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3

2009.02.17

삶에 정착할 수 없는 불치병의 서식처, 그곳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9-02-11 1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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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정착할 수 없는 불치병의 서식처, 그곳

    서울 이화여대 앞 헌책방 뿌리와 새싹.

    리처드 부스라는 사나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헌책방을 드나들며 살았고 지금은 아예 헌책방의 도시, 그 작은 왕국의 ‘군주’를 자처하며 살고 있다. 1962년 옥스퍼드 대학을 마쳤는데, ‘연구는 케임브리지가 하고 통치는 옥스퍼드가 한다’는 그쪽의 상례와 달리 리처드 부스는 갓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웨일스의 작은 시골 헤이온와이로 가서 헌책방을 차렸다. 너무나 작은 마을이라 책 읽을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시골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의 영어권 나라를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고서와 헌책을 모아 헤이온와이로 옮겨놓았다. 영어로 공부를 하거나 뭔가 지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얻지 못했을 때 웨일스의 작은 마을 헤이온와이로 가야 했다. 마을은 헌책으로 인해 유명해지고 커졌다. 세계 최대의 헌책방 서점이자 헌책방 마을이 된 것이다.

    이제는 그 어떤 학문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나라의 인문정책 행정가들이 찾아가는 곳이 되었고, 떠들썩한 관광지라기보다는 수런거리는 담화들 사이로 소요하고자 하는 느긋한 산책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1977년 4월1일 만우절에 ‘헤이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는, 하지만 그가 옥스퍼드에서 헤이온와이로 갔을 때처럼, 그의 ‘등극’을 비웃던 사람들도 영국의 경직된 관료주의를 풍자하는 그의 장난에 지지를 보냈다.

    자, 이런 ‘유쾌한’ 얘기는 이 정도로 하자. 헌책방 얘기를 꺼냈고, 그것을 기업화해버린 리처드 부스 얘기를 했지만, 우리의 독서 환경과 지식의 풍경은 어느덧 헌책방을 말갛게 소거해버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옛 기억과 마주하는 통로



    박완서 책의 제목을 빌리건대, ‘그 많던 헌책방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 대도시의 허름한 거리와 남루한 골목에는 하나 둘씩 헌책방이 꼭 있었다. 굳이 서울의 옛 청계천 길이나 동인천의 배다리, 혹은 전통 50여 년을 헤아리는 동대구역 근처나 부산 보수동의 골목이 아니더라도 학교 하나 있고 건널목이 있고 시장이 있는 거리면 어디에나 헌책방이 있었다.

    헌책방이 하나 둘씩 사라진다는 것은 그 ‘헌것’ 대신 모조리 ‘새것’으로 갈아치우는 것을 능사로 삼게 된 우리네 삶의 급속한 속도전의 과실이다. 구불구불하던 정한의 길들이 중장비로 반듯하게 펴지고 자연스럽게 펼쳐졌던 건물과 그 속의 가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대신 그 위에 엉거주춤 큰 건물이 세워지고 상가가 들어서면, 헌책방이 있을 만한 공간은 영영 없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전통의 헌책방 거리뿐만 아니라 그나마 몇 군데 헌책방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도심의 헛헛한 시간의 틈을 내어 먼지 쌓인 책들을 보러 가게 되는데, 그것은 책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옛 시간을 더듬기 위해 가는 것이고 그 지나간 시간들이 애틋하게 말을 걸어온 것에 화답하러 가는 길이 된다. 최윤의 단편 회색 눈사람은 실제로 헌책방을 통하여 옛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그 경향이 더욱 심해서 저녁에 인쇄소에 가기 전까지 남아 있는 긴 시간을 버스를 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혹은 그 구간의 상당 부분을 직접 걸어본다든지 하면서 보냈다. 그것은 심심풀이였다기보다는 어떤 성향 같은 것이었으리라. 영원히 삶에 정착할 수 없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서식하는 불치의 병 같은 것 말이다. 나만큼 서울의 구석구석을 많이 걸어본 사람이 있을 것인가. 마치 내가 한번 지나침으로써 그곳이 조금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제는 일부러 찾자고 해도 그것을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지 가망 없어 보이는 헌책방. 그 헌책방을 예나 지금이나 찾아다니는 것은 최윤의 표현처럼 ‘영원히 삶에 정착할 수 없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서식하는 불치의 병 같은 것’이다. 이 불치병은 과거의 애틋한 기억이 남긴 치명적인 상처이기도 하고, 결국은 그 상처의 언저리를 긴 시간 동안 서성거리는 방식으로 자가치유를 하려 했던 후유증이기도 하다.

    최윤은 이 단편에서 ‘나는 이 지상에서 여전히 유령처럼 적을 둔 곳 없이 부유할 뿐’이었다고 쓰고 있거니와, 지금 누군가 헌책방을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하면 그는 이 치명적인 질환에 심하게 걸려든 자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흘러가버린 시간과 추억들, 그것이 헌책방을 통하여 전하는 말을 듣기 위하여 헌책방에 가는 것이다. 회색 눈사람은 그 한 사연을 들려준다.

    삶에 정착할 수 없는 불치병의 서식처, 그곳

    서울 신촌의 공씨책방과 연세대 앞 정은서점, 이대 앞 뿌리와 새싹(왼쪽부터 시계 방향).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답다.

    “대학에서의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교재를 내다 팔고 다음 학기 교재를 구입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여러 번 들락거리던 청계천의 한 헌책방에서 나는 이 무명 저자의 책을 라면 값에 구입했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멀기만 한 까만 장정의 그 책은 ‘동지여, 당신에게 용기가 있거든 두 손을 속박하는 이 책을 던져버리시오. 당신에게 의식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이것마저도 불에 태우시오…’ 뭐 이 비슷한 어조의 선동적인 인용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즈음, 당시에는 금서로 되어 있었던 이런 종류의 책을 헌책방에서 열심히 주워 모으면서 총기라도 수집하는 듯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돈이 떨어지면 언젠가는 다시 내다 팔아야 하는 일종의 저금의 형식이었고 내 자취방을 떠나야 하는 운명의 책들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탐독했다. 그 시절 나는 그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청계천의 헌책방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가난한 학생일 뿐이었다.”

    저 멀리 흘러간 우리의 시간

    아주 사적인 체험을 얘기하자면, 나는 미아리의 헌책방에서 고교 시절을 다 보냈다. 처음에는 버스비를 아껴서 200원, 300원 들고 밤늦도록 책을 뒤적거리고 읽다가 삼중당문고 한 권을 샀다. 그러다가 주인과 짧은 인연이 되어, 그 아저씨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소주라도 한 병 마시고 들어오게 되면, 그 두세 시간 동안 책방의 사환이 됐는데, 그날의 용무가 끝나면 주인은 삼중당문고 두세 권을 집어서 주었다. 나는 그 작고 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제 그런 시간들은 다 물러갔고, 그 헌책방 자리에는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니까 헤이온와이의 리처드 부스는 우리에게 낭만일 뿐이고, 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시간은 저 멀리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문고

    ……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앉던 삼중당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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