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2009.03.31

편견과 동거한 3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9-03-27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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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지난 2주간 김춘수의 시 ‘꽃’이 마구 생각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는 3월 둘째 주에 ‘앞머리 탈모’ 가발을 썼습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 주제인 만큼 탈모인에 대한 편견과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한 결혼정보업체 팀장에게 취재 의도를 알리고 전혀 사정을 모르는 커플매니저들과 만났습니다. 클럽에도 가고 재래시장에도 들렀습니다.

    첫날, ‘변신’한 아빠를 보고 깜짝 놀란 아들이 아내 등 뒤로 숨는 것을 보고 웃었습니다. 다음 날, 흘깃흘깃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틀 전까지 기자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더라고요. 머리숱이 없어졌을 뿐인데 기자는 동정과 개그, 호기심의 대상이 되더니 정력가로, 탐욕스러운 재력가로, 결혼이 어려운 안타까운 사람으로 ‘변신’을 거듭하더라고요.

    식당에서는 ‘저기 대머리 아저씨’로 불렸고, 여학생들은 반원을 그리며 지나쳤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머리 얘기를 빠뜨리지 않더군요. 웃으며 계속 듣다 보니 웬걸, 다른 얘기를 못하겠더군요. 노래방에선 설운도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탈모는 그렇게 30년 넘게 형성해온 기자의 자아를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편견과 동거한 3일
    60년 전 미국 백인 남성 존 하워드 그리핀은 흑인 변장을 하고 50일간 남부 여행을 했다죠? 여행을 마치며 그는 “오 하나님, 세상 저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지요? 미국은 추한 모습을 드러낸 어떤 이상한 나라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당시와 비교 대상은 아니겠지만, 대머리를 우스갯거리로 여기는 현재의 우리 사회도 ‘이상한 사회’ 아닐까요? 물론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관심 혹은 호기심이려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모인에게는 헤쳐나가야 할 큰 장애였습니다. “아~ 그 대머리 친구?”라고 말한 적이 있는 독자라면 이젠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기자가 2주간 김춘수의 ‘꽃’을 흥얼거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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