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북한

김정남 암살이 촉발한 쿠알라룸프루의 물밑 공작

말레이시아 ‘자국 내 북한 공작망 일망타진 / ’ 북한 ‘A급 외교관 보내 체포된 리정철 구하기’

김정남 암살이 촉발한 쿠알라룸프루의 물밑 공작

김정남 암살에 가담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3월 1일 말레이시아 세팡법원에 출석했다. 두 여성은 하나같이 김정남을 살해하려던 게 아니라 TV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을 찍는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전형적인 ‘물색공작’의 희생자다.

공작조직은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려고 종종 최종 실행자를 물색한다. 그때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과 의지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리재남을 조장으로 한 1조는 흐엉, 오종길이 이끄는 2조는 아이샤를 찾아냈다. 흐엉에게는 그가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편승공작’도 했다. 편승할 대상으로는 한류를 선정했다. 물색조는 흐엉과 아이샤가 한류를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해 포섭한 것이다. 경험이 적은 젊은 외국인은 남북한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해외에서 주로 한국인을 만나다 보니 북한인이 접근해도 한국인으로 여기는 점을 노린 것이다.

물색조는 아이샤를 북한에 데려가 관광을 시켜주고 환심을 샀다. 흐엉은 이미 한류에 매료돼 한국인과 접촉하고 있었으니 접근이 더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 돈으로 10여만 원 상당을 주고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며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에서 김정남 얼굴에 VX 가스 원재료를 바르게 했다. 재판에서 쟁점이 될 부분은 두 사람이 김정남 얼굴에 바른 액체의 정체를 미리 알았느냐 여부다.

북한 공작조직은 VX 가스 원액을 둘로 나눴다. 이렇게 하면 VX 가스가 되지 않으니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작조직은 아이샤가 먼저 VX의 반쪽 원료를 김정남 얼굴에 바르고, 이어 흐엉이 나머지를 바르게 했다. 흐엉이 손을 대는 순간 김정남의 얼굴에서 바로 VX 가스가 피어오르더니 김정남은 중독되기 시작한다. 흐엉의 손에서도 VX 가스가 피어올랐을 테니, 그도 중독됐거나 사망했어야 한다.



흐엉이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VX 가스 해독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흐엉은 미리 해독제 처치를 했거나, 행동 후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은 뒤 해독제를 자가 투여했을 수 있다. 해독제 처치를 했다면 흐엉은 김정남 얼굴에 바른 것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게 되니 살인 혐의를 벗기 어려워진다.

좀 더 교묘했다면 북한은 흐엉에게 해독제 처치를 알려주지 않았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흐엉도 사망해 배후가 감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아 김정남의 얼굴에 바른 것이 위험한 물질이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줬다. 북한이 부여한 임무도 증언할 수 있게 됐다. 북한으로부터 버림받은 흐엉이 어떤 증언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널뛰게 될 것이다.  

추방이 결정된 리정철 사건도 논쟁이 되고 있다. 리정철 사건은 북한이 말레이시아에 만든 공작조직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 전망이다. 김정남 사건 보도를 유심히 살펴본 독자라면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암살과 관련됐다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쿠알라룸푸르에 1년 이상 살아온 리정철을 체포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말레이서 도박 및 음란사이트 운영

김정남 암살이 촉발한 쿠알라룸프루의 물밑 공작

2월 28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관에서 리 동일 전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가 넥타이를 바꿔 매고 차 에 오르려 하고 있다.[쿠알라룸푸르 =뉴시스]

북한은 리정철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 했다. 북한은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를 지낸 리동일을 쿠알라룸푸르로 보냈다. 북한은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가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데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로 불려 들어가 주의를 듣는 ‘초치(招致)’까지 당했으니 활동에 제약이 있다고 보고 최상위 외교관인 리동일을 긴급 투입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리정철부터 체포하고, 북한이 리정철을 구하고자 A급 외교관을 급파한 것은 김정남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새로운 공작전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언론이 리정철이 불법도박 및 음란 사이트를 운영했다고 보도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노동자나 주재원 등으로 위장한 사이버 요원을 중국으로 보내 한국어로 된 도박 및 음란 사이트를 운영해왔다. 우연히 한국인이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그들의 개인용 컴퓨터(PC)나 스마트폰을 해킹하거나 악성 댓글을 다는 공작을 한다. 이 중 심각한 것이 해킹인데, 방호벽이 약한 곳은 종종 뚫리곤 한다. 수년 전 한국의 모은행 전산망이 북한 공작조직으로부터 사이버 테러를 당한 바 있다.  

리정철은 말레이시아에서 이와 비슷한 공작을 해왔을 개연성이 높다. 이 때문에 그의 운명에 한국 정보기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식통 A씨는 “말레이시아는 차제에 자국에 구축된 북한 공작망을 다 뽑아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노동자나 학생 등으로 위장한 블랙 요원을 셴양 등 중국 여러 도시로 보내 도박 및 음란 사이트를 운용하며 한국 전산망을 해킹하는 사이버공작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 혹은 다른 나라의 조직폭력배와 연결되면 마약이나 위조달러도 유통해왔다. 이것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에도 북한이 외화벌이를 해온 비법이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 파견된 국가정보원(국정원) 블랙 요원들은 이를 차단하는 노력을 해왔다. 블랙 요원들이 추적으로 밝혀낸 사실을 국정원이 그 나라 정보기관에 전달하면, 그 나라 정보기관은 경찰에 알려 그들을 체포한다. 북한 공작조직도 대책을 마련한다. 사전에 그 지역 경찰을 포섭해 단속을 차단하는 것이다. 남북 공작원은 3국에서 그렇게 싸우는데, 이 싸움이 커지면 주재국 정보기관이 나선다.

한중관계가 좋던 지난해 4월 중국은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탈북을 허용했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관계가 나빠진 지난 연말에는 방해했다. 국정원은 중국에서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한국 조직폭력배와도 연결돼 외화벌이를 하던 북한 조직을 포섭해 탈북시키려 했는데, 중국 국가안전부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덮쳐 이들을 북한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소식통은 “북한은 말레이시아가 준 무(無)비자 혜택을 이용해 말레이시아를 제2의 중국으로 삼아왔다. 말레이시아는 중국보다 서방에 가까우니 북한에게는 더 좋은 거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을 계기로 말레이시아 정보기관이 리정철을 검거한 것은 쿠알라룸푸르에 구축된 북한 공작망을 일망타진하겠다는 신호다. 이 때문에 북한은 리동일을 보내는 등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주북한 자국 대사를 소환해 북한과 단교할 의사를 내비쳤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외부적으로는 외교전 양상이지만 남북한은 물론, 여러 나라 정보기관이 뛰어든 복잡한 첩보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다른 소식통 B씨는 “말레이시아가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쉽게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남 가족이 김정남 시신 인도를 요구할 것인지는 또 다른 공작의 소재가 된다”고 예측했다.

김정남 유족이 한국이나 중국에 자신의 DNA 샘플을 주고 김정남 DNA와 일치하면 시신 인수를 대행해달라고 한다면, 순식간에 공작전은 말레이시아에 국한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에 맡기면 남북관계가 긴장되고, 중국에 부탁하면 북·중 관계가 어그러진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을 고립시키고 우군을 얻고자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게 할 개연성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북한 압박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이 왜 말레이시아는 김정남의 방문 목적과 동선(動線) 등을 밝히지 않느냐는 점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쿠알라룸푸르의 한 콘도를 북한인들이 예약해 공작을 모의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음에도 김정남이 묵었던 숙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소식통 C씨의 분석이다.



러시아 협조 못 받은 아쉬움

김정남 암살이 촉발한 쿠알라룸프루의 물밑 공작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을 당시 김정남은 생전에 중국의 보호를 받았다. [뉴스1]

“지금 김정남 암살 사건 수사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레이시아 정보부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들은 외교부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도 말레이시아는 북한과 교역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측 압박이 거세지자 미국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커졌다. 이 때문에 가장 생색을 내는 방법으로 북한을 제재하면서 단교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김정남 암살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그는 말레이시아가 북한대사관으로 숨어든 용의자 2명의 인도를 요구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법상 대사관은 치외법권 지대라 주재국의 사법기관이 들어갈 수 없다. 말레이시아는 만약 북한이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북한 공작조직이 김정남을 말레이시아로 유인한 방법과 말레이시아에 들어온 김정남을 추적한 것 등을 차례로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흐메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부총리는 자국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은 두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공작”이라고 밝혔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김정남의 방문 이유와 동선, 그리고 북한이 구축한 공작망을 거의 다 파악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전모를 공표하지 않는 것은 북한을 상대로 모종의 거래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식통은 “말레이시아는 그들이 알지 못한 공작망까지 다 뽑아내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리정철과 북한대사관으로 숨어든 2명에 대한 수배 카드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공작전과 함께 주목할 것이 국정원의 능력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암살에 참여한 북한인 6명의 인적사항을 밝혔다. 그러자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4명은 보위성(국가정보원과 비슷한 조직), 2명은 외교성 소속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어떻게 6명의 소속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소식통 D씨의 의견이다.

“정보기관의 평상시 업무 가운데 하나가 북한 요인들의 인적사항을 수집하는 것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들의 사진을 찍고 신원을 확인한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발표한 6명의 이름과 사진을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허점도 보였다. 쿠알라룸푸르를 탈출한 4명은 자카르타, 두바이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북한 노동자와 기관원이 다수 나와 있기에 국정원도 적잖은 요원을 투입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식당에 가면 배짱 좋게 북한 종업원들과 어울리는 국정원 블랙 요원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폭넓게 활동해왔다.

그러나 사드 배치로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져 결정적 순간에 러시아 정보부의 협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북한 4인조가 블라디보스토크국제공항에 왔다는 것을 알아내 통보했으나 러시아 정보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러시아가 협조했다면 김정남 암살 사건은 전모가 드러났을 것이다.

한 관계자는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은 한러관계가 나빠졌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무시하고 있다 4명을 놓쳤다. 천려일실”이라고 평가했다. 

왕위 다툼과 스탠딩 오더

김정남 암살이 촉발한 쿠알라룸프루의 물밑 공작

1981년 북한 평양에서 촬영된 김정일-김정남(앉은 이) 부자의 사진. 뒷줄은 성혜랑, 이남옥, 이한영(왼쪽부터)이다. 김정남이 김일성과 찍 은 사진이 있었더라면 그는 정통성을 인정받아 김정일의 뒤를 이었을 것이다. [출처·데일리메일, 동아DB]

김정남과 정철, 정은은 한 번도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이는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이 무서워 혼외아들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일의 본처는 홍일천이다. 홍일천은 설송과 춘송 두 딸만 낳았다. 김정일은 영화배우 성혜림으로부터 정남,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로부터 정철과 정은을 얻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무서워 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김정남은 성혜림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갔다. 그때 동행한 이가 성혜림의 언니인 혜랑 씨와 그의 자녀(이한영-남옥)였다. 그 후 성혜림은 모스크바에 남고 이들은 스위스로 옮겨가 살았다. 1982년 이한영이 한국으로 망명한 다음에도 김정남은 계속 스위스에서 살았는데, 이는 김정남 보호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는 의미가 된다. 김정일 처지에서는 김정남이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김일성은 손자의 존재를 알았을 수 있지만 무시했다. 정철-정은 형제는 고영희의 동생인 고영숙 부부가 그들의 자녀와 함께 스위스로 데려가 키웠다. 고영희는 따라가지 않았다. 1997년 이한영 씨의 망명이 언론에 공개되자 세계는 김정남에 대해 알게 됐다. 그 시기 김정일은 김일성의 사망(1994)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정남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대중에게도 감춘 것이다.

자신과 아들이 버려졌다는 것 때문에 성혜림과 고영희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다 숨졌다. 그러한 이들을 챙겨준 이가 장성택이었다. 김정일은 2008년 중풍에 걸렸다 회복한 뒤 정은을 후계자로 찍었는지, 조금씩 그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중국에 데려가기도 했다. 

2011년 김정일이 죽자 장성택은 김정일의 부탁대로 정은을 후계자로 옹립했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우리 정보기관은 장성택이 실권자로 섭정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2년 뒤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권력 장악에 나선 것이다.

정철은 호르몬 장애가 있어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남은 장성택처럼 옹립해주는 세력이 있으면 언제든 북한으로 들어와 자신을 대체할 수 있기에 그를 없애라는 스탠딩 오더를 내렸다.

중국 지도층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김정은을 싫어한다. 정은도 중국과 가까운 정남을 싫어했다. 정남은 중국의 경호 덕에 몇 차례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더는 어렵다고 봤는지 2015년 정은에게 살려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스탠딩 오더는 풀리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 한 장만 있었어도 정통성 문제가 풀려 정남 형제는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정은은 취약한 정통성 문제를 해결고자 장성택과 정남을 죽인 것이다.






주간동아 2017.03.08 1078호 (p30~33)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0

제 1210호

2019.10.18

超저금리 시대의 기현상, “이자 없이 돈 맡겨도 괜찮아”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