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9

2009.03.31

쥐구멍에 볕 들 날 … 없다!

연극 ‘밑바닥에서’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03-27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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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구멍에 볕 들 날 … 없다!

    막심 고리키 원작에 재미를 더한 ‘밑바닥에서’.

    연극 ‘밑바닥에서’는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라는 속담을 무색하게 만드는 비관적인 비전을 보여준다.

    도둑, 창녀, 사기꾼, 알코올 중독자, 죽음을 앞둔 환자 등이 모여 사는 동굴 같은 지하방에 루카라는 떠돌이 노인이 나타난다. 그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인생이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북돋는다. 사람들은 루카의 말에 ‘낚여서’ 기대감을 갖게 되지만,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로 인한 극심한 실망감으로 이전보다 몇 배의 고통을 더 느낀다.

    루카가 절망으로 이끄는 주요 인물은 페페르, 나타샤, 바실리카다. 페페르는 집주인의 아내인 바실리카와 공공연한 내연 관계지만, 그녀의 동생인 나타샤와 서로 좋아하는 삼각관계를 이룬다.

    페페르는 루카의 말을 듣고 나타샤와 함께 도망가 새 삶을 꾸리려 시도하는데, 때마침 나타난 바실리카 때문에 실패한다. 나아가 그는 바실리카의 계획에 말려들어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본 나타샤는 미쳐버린다.

    이 작품의 비관적인 주제를 확고히 하는 인물이 또 있는데, 바로 알코올 중독자다. 왕년에 배우였던 그는 루카의 말을 듣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결국 실망감에 자살한다. 그가 목을 매단 모습은 극의 말미를 장식한다.



    루카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운명, 혹은 초월적인 존재를 상징한다. 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때는 이미 지하방이 절망으로 ‘초토화’된 이후다. 선한 외양의 루카가 ‘악의적인’ 의도를 품고 있음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낄낄대며 들려주는 스토리에서 알 수 있다. 알레고리라 할 수 있는 이 옛날이야기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가 자살을 택하는 사람의 것이다.

    막심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는 20세기 초, 기근에 시달리던 러시아 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전체적으로 원작을 재해석했다기보다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서 연출적인 재미를 추가했다.

    김수로가 페페르 역을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도둑의 면모는 잘 보여주지 못했으나 나이에 비해 순수한 남자의 모습으로 정감을 이끌어냈다. 시체 곁에도 가지 못하며 벌벌 떠는 모습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아쉬운 것은 그 소심한 면이 그의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02-556-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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