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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양문형 냉장고 대신 일반형, 골프 대신 자전거

중산층 경기 측정 ‘이마트지수’ … 매출액 아닌 판매수량으로 산정해 소비자 경기 반영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양문형 냉장고 대신 일반형, 골프 대신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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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배럴당 100~150달러에서 고공비행하고 생필품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던 지난해 상반기, 국내에선 다소 모순된 경제현상이 나타났다.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는 경제주체들의 하소연이 터져나왔지만, 국민의 최종 소비시장인 유통업체는 매출 호조세를 보였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비자평가지수가 2008년 1월 75.9에서 6월 45.3으로 하락세가 뚜렷한 반면,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매달 5~10%씩 매출이 증가했다. 조사가 잘못된 걸까, 국민이 엄살을 부린 걸까.

원인은 매출액을 ‘장바구니 경기’의 지표로 삼았다는 데 있다. 판매량×가격으로 산정되는 매출액은 실제 소비가 줄었어도 가격이 오르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때문에 매출액만으로 경기 호불황을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지난해 상반기 발생한 모순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신세계가 최근 개발한 ‘이마트지수’는 매출액 중심의 데이터가 갖는 약점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자들과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희소식으로 여겨진다. 이마트지수는 실제 소비량, 즉 판매수량을 중심으로 설계된 데이터다. 즉 특정 품목의 소비가 늘고 줄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 소비자 경기의 호불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10월 구학서 부회장의 지시로 사내 전략컨설팅 조직인 유통산업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마트지수 개발에 나섰다. 사실 그동안 이마트는 정부 부처나 한국은행, 언론 등으로부터 일반 국민의 ‘장바구니 사정’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왔다.‘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나 삼성경제연구소의 소비자태도지수가 나빠지는데, 왜 이마트 매출액은 더 늘었는가’ 등의 질문도 자주 제기됐다. 이런 배경에서 구 부회장이 “소비자 경기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정부 정책에 일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한 것. 미국의 월마트나 영국의 테스코 등 다국적 대형 마트들은 이마트지수와 같은 자사 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 경기지수를 내놓지 않는다.

이마트, 전체 소비의 9% 차지



장중호 유통산업연구소장은 “이마트 점포가 120개를 넘어가고 지역별로도 골고루 분포하게 되면서 우리의 판매 데이터가 국내 소비자 경기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 것도 이마트지수 개발의 계기”라고 말했다. 국내 소매시장 규모는 180조원가량이다. 이 중 대형마트 시장 규모는 32조원으로, 이마트는 34%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이마트 측은 국내 전체 소비의 9%가 이마트를 통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마트는 연간 2억1000만 건의 구매건수를 올린다. 판매되는 상품 수로는 21억여 개에 이른다(2008년 기준).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신세계는 이마트가 판매하는 476개 전 상품군의 분기별 소비량 변화 유형을 분석,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증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지수를 개발했다. 이마트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높으면 전년보다 소비자 경기가 호전됐음을, 100보다 낮으면 소비자 경기가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지수 산출의 대상이 되는 표준 점포로는 개점한 지 최소 3년 이상 된 50개 점포가 인구분포에 비례해 선정됐다.

이마트지수에는 표준 점포들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건의 수량이 포함된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현장 조사의 한계 때문에 특정 품목의 특정 상품 가격을 일정 기간마다 반복적으로 조사하는 것과 달리, 특정 품목에 속하는 모든 제품의 판매수량을 센다. 이는 모든 판매 데이터가 전산화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경영지원실 김윤섭 과장은 “특정 제품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을 경우 경쟁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했거나 멜라민 파동과 같은 이슈 발생으로 소비량이 급격히 변할 수 있어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이마트지수 발표 이후 경제계 곳곳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수가 나와 반갑다는 인사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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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마트지수는 분기별로 발표될 예정이다. 4월 중순으로 예정된 첫 분기별 발표에 앞서 신세계는 2008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의 이마트지수를 시범 분석했다. 그 결과 1~2월 이마트지수는 94.3으로 2008년 1분기 102.5보다 8.2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 참조). 특히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기 전에 국내 소비자들이 지갑 단속에 나섰음이 확인됐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마트지수는 하위 지수로 의·식·주·문화생활지수를 별도 분석한다. 경기 호불황 여부가 가계소비의 어느 부문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지수는 문화생활지수. 2008년 1분기 104.7에서 88.7로 16포인트나 하락했다. 그러나 이마트 측은 당소 60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한 문화생활지수가 의외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소장은 “골프용품이 90.4로 낮아진 대신 자전거(134.2) 낚시용품(117.0) 등산용품(107.7) 등 저가형 품목 소비가 증가한 덕분”이라며 “웰빙에 대한 욕구가 경기 불황 때문에 저가형으로 달라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현실 반영 매우 긍정적

‘저가형 소비’의 경향은 다른 품목에서도 나타났다(그래프 참조). 양문형(75.9)보다는 일반형(83.9) 냉장고를, 드럼형(65.2)보다는 일반형(83.9) 세탁기를, 수입과일(76.2)보다는 국산과일(97.9)을, 원두커피(87.3)보다는 믹스커피(98.0)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그리고 남성의류(92.5)나 여성의류(93.0)보다는 신사복(73.7)이, 맥주(92.4)나 소주(89.4)보다는 와인(78.2)이 불황의 타격을 더 받았다.

웬만한 불황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상품군으로 알려진 유·아동 관련 상품도 이번 불황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완구지수가 전년보다 26.5포인트 하락한 73.5를 기록한 것. 유·아동 의류지수(82.5), 베이비 케어 상품(88.4), 기저귀(89.6) 등도 저조한 소비량을 나타냈다. 반면 웰빙 및 안전한 식품은 불황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유기농 식품과 홍삼 인삼 등 건강 관련 상품 지수는 각각 112.6과 109.4로 2008년 1분기보다 높아졌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마트지수를 환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소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유통업계 현실을 반영하는 지표가 나온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세부 품목에 대한 소비동향을 파악할 수 있어 앞으로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수석연구원은 “후행지수인 이마트지수는 선행지수인 소비자심리지수, 소비자태도지수와 함께 소비자 경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상호 보완이 될 것”이라며 “특히 품목별 판매수량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장바구니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마트지수가 중산층 경기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09.03.31 679호 (p58~59)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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