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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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2004년 헌재 결정문에 있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3-03 17: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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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헌재)는 ‘2004헌나1 대통령(노무현) 탄핵’ 사건을 기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직무 정지 64일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주문은 어떨까. 2월 27일 변론절차가 종결되면서 헌재의 최종 결론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재는 2004년 탄핵심판 당시 약 5만6000자에 이르는 결정문을 통해 대통령 탄핵심판 시 검토할 요소와 판단 기준 등을 꼼꼼히 밝힌 바 있다. 이 결정문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탄핵심판 본질에 대한 헌재의 설명이다. 헌재는 당시 ‘헌법 제65조는 대통령도 탄핵대상 공무원에 포함시킴으로써 비록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어 직접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법질서의 수호를 위해서는 파면될 수 있으며, 파면결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상당한 정치적 혼란조차도 국가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 비용으로 간주하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헌정체제에서 헌재가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할 헌법적 근거를 갖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당시 결정문에서 구체적 판단 내용을 살펴보자. 2004년 탄핵심판에서 국회가 주장한 탄핵소추 사유 중 하나는 최도술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의 금품 수수 등 ‘측근비리’였다. 이에 대해 헌재는 ‘피청구인(노무현 대통령)이 위 최도술 등의 불법자금 수수 등의 행위를 지시·방조하였다거나 기타 불법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소추사유는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헌재는 수사기록 검토와 증인신문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비리에 관련됐는지를 밝히려 했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탄핵 인용 및 기각 결정을 가르는 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4년 탄핵심판 당시 또 하나의 쟁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 중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해당 발언이 선거법 위반임을 확인하면서도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를 말한다’며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당시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할 만한 사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받은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여 뇌물수수, 공금의 횡령 등 부정부패행위를 하는 경우, 공익실현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 명백하게 국익을 해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 등이다. 헌재는 이런 때라면 ‘대통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헌재에 제출한 탄핵소추의결서에 박 대통령의 법률 위반 내용 중 하나로 ‘뇌물죄’를 명시했고, 최근 수사를 마무리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도 박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입건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 측은 관련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대통령 측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이 헌법에 규정된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2004년 탄핵심판 때도 노 대통령 측은 국회가 노 대통령에게 해명이나 진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적법절차’ 위반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적법절차원칙이란 국가공권력이 국민에 대하여 불이익한 결정을 할 때 적용하는 법 원리’라며 ‘이 사건의 경우, 국회의 탄핵소추절차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문제이고,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의하여 사인으로서의 대통령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에 대하여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소추절차에는 직접 적용할 수 없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탄핵소추의결서를 통해 본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헌법 위배

    -국민주권주의(헌법 제1조) 및 대의민주주의(헌법 제67조 제1항)

    -법치국가원칙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헌법준수의무(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

    -직업공무원제도(헌법 제7조)

    -대통령에게 부여된 공무원 임면권(헌법 제78조)

    -평등원칙(헌법 제11조)

    -재산권 보장(헌법 제23조 제1항)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제15조)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헌법 제10조)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사적자치에 기초한

      시장경제질서(헌법 제119조 제1항)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법률 위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죄(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형법 제129조 제1항 또는 제130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

    -강요죄(형법 제324조)

    -공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127조)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헌법재판소(헌재)에 제출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의결서’(소추의결서)에 나온 탄핵소추 사유다.

    이를 뒷받침하는 위헌 행위의 구체적 내용으로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각종 정책 및 인사 문건을 청와대 직원을 시켜 최순실에게 전달하여 누설한 것 △청와대 간부들 및 문화체육관광부의 장, 차관 등을 최순실 등이 추천하거나 최순실 등을 비호하는 사람으로 임명한 것 △청와대 수석비서관 안종범 등을 통하여 최순실 등을 위하여 사기업에게 금품 출연을 강요하여 뇌물을 수수하거나 최순실 등에게 특혜를 주도록 강요하고, 사기업의 임원 인사에 간섭한 것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전횡을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사주에게 압력을 가해 신문사 사장을 퇴임하게 만든 것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중략) 국가적 재난과 위기 상황을 수습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은 것 등 5개를 제시했다.

    또 위법 행위 4개 범주로는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K스포츠 설립·모금 관련 범죄 △롯데그룹에 체육시설 건립비용 75억 원을 부담하도록 강요한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관련 범죄 △정유라 씨 동창 아버지 회사로 알려진 중소기업 관련 의혹 등 최순실 등에 대한 특혜 제공 관련 범죄 △정호성 비서관을 통해 최순실 씨에게 각종 문서를 전달한 문서 유출 및 공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 관련 범죄 등을 밝혔다.

    그러나 위헌 행위의 한 유형인 ‘문서 유출 및 공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이 위법 행위에 다시 포함되는 등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강일원 주심재판관은 지난해 12월 22일 탄핵심판 제1차 준비절차 기일에 탄핵소추 사유를 쟁점별로 재정리하자며 직접 △국민주권주의·법치주의 위반    △대통령 권한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각종 법률 위배 등 5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이날 국회 소추위원단 측이 재판부 권고에 동의해 소추내용을 재정리하면서 재판이 진행됐으나, 2월 22일 대통령 측 대리인은 “강 재판관이 소위 쟁점 정리라는 이름 아래 국회가 불법적 방법으로 소추의결서를 변경하게 하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진행했다”고 주장하며 강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내는 등 뒤늦게 반발했다. 헌재는 이를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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