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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③ 경남 밀양

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안동·산청 못지않은 영남 유림 세거지 … 이창동 감독 영화 ‘密陽’으로 존재 재발견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소설가 이문열에게 영남루는 젊은 시절의 고독과 방황을 위로해준 곳이다.

밀양은, 아주 오래전의 사실(史實)로 말하자면,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을 낳은 곳이다. 연산군 무오년의 끔찍했던 무오사화. 김종직은 그 환란의 실마리가 되었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썼는데, 진(秦)의 항우가 폐위시킨 초나라 의제(義帝)를 애도한 글이지만, 이것이 정치적 기반이 불안정했던 연산군과 훈구파에게는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를 풍자했다’는 학살의 근거로 충분하여 그의 제자들이 형극을 받았고 김종직 자신도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한스러워라 천지는 장구하여 언제 다하랴마는(天長地久恨其曷旣兮) 그 넋은 지금도 떠돌아다니리라(魂至今猶飄蕩)”는 김종직의 글은 오늘의 감상에서도 하수상한 면이 있다.

이로써 영남 사림파가 오히려 은밀하면서도 굳건하게 형성되었고, 그가 태어난 밀양은 현재 그를 모시고 있는 예림서원 등의 유산으로 인하여 안동이나 산청 못지않은 영남 유림의 세거지가 되었다. 오랜 풍상을 겪어 허물어진 유허지를 사림 후손들이 1810년에 중건하여 ‘추원재(追遠齋)’라고 이름 붙인 곳이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의 생가다. 생가 뒤편의 오솔길을 몇 걸음 올라가면 김종직의 묘소가 있다. 특이하게도 같은 내용의 묘비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온전하고 다른 하나는 깨진 상태. 깨진 비석은 김종직이 무오사화 때 부관참시되던 상황의 것이고 온전한 비석은 중종 때 복권되어 그때 새로 모신 것이다.

소설가 김원일·이문열의 정신적 고향

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북면 가산리에는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가 2000년부터 활동하는 ‘밀양연극촌’이 있다. 필자는 2004년 그곳에 갔다가 연극촌 어귀의 작은 이발관에 들른 적이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작은 집이지만 느리게 돌아가는 표시등 때문에 그곳이 이발관임을 뒤늦게 알았고, 담벼락을 기대고 있는 낡은 자전거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이발관을 오랫동안 드나든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그때 친절하게 대해주던 주인 이형호 씨는 올해로 53세가 되었을 것이며, 그러니까 25년을 그 작은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있을 것이다. 작은 이발관 안의 작은 도구들은 25년도 훨씬 더 넘은 것으로 저 1950년대의 가난했던 시절에 부북면 꼬마들은, 이제는 밀양연극촌이 된 월산초교에 입학하거나 더 성장해서는 멀리 구로공단이나 양구의 전방으로 떠나는 열차를 타러 밀양역으로 나가기 전에 꼭 이 가산이발관에 들렀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감회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여긴 역사야 역사. 뭐, 하여간에 역사란 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하고 그는 답했다. 만약 가산이발관이 역사가 아니라면, 김종직을 봉헌하고 있는 사액서원도 어쩌면 역사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 어귀의 가산 이발관.

예컨대 소설가 김원일은 역사소설이자 성장소설이기도 한 장편 늘푸른 소나무를 쓰면서 밀양 일대의 산천과 유림의 흔적을 능란한 장인이 황토를 주무르듯 담대한 필체로 묘사하였는데, 그 소설의 많은 부분도 ‘작은 것들의 큰 역사’를 위해 바쳐지고 있다. 다음은 주인공 석주율이 독립지사인 스승 백상충을 따라 (가을이면 밀양역에서 내리는 많은 등산객이 찾아가는) 사자평과 표충사 길을 따라가는 대목이다.

“산으로 오를수록 숲 사이로 난 실배암 같은 길은 더욱 호젓하였다. 해가 정수리에 올라왔을 터인데도 숲 속 길은 저녁 무렵 같게 어두웠다. 숲이 짙은 탓이었다. 간월산 쪽에서 포효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중략) 간월잿마루는 해발 구백 미터가 넘었다. 잿마루까지 올라왔을 때는 이미 해가 설핏 기울어져 있었다. 잿마루는 넓은 더기를 이룬 억새밭이었다. 일행이 잿마루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어진이(석주율의 아명)는 사방이 툭 틘 넓은 세상을 두루 갈마보았다. 웅장한 산과 산이 연봉을 이루었고 단풍 든 산색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조실승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자연의 웅자한 자태에 비긴다면 산중에 서 있는 인간의 존재란 티끌에 불과하였다. 그는 처음으로 높은 산을 올라와보았고, 비로소 넓은 세상으로 나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가산 이발관은 밀양의 역사다.

소설가 이문열에게 영남루는 젊은 시절의 고독과 방황을 위로해준 곳이다.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밀양연극촌’ 어귀의 가산이발관. 이 지역을 정신적 고향으로 삼은 소설가 중에 이문열이 있다. 우리 문학사의 ‘백두대간’이라 부름직한 이문구 김원일 김성동 등이 그러하듯이 이문열은 ‘유림’의 정통에서 태어났으나 ‘봉건 철폐’를 부르짖으며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던 인텔리 아버지 때문에 ‘부역자 자식’이 되어 혹독한 성장기를 겪었다. 정규 학업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한 청년 이문열에게 밀양은, 그리고 그 상징인 영남루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놀이터’였다. 이문열은 ‘얼어붙은 강을 내려다보기 좋아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어른들이나 여름밤의 강둑길에서 그리로 옮겨온 젊은 연인들’ 사이에 끼여 영남루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봄눈 녹아 흐르는 찬 여울살에, 모랫벌을 얕고 넓게 지나느라 뜨거워져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은어떼를 이따금씩 혼절시키던 여름의 느린목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까닭 없이 슬퍼지던 가을의 교각 곁 그 맑은 웅덩이에, 이미 유리 같은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던 그 발 저린 겨울 물굽이에, 세월은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버렸으나 내 발을 감싸는 물살은 언제나 예전의 그 물살이었다. (중략) 밀양을 얘기하면서 아무래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강을 가운데 끼고는 그 솔밭과 엇비슷이 맞보고 있는 영남루와 대숲이다. 영남루는 밀양을 찾는 이에게는 그 어떤 버스 정류소나 기차역보다 먼저 나타나는 마중꾼이고 떠나는 이에게는 또한 그 마지막 배웅자였다.” (이문열 아름다움의 이데아 중에서)

해질 무렵 밀양의 저녁시간 진실로 아름다워

그리고 이제 밀양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인하여 密陽(secret sunshine)이 되었다. 지역문화 특성화와 재정 활성화에 의해 산천경계가 그 무슨 호들갑스런 ‘축제’의 장이 된 세상이니,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이 영화가 한산했던 이 지역의 ‘문화상품’이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경우겠지만, 그럴수록 밀양이 지닌 은자의 서정이 조금은 산만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쪽의 춘천처럼 이 남쪽의 도시 밀양도 남천강이나 밀양강 등 낙동강을 지향하여 사방으로 펼쳐지는 물줄기 때문에 언뜻 내지의 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해질 무렵 꼭 한 번 밀양으로 진입하는 국도를 달려보기 바란다. 붉은 놀을 흥건히 빨아들인 강물들, 그 강물 위로 은밀히 떠 있는 밀양의 저녁시간은 진실로 아름답다.



주간동아 2008.04.29 633호 (p68~70)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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