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4

2008.07.15

단청은 꽃잎에 물든 듯 자비는 속세를 감싼 듯

오래전 만난 큰스님의 세상 이치 꿰뚫는 듯한 눈빛 아직도 기억에 남아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8-07-07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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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청은 꽃잎에 물든 듯 자비는 속세를 감싼 듯

    변산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를 바라고, 그곳을 향하여 질주하였으나 온전히 내소사를 참례하지는 못하였다. 줄포 쪽에서 꺾어 들어갔더라면 내소사 전나무 길 걸어, 산의 품에 가만히 들어앉은 내소사의 오랜 단청을 물끄러미 보았을 것을, 그만 변산 쪽에서 거슬러 내려오다가 그 사이사이의,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들에 눈을 주다가 날이 너무 어두워졌던 탓이다. 무더위의 여름 햇살도 질 때는 동백꽃잎처럼 한번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는데, 그때는 이미 내소사의 아늑한 가람들 그림자만 어슴푸레 남은 다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소사 대웅보전으로 들어갔다. 얼마 만인가? 아니, 벌써 몇 번째인가? 스물여섯 때인가, 이곳에 처음 왔다가 그로부터 네댓 차례 찾은 길인데, 이번처럼 희뿌연 조명만 남기고 완전히 어둠 속에 스며 들어간 내소사 대웅보전에 가만히 있어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서정주가 시 내소사 대웅전 단청에 쓴 일들을 눈으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어둠 속에 앉아 있다가, 절집에서 일하는 보살님이 주의를 주는 바람에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시인들이 시를 남긴 ‘시의 무대’

    이 대웅보전을 지어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丹靑師)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 어스럼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西)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寶殿)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중략)

    그런데 일에 폐는 속(俗)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 마리가 천정(天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 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곱게 단청해나가고 있었는데, (하략)




    서른의 고비로 막 들어선 때의 일이다. 내 친구가 병에 걸렸다. 신병(身病)은 아니고 심병(心病)이었다. 소설가 김훈은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서, ‘인간사 생로병사’인데 사랑은 바로 ‘병’의 일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 친구가 그랬다. 그런데 나는 내 친구의 사랑에 대해 다른 견해를 말하고 싶었다. 쉽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울의 번잡한 공기를 벗어나서 그 말을 하려고 밤을 도와 내소사까지 내려왔다. 그윽한 전나무 길마저도 자동차로 밀어붙인 끝에 칠흑 같은 깊은 밤 내내 내소사 주차장에서 못할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문득 잠이 들었던가 싶었는데, 차창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새벽 빛이 숲 사이로 물들어 산야는 푸르스름한 정기로 탈변하고 있었다. 스님이었다. 그냥 여러 스님 중의 한 스님이 아니라 한눈에도 ‘아! 큰스님’ 하고 경외스러울 만큼 세상 이치 두루 꿰뚫는 눈빛의 스님이었다. “아침 공양들은 어찌하셨누?” 우리는 큰스님을 따라가 공양을 하고 대웅보전에 참례하여 오랫동안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그랬던 일들이 생각나서, 이젠 절집도 문 닫는 시간이니 그만 나가달라는 보살님에게, 그때 일을 요약하면서 어느 해 신문 보니 내소사 큰스님이 입적하셨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과연 그러하였는지를 물었다. 보살님은 “아마도 혜산 스님…”이라고 하면서 대웅보전 구석에 모셔진 영정을 가리켰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 다음 대웅보전을 나왔다. 사위는 완벽한 어둠에 사로잡혀 있었다.

    먹으로 선을 몇 개쯤 그은 듯한 변산반도의 밤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내소사와 이 일대의 여러 처소들을 다시 생각했다. 이 산하의 곳곳이 소설과 시의 무대이지만, 이곳 변산 일대는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시가 어울리는 곳이다. 신석정의 시비(詩碑)가 변산 입구에서 마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정주로부터 시작하여 송재학, 이문재, 박형진, 박영근, 고운기 등의 시인들이 이곳에 와서 시 한 수씩 길어올렸다. 이곳 변산은 시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시적인 공기에 휩싸이도록 만드는 곳이니, 시인이라면 오죽했겠는가. 그런 생각을 내소사와 격포 사이의 언덕에서, 검게 먹칠한 듯한 곰소만을 내려다보면서 해보았다.

    단청은 꽃잎에 물든 듯 자비는 속세를 감싼 듯

    변산 채석강

    시인 송재학은 격포에 간다는 것은/ 사소한 나만의 일몰을 가진다는 것!/ 머리통만한 물거품과 폭설이/ 서쪽 바다를 죄다 세로로 앞장세웠다가/ 가로로 눕히곤 한다/ 나에 속한 죄를 끄집어내어/ 바다에 헹구어본다 (시 격포 중에서)라고 썼다. 스물여섯, 맨 처음으로 변산에 와서 격포해수욕장 모래밭에 누워 하늘만 바라본 일이 있다. 몇 시간이고 지속될 듯하다가는 느닷없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태양과 그 강렬한 빛이 남긴, 천지를 주홍색으로 물들여버린 장엄한 일몰에 사로잡혔던 기억이었다. 정녕 변산은 ‘나에 속한 죄’뿐만 아니라 짓지 않은 죄마저도 다 꺼내놓고 고해성사를 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시인 이문재도 이곳에서 시 격포에서를 얻었는데, 그 뒤의 노래는 이렇다.

    늦가을 격포는 제대로 어두워져 있다/ 땅 끝 여기는 해발 제로/ 선(線)에서 점으로/ 내가 먼저 와 있다/ 천년 저쪽에서 달려온 별빛들이/ 다시 천년 저쪽으로 달려나간다/ 격포에서 격포로 망명한다/ 나의 근황은 이제 나만의 근황이다/ 내가 먼저 와 있는 것이다.

    과연 격포는 ‘망명’을 떠날 만한 곳이다.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십승지(十勝地)’를 살피면서, 큰 산릉이 한두 개 있고 삼면이 급사면으로 둘러싸였으며 배나 수레가 접근하기 어려우며 외부 세계와의 통로가 한곳에 집중되고 동구(洞口)와 수구처(水口處)가 험하여 낯선 이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변산반도 우동 일원은 ‘십승지’ 중 한 곳

    단청은 꽃잎에 물든 듯 자비는 속세를 감싼 듯

    변산 갯벌

    산자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그 안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 바로 십승지. 이런 곳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가치가 적어 전쟁이 나도 외부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보은 속리산, 남원 운봉,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 충남 계룡산, 합천 가야산, 경북 풍기 같은 곳이 십승지인데, 이곳 부안의 변산반도 우동 일원이 그곳이다. 실학자 반계 유형원 집터와 반계서원이 있는 곳이 초입이 된다.

    변산의 이러한 측면은 실제로 임진왜란이나 동학농민운동, 6·25전쟁 등의 변고가 있을 때에 타지 사람들이 자주 주목하였던 곳이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원작시를 쓴 시인 박영근의 집안 내력도 바로 난세의 한 여파로 변산에 깊은 그림자를 남긴 경우다. 변산 마포리에서 태어나, 한때 폐교가 되었다가 지역 생태학교로 탈바꿈된, 마포초등학교를 마친 박영근은 전주로, 거기서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대취(大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의 정황들을 거역하지 않았다가 그만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떴다. 낡은 점퍼 차림으로 늘 먼 곳을 바라보며 한 군데 정박하지 못했던 시인의 옛 모습 때문에 그의 시 변산 기행의 앞 대목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산다는 일은 저렇게 곧게 쏟아져내리는/ 폭포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어이 산맥은 길을 끊어 왕포나/ 채석강에서 바위절벽 아래 떨어지고/ 바다 끝까지 달려간 마음도/ 저녁노을로 스러지고.

    변산, 이곳은 시인을 위한 곳이다. 프로의 경지에서 직업적으로 시를 짓고 발표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사 번잡한 일로 시달렸던 사람들도 변산을 둘러싸고 있는 가없는 갯벌, 격포해수욕장의 일몰, 곰소만의 뻘밭, 채석강의 놀라운 형식미, 모항의 짠내 그리고 내소사와 개암사의 거룩한 창살문과 들보 앞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걸작 식당 의자를 쓴 대구의 시인 문인수도 변산, 이곳의 채석강에서 시를 한 수 얻어갔다.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밤바다 파도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이다./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소리는/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 너라는 책,/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 문인수 바다책, 다시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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