관들을 비롯해, 혜화서·남대문서·영등포서·종로서 등 일선 경찰서의 시위 전문경찰관 등 102명으로 구성됐다. 수사본부는 그동안 200여 명의 전문시위꾼 중 94명을 특정해 3명을 구속하고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신원이 확인된 70명에게는 출석을 요구했다. 나머지 100여 명의 신원도 파악해 끝까지 추적, 검거할 계획이다.

    그런데 경찰의 ‘전문시위꾼 200여 명’ 선정 기준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수사본부의 한 경찰은 “지난해 촛불집회 때부터 모은 사진 등 채증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시위 현장에 집회 성격과 상관없이 매번 참가해 마지막까지 남는 200여 명이 있었다. 이들을 전문시위꾼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시민 중 무작위로 200여 명을 추려 전문시위꾼으로 특정했다”며 “표적수사를 넘어 ‘아니면 말고’식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난생처음 시위했는데 출두 통보”



    하지만 용산참사 추모집회와 관련해 경찰이 ‘전문시위꾼’으로 파악한 이들 중에는 처음 시위에 참가했다거나 용산참사 관련 집회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포함돼 있다. 올 3월 대학에 입학한 여대생 이모(19) 씨 등 3명은 3월7일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참가했다. 이들은 “난생처음 시위에 나가봤다”고 말한다. 철거민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한편으론 대학생이 된 이후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들은 집회 당일 평화적 시가행진에 동참하던 중 서울 종로5가 부근에서 경찰이 진압작전을 펼치자 인도로 비켜섰다. 물리적 저항을 하거나 경찰에 맞선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경찰에서 소환장이 날아왔다. 경찰관 폭행사건이 있었던 3월7일 불법집회 관련 조사를 벌이던 중 얼굴이 찍힌 채증사진을 확보했으니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 이씨는 “전문시위꾼 운운하며 당일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인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 같은 신출내기까지 입건할지는 몰랐다”면서 “경찰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몰라 두렵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박모(34) 씨도 억울한 상황을 겪었다고 말한다. 박씨는 3월7일 시위는 물론, 지금껏 단 한 번도 용산참사 관련 추모집회에 참가한 바 없다. 그런데 소환장이 날아왔다. 3월7일 용산참사 불법집회에 참가했으니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담당 경찰관은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참가했다는 증거자료(채증사진)는 내놓지 않고, 지난해 여름 촛불집회 때 기륭전자 비정규직노조 집회에 나간 채증사진을 보여주며 ‘이번 집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느냐’고 윽박질렀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원인 박씨는 용산참사 추모집회가 있던 시간에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기륭전자 앞 노조 천막농성 현장에 있었다. 그는 “경찰 폭행건으로 용산참사를 덮으려는 경찰의 의도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면서 “특히 촛불 1주년을 앞두고 일어날 대규모 집회의 싹을 자르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 경찰 영장신청 ‘소명 부족’ 반려

    사진에 찍히면 ‘전문시위꾼’?

    경찰을 폭행하고 빼앗은 신용카드를 사용한 혐의로 구속된 박모 씨.

    심지어 경찰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도 구속했다. 지적장애 3급인 임모(23) 씨는 3월7일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참가해 시가행진을 벌이던 중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인근 인도에서 검거돼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관의 무전기를 빼앗고 폭행한 혐의다. 임씨는 “성동서에서 조사받을 때 무전기를 빼앗긴 했어도 경찰을 때리진 않았다. 무전기를 빼앗긴 경찰이 무전기로 얼굴을 찌르고 화를 내며 ‘폭행’ 진술을 강요했고, 조서도 경찰을 폭행한 것처럼 꾸민 뒤 지장을 찍게 했다”고 토로했다. 다음 날 혜화경찰서로 옮겨진 임씨는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받지 못했다. 경찰이 보호자나 변호인 등의 동석 권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조서를 작성한 뒤 ‘거짓으로 말하면 유죄가 된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찰은 “장애인인 줄은 알았지만 진술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변호사 선임, 보호자 동석 권리도 설명했고 본인이 부인해도 시위대가 경찰을 때리는 현장에 있었던 만큼 폭행 혐의를 물을 수 있다. 더욱이 정황상 경찰을 때리지 않고 어떻게 무전기를 빼앗을 수 있었겠나”라고 반박했다. 임씨는 3월10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지적장애 1~3급은 겉으로는 비장애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는 질문자의 의도에 맞게 순종적으로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구대 특수교육과 박찬웅 교수는 “강압적으로 ‘너 이러이러한 짓을 했지?’라고 윽박지르면 ‘네’라고 답한다”면서 “지적장애인은 전문 지식이나 판별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진술을 증거로 인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경찰 폭행에 가담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한 이들 중에는 검찰에서 영장이 반려된 사람도 있다. 경찰은 홍모(33) 씨를 상대로 3월7일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참가해 종로, 영등포 등지의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 폭행에 가담하는 등 불법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홍씨를 영장신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임태훈 인권법률지원팀장은 “순수하게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전문시위꾼으로 몰고 반정부 세력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찰이 할 일이 아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저 하루하루의 삶이 절박한 이들일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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