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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우주인 이소연 지구인으로 사는 법

복귀 후 임무에 관심 고조 … 과학문화대사 1순위, 광고모델 섭외도 몰릴 듯

  •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우주인 이소연 지구인으로 사는 법

우주인 이소연 지구인으로 사는 법

우주에서 소유즈호와 국제우주정거장의 도킹에 성공한 이소연 씨가 모스크바 관제소에서 러시아 관계자, 항공우주연구원장 등과 영상 대화를 하고 있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난 달로 날아갈 거야. 나를 별들 사이에서 누비도록 해줘).”

4월13일 오후 6시17분, 서울 목동 SBS 우주방송센터에 대한민국의 아주 특별한 30세 젊은이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수’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 한국을 36번째 우주인 배출국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ISS가 한국 상공에 접근한 10분 동안 성사된 이날 오디오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기자들의 요구에 망설임 없이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한 소절을 멋들어지게 들려줬다. 몽환적인 노래 가사는 놀랍게도 실제 이씨에게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씨의 목소리에서는 4월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떠나 10일 ISS에 도착해 쉴 새 없이 과학실험을 수행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활기가 느껴졌다. 공격적으로 여겨질 법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시종일관 웃음 띤 얼굴로 답하는 이씨의 태도는 오히려 회견장에 모인 관계자들의 긴장을 풀어줄 정도였다.

배짱과 넉살 겸비한 친화력의 여왕



사실 이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친화력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었다. 2006년 이씨와 함께 245명의 우주인 1차 선발자 명단에 올랐던 홍성화(39) 씨는 “이씨가 훈련기간에 러시아에서 쌀가루를 구해 송편을 빚어 현지인들에게 대접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씨의 붙임성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선발과정에서 자신을 “우주선을 탈 미모의 과학자입니다”라고 소개했다. 특유의 배짱과 넉살이 아니고선 감히 시도하기 힘든 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이 벌어지는 선발과정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이씨가 한국 최초 우주인이 된 데는 이런 밝은 성격이 한몫했다는 게 지인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실제 2006년 4월 시작된 우주인 선발과정은 무한경쟁 그 자체였다. 지원자 3만6206명 가운데 기본 서류 평가에서 2만6000명이 떨어졌다. 같은 해 9월2일 체력평가와 10월13일 실시된 영어, 상식, 기본 신체검사에서 1차 선발자 245명이 추려졌다.

2차, 3차 선발과정을 비롯한 각종 평가를 거친 뒤 후보는 그해 12월까지 6명으로 좁혀졌다. 특히 중력가속도, 저압실 훈련 등 혹독한 테스트가 실시되는 와중에 수많은 후보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결국 이 같은 과정을 특유의 여유 있는 태도로 이겨낸 이씨는 2006년 12월25일 고산 씨와 함께 최종 우주인 후보로 선정됐다.

지난해 9월5일 탑승 우주인이 아닌 예비 우주인에 선정돼 ‘한국 최초 우주인’ 타이틀이 멀어졌을 때도 이씨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겠다며 웃음 띤 모습을 국민에게 보였다. 그런 여유로움이 나중에 빛을 발할지는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올해 3월10일, 탑승 우주인이었던 고산 씨가 러시아 측 ‘내부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한국 최초 우주인’ 지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탑승 우주인을 이씨로 변경한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정신적 압박이 적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이씨는 이를 잘 극복해냈다. 그리고 4월8일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서 임무를 개시했다.

1차 선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재윤(43) 씨는 “밝은 성격에 여유까지 갖춘 이씨를 보고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을 우주인감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신분이 탑승 우주인으로 변경된 것은 실로 극적인 사건이었다. 불과 우주선 발사 한 달여를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충분히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주인 훈련기간에 박사학위 논문 완성

1997년 광주과학고를 졸업한 이씨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교 미세전자기계시스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우주인에 선발된 이씨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원 신분이다. 주목되는 건 이씨가 러시아에서 실시된 우주인 훈련 기간에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예비 우주인이긴 했으나 훈련 내용은 탑승 우주인과 같았다. 결코 한가롭지 않았다는 얘기다.

식물 생장 관찰, 노화 유전자 탐구 등 18가지 과학실험이 이번 우주인 배출 사업의 중요 목적임을 감안한다면 ‘과학도’라는 이씨의 바탕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고교 시절 은사인 나금주 광주교육청 장학관은 이씨가 보통 여학생들과는 달랐다고 한다. 10년도 넘었지만 나 장학관에게 이씨는 ‘리더십이 뛰어난 아이’로 또렷이 기억된다. 나 장학관은 “소연이는 호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나 장학관은 “체육대회가 열릴 때면 소연이는 응원단장을 도맡았다”며 “뛰어난 입담으로 아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나 장학관은 “소연이는 KAIST 진학이 확정된 뒤 태권도장을 다니며 체력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면서 “남학생들과 팔씨름을 해도 쉽게 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소연이는 우주인이 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지구로 귀환한 뒤 어떤 임무를 맡게 될까. 먼저 과학문화대사로 활동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강연회 등을 통해 대중, 특히 청소년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외국에선 우주인 출신이 국가 고위직 진출하기도

광고업계도 이씨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만약 그를 모델로 기용할 수 있다면 상업성보다 공익성을 강조하는 광고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씨가 광고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운영하는 우주인관리위원회가 결정한다.

외국에서는 우주인 출신이 국가 고위직에 진출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 최초 여성 우주인 클로디 에녜레 씨는 1996년과 2001년 우주에 다녀온 뒤 과학기술담당 장관직에 올랐다.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한국 최초 우주인의 활동 반경이 지상에서 더욱 극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국인 최초 우주생활 뒷얘기①

우주인들 입맛 사로잡다…소연 씨는 ‘우주 대장금’


이소연 씨는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를 “세계의 우주인은 물론 우주 개발과 관련된 중요한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협력의 장(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가가린우주센터에서 지난 1년 동안 혹독한 우주인 훈련뿐 아니라 다른 나라 우주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특히 ‘대장금’ 뺨치는 요리 솜씨로 세계 우주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한국과 자신을 알렸다. 바쁜 훈련 스케줄 속에서도 훈련에 지친 다른 나라 우주인을 초대해 한국음식을 나눠먹는 기회를 자주 만들었던 것.지난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이씨는 미국 우주인이 머무는 숙소에서 한국음식 파티를 열었다. 이날 야심차게 준비한 음식은 더위에 지친 우주인들을 달래줄 시원한 콩국수였으며,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고추장양념 비빔국수도 선보였다.이날 모인 미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 우주인 20여 명은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어치웠다. 이씨는 그 뒤 추석엔 송편, 설날엔 떡국을 만들어 우주인들과 나눠먹으며 우정을 쌓았다.4월12일 이씨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번 우주비행을 위해 특수 제작된 밥, 고추장, 라면 같은 10가지 한국 우주음식으로 만찬을 열었다. 육식 위주의 느끼한 러시아 음식으로 구성된 식단에 물렸던 우주인들은 매콤한 한국음식에 열광했다. 국제우주정거장 최초의 여성 선장인 미국의 페기 윗슨 씨는 우주라면을 맛본 뒤 “I like it!(맛있어!)”을 연발했다. 물론 이씨가 우주음식을 직접 만들진 않았지만, 가가린우주센터에서 그가 만든 요리를 맛본 적 있는 동료 우주인들은 한국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덜했을 것이라는 평이다. 이씨의 요리 솜씨가 ‘우주 외교관’ 노릇을 톡톡히 하며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한국인 최초 우주생활 뒷얘기②

국적 불문 우주인들 챙기기…마당발 위력 과시


우주인 이소연 지구인으로 사는 법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무는 동안 이소연 씨는 우주멀미로 고생하면서도 시종 밝은 얼굴로 ‘분위기 메이커’ 구실을 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밝은 성격과 특유의 친화력은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서 훈련받는 동안에도 다른 나라 우주인 사이에서 유명했다. 이씨는 특히 중요한 사람을 만나거나 도움을 준 사람들을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러시아어로 소유즈호의 생명유지 장치를 뜻하는 ‘소주(СОЖ)’에 대해 배울 때는 훈련 교관에게 ‘한국의 보드카’인 소주를 선물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4월8일 소유즈호를 함께 탄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볼코프가 발사 전 아이들 사진을 깜빡 잊고 온 사실을 미리 알고 그의 아이들 사진을 깜짝 선물로 준비하기도 했다. ‘기브 앤드 테이크.’ 이씨의 이런 배려에 돌아오는 것도 많다. 영국 우주전문잡지 ‘스페이스 플라이트’의 저널리스트 토니 콰인 씨는 이씨의 생일날 ‘Woman Astronaut’라는 책에 영국 최초 우주인 헬렌 샤먼의 친필 사인을 받아 국제우편으로 보내왔다. 이씨는 책을 통해 여성 우주인으로서의 꿈을 키워왔다고 밝힌 바 있다.이씨가 예비 우주인에서 탑승 우주인으로 임무가 바뀌었을 때는 당시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던 미국 우주인 페기 윗슨 씨가 직접 지상으로 전화를 걸어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윗슨 씨는 이씨가 가장 존경하는 우주인이다.아예 나중에 함께 일을 해보자고 제안받은 적도 있다. 10월 사상 여섯 번째로 우주관광에 나서는 미국의 컴퓨터게임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 씨는 지난해 말부터 가가린우주센터에서 이씨와 우정을 쌓아왔다. 게리엇 씨는 우주호텔 사업을 펼칠 계획이 있는데 이씨에게 임직원으로 와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세계의 우주개발은 대부분 국제협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주에서 돌아온 뒤 이씨의 ‘맨파워’가 기대되는 이유다. | 안형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utnow@donga.com |




주간동아 2008.04.29 633호 (p60~62)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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