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2008.09.30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내 인생의 황당과 감동 사이’

  • 김재윤 닥터PR&ON AE

    입력2008-09-24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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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한민국과 쿠바의 야구 결승전이 있던 날,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을 하러 나갔다. 식당 안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열심히 중계방송을 보는데, 뒤 테이블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지 내게 수시로 경기 상황을 물었다.

    “지금 투아웃인가요?” “볼 카운트가 어때요?” “저 선수 연속 경기라 피곤할 텐데….”

    이렇게 ‘전문적’인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이 전형적인 중년 여성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느덧 경기는 막바지에 접어들고 식당 안 모든 눈이 TV로 집중됐다.

    운명의 순간, 상대선수의 공이 유격수 글러브로 들어가고 결국 대한민국은 사상 최초의 올림픽 우승을 이뤄냈다. 식당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소리를 지르던 그때, 우연히 경기 상황을 묻던 뒷자리 아주머니 쪽을 보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주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시다가 나중엔 테이블에 엎드려 서럽게 울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계속 지켜보노라니 같은 테이블의 다른 아주머니가 넌지시 귀띔했다.

    “저 아주머니 아들이 야구선수야.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해 이렇게 우는 거야. 너무 아쉬워서.”



    알고 보니 그 아주머니는 올림픽 직전 불미스러운 사고로 팀에서 제명되고 올림픽 출전마저 좌절된 유명 야구선수의 어머니였다. 사상 최초의 금메달 획득에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는 선수들의 모습에, 한 번의 실수로 여론의 질타 속에 좌절하고 만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던 모양이었다.

    그 선수는 공인이다. 그래서 자기가 한 실수를 반성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한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 애끓는 모정에서, 갑자기 내가 그동안 수다 안주로 함부로 비판했던 ‘공인’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서였다.

    모정은 애국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을 떠올리고 있었다. 화려한 무대에 오르지 못해 뒤에서 숱한 눈물을 흘렸을 그 누군가들에게도 격려의 토닥임을 전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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