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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지금 못 말리는 개발 열풍

2020년까지 중심가에 10여 채 고층빌딩 신축 … 찰스 왕세자 “도시 파괴” 맹렬 비난

  • 런던 = 전원경 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런던은 지금 못 말리는 개발 열풍

런던은 지금 못 말리는 개발 열풍

2004년 완공된 ‘30 세인트 메리 르 액스’ 빌딩은 런던 시민들 사이에서 ‘야한 오이지’라는 뜻인 ‘에로틱 거킨’으로 불린다.

요즘 영국 런던을 찾는 사람들은 그곳에 예상외로 많은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 런던에서는 지역을 막론하고 언제나 공사가 많다. 한두 구간은 거의 항상 수리 중인 지하철과 오래된 집, 건물들의 보수공사가 도시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공사 양상은 좀 달라졌다. 아예 새로운 빌딩을 짓는 대형 공사판이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다. 특히 금융 중심가인 ‘시티 오브 런던’ 근처가 그렇다. 템스 강의 런던 브리지와 주변 스카이라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2004년 런던 시티 구역에 들어선 ‘30 세인트 메리 르 액스’ 빌딩은 이 같은 런던의 개발 드라이브를 대표하는 빌딩이다. 런더너들 사이에서는 ‘오이지’라는 뜻의 ‘거킨(Gherkin)’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이 빌딩은 시티 구역에 25년 만에 들어선 신축 고층빌딩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 경(卿)이 설계한 거킨은 땅에 꽂아놓은 시가처럼 생긴 원통형 건물이다. 거킨이 완공되자 건물 모양이 에로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든가, 도시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둥 격렬한 찬반 논란이 불거졌다.

거킨 빌딩 이후 잇따라 신축 허가

그러나 현재 거킨은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시청 건물과 함께 런던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상태다. 2006년 BBC 방송이 시청자를 대상으로 ‘런던을 상징하는 현대건축’ 투표를 실시했을 때 1위에 선정된 건물은 거킨이었다.



거킨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뒤 런던시는 예전에 비해 수월하게 빌딩 신축 허가를 내주기 시작했다. 2020년까지 줄잡아 10여 채의 고층빌딩이 런던 중심가에 건축될 예정이다. 이중 2010년에 템스 강변에 들어설 310m 높이의 런던브리지 타워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전망이다. 런더너들은 이 건물의 삐죽삐죽한 조감도를 보고 아직 세워지지도 않은 건물에 ‘유리 파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러한 런던의 변화는 켄 리빙스턴 런던시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2000년 직선 시장으로 당선된 뒤 우선 런던 교통시스템에 손을 댔다. 2003년에 도심 혼잡통행료를 만들어 평일 런던 시내로 들어오는 모든 자가용 차량에 5파운드(1만원)의 통행료를 물려버린 것이다. 대신 낡은 지하철을 손봐 정시운행률을 높였으며, 악명 높도록 비싼 지하철 및 버스 요금을 동결했다. 또 만 16세 이하 청소년은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파격적인 교통정책을 통해 런던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은 상당히 해소됐다.

두 번째로 리빙스턴 시장은 ‘런던 대변신(Totally London)’ 프로젝트를 통해 낡고 오래된 도시 런던을 관광 메카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런던은 도시 자체는 크지만 피카딜리 서커스나 트라팔가 광장, 버킹엄 궁, 대영박물관 등이 모두 근거리에 밀집해 있어 하루면 이 관광지들을 다 돌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리빙스턴 시장은 관광객들의 런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뮤지컬 도시 런던의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서더크, 사우스뱅크 등 런던의 동쪽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유치한 것 역시 리빙스턴이 지휘한 런던 개발전략의 성과 중 하나다.

올해 초 리빙스턴 시장은 “런던 그리고 런더너의 가장 큰 당면 현안은 주택문제”라며 “향후 3년 이내에 런던에 5만여 가구의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 나아가 300만 가구를 더 지어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그가 올해 치러질 세 번째 런던시장 직선에 성공해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리빙스턴 시장의 개발 계획이 과연 ‘천년 고도(古都) 런던’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느냐는 것이다. 특히 리빙스턴 시장이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시티 지역은 세인트 폴 대성당, 런던 브리지 등 역사적인 명소들과 가깝다. 지나친 개발 드라이브가 문화도시 런던의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런던과 달리 파리 로마 뮌헨 등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여전히 시내 중심가에 신축 빌딩이 들어서는 것을 금하고 있다.

급기야 찰스 왕세자가 런던 개발계획에 대놓고 쓴소리를 던졌다. 원래 보수적인 성향인 찰스 왕세자는 1984년에 내셔널 갤러리를 확장할 때도 ‘미술관을 괴물처럼 만들려고 한다’며 반대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의 강도가 한층 심해졌다. 시티 구역을 중심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상황에 대해 “도시를 파괴하는 행위(Vandalised)”라며 맹렬히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런던 시민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혼란

“상업적인 요구들, 그리고 300만 호의 주택을 짓겠다는 공약으로 인해 이 역사적인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런던의 가치를 영구히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300만 가구의 집이 아니라 역사적 유산들인 것입니다.” 이는 누가 뭐래도 리빙스턴 시장에 대한 비판으로 들린다.

일찍이 런던에서 이 같은 개발 바람이 불어닥친 적이 있었다. 1960대 중반, 콘크리트 등 재료의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며 건물의 기능적 면을 중시하는 브루털리즘(Brutalism) 건축의 바람으로 장방형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그러나 이 시기에 세워진 고층빌딩 중 적잖은 수가 도시의 흉물 취급을 받게 됐고, 급기야 강제 철거된 건물도 생겨났다. 1960년대 개발 바람은 런던 역사에서는 지워버리고 싶은 오점으로 남았다.

물론 현재 들어서고 있는 고층빌딩들은 당시의 삭막한 회색 빌딩과는 다르다. 그리고 리빙스턴 시장 측의 주장대로 이러한 고층건물들이 런던을 찾는 기업인들의 수요에 따른 것이며 고질적인 사무실 및 주거공간 부족을 해결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런던의 본질적인 색깔을 잃어가는 것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것일까? 런던의 미래는 금융을 비롯한 비즈니스에 있을까, 아니면 역사 도시 런던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있을까?

런더너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혼란을 느낀다. 그들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찰스는 17세기에 살았다면 세인트 폴 성당을 짓는 데도 반대했을 사람”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번엔 찰스가 옳은 말을 했다. 더 늦기 전에 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의외로 적지 않다. 런던에는 지금 봄바람 말고도 숨가쁜 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듯싶다.



주간동아 2008.04.08 630호 (p32~33)

런던 = 전원경 주간동아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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