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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특파원의 뉴욕 익스플로러

비밀 산타들의 온정 배달

  • 신치영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비밀 산타들의 온정 배달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가 미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지만, 연말이 다가오면서 월가(街)가 자리한 뉴욕 맨해튼과 인근 뉴저지 등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맨해튼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뉴저지 북부 주택가는 일찌감치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놓은 집들이 지나가는 행인과 운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인들은 서로 경쟁하듯 현관과 집 앞 정원을 크리스마스트리, 루돌프 사슴과 썰매, 눈사람 등으로 꾸며놓는다. 밤이면 이런 크리스마스 장식에 달린 수많은 전구가 불빛을 밝히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개중에는 아름다운 장식이 입소문을 타서 밤마다 구경꾼이 몰려드는 동네도 적지 않다.

올해 연말은 경기침체로 미국인들의 생활이 어느 때보다 팍팍해졌기 때문일까. 미국 전역에서 들려오는 ‘비밀 산타(Secret Santa)’들의 활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훈훈하게 하고 있다. ‘비밀 산타’는 짙은 선글라스에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거나 복면을 쓴 채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자, 실업자, 저소득층 등 불우한 이웃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나눠주는 선행을 베푼다.

미국 ‘비밀 산타’의 원조는 1979년부터 2006년까지 크리스마스 때마다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다가 2007년 1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캔자스시티의 사업가 래리 스튜어트 씨.

얼굴 가린 채 거리에서 불우한 이웃들에게 지폐 나눠줘



스튜어트 씨가 ‘비밀 산타’가 된 것은 1979년 12월 어느 식당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드라이브 인’ 식당에 들렀다가 추운 날씨에 외투도 없이 푼돈을 팁으로 받으며 음식을 차로 날라다주는 여종업원을 발견했다. 그가 딱해 보이는 이 여종업원에게 20달러를 팁으로 건네자 그녀는 떨리는 입술로 “이 돈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라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튜어트 씨는 곧바로 은행으로 달려가 200달러를 인출한 뒤 거리에 서서 도움이 필요할 만한 사람들에게 조용히 5달러나 10달러짜리 지폐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케이블TV와 장거리전화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그는 몇 년 전부터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28년 동안 그가 나눠준 돈은 130만 달러(약 19억원)에 이른다. 28년간 정체를 숨겼던 스튜어트 씨는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인 2006년 11월 자신이 바로 비밀 산타임을 공개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선행을 베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의 바람이 통했을까. 지난해 크리스마스부터 미국 전역에서 스튜어트 씨의 유지를 기리는 사람들이 비밀 산타를 자처하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 중에는 스튜어트 씨의 임종을 지켜본 친구도 포함돼 있다. 그는 죽기 직전 “더 이상 비밀 산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 친구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친구는 현재 8명의 비밀 산타를 훈련시킨 뒤 이들과 함께 선행을 베풀고 있다.

또 ‘비밀산타회(The Society of Secret Santas)’라는 기구도 만들어졌다. 비밀 산타가 되려는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등 원조 비밀 산타의 뜻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에서다. 비밀 산타의 온정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에까지 퍼지길 소망한다.



주간동아 2008.12.23 666호 (p70~70)

신치영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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