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2008.09.30

매케인은 람보인가 처칠인가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9-24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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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케인은 람보인가 처칠인가
    독일군에 포로로 붙잡힌 스티브 매퀸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대탈주’. 이처럼 많은 영화들이 전쟁포로와 그들의 탈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실제로 탈주에 성공한 포로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어떤 영화에서는 전쟁포로 수용소를 코믹하게 그리기도 하지만, 포로로 잡힌다는 건 그 자체로 감내하기 힘든 극한 상황이다.

    포로가 되는 순간 그 앞에는 대개 두 가지 길이 놓인다. 어떤 이는 영화 ‘디어 헌터’의 닉처럼 처참한 상처를 입는다. 적의 끔찍한 고문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 정신과 영혼까지 파괴된다.

    반대로 영웅이 되기도 한다. 역경을 이기고 살아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된다. ‘대탈주’에서 “우리가 탈출을 꾀해야 적의 전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연합군 포로들의 말처럼 적극적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위엄을 지키며 당당하게 견뎌낸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무공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포로 출신 영웅 미국 구하기 결과에 주목

    그와 같은 전쟁포로 출신의 영웅이 지금 미국을 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매케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정책이나 비전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5년 반 동안 북베트남군의 전쟁포로로 지낸 이력이다. 특히 매케인의 포로 생활은 혹독했던 모양이다. 2년간 독방에 수감되기도 했고, 치료도 제대로 못 받은 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게다가 북베트남군의 조기 석방 제의도 거절했다고 한다. 해군 제독의 아들이 겪은 수난이라는 점에서 가문의 후광 덕을 입은 것도 있지만 의연한 처신이었던 건 분명하다.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 참전 군인들을 단상의 맨 앞에 배치한 것은 전쟁영웅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그 장면은 설명이 필요 없는 매케인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람보를 연상시키는 그 이미지는 또 한편 위태롭기도 하다. 개인사적 이미지에만 의존할 뿐 정책과 이슈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는 내가 알아야 할 이슈도, 이해하고 있는 이슈도 아니다.”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인 경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더욱 위험스럽게 보이는 건 이런 후보에게 국민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전쟁포로 이력이 정치적 성장에 발판이 됐다는 점에선 윈스턴 처칠이 매케인의 선배뻘이다. 처칠은 젊은 시절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 때 특파원으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했다. 그 탈출기를 신문에 발표한 것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그 이력이 출발선은 됐지만 그 후 처칠의 정치 이력에서 그 대목은 거의 에피소드였을 뿐이다. 매케인은 람보인가, 처칠인가. 그리고 미국인들은 매케인에게서 둘 중 어느 쪽을 보는 것일까.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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