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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용 특파원의 모스크바 광장

러, 마슬레니차 축제 “봄이 왔어요”

러, 마슬레니차 축제 “봄이 왔어요”

러, 마슬레니차 축제 “봄이 왔어요”

러시아 마슬레니차 축제의 마지막날인 3월9일, 모스크바 인근 라디스체보 마을에서 주민들이 허수아비를 태우고 있다.

러시아의 겨울이 언제 끝날지 외국인이 가늠하긴 어렵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매년 기온이 올라가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눈 덮인 풍경은 지난해와 올해엔 2월 말부터 보기 힘들어졌다. 3월에도 눈은 내리지만 영상 기온에 금방 녹아버린다.

러시아에서는 겨울의 끝자락을 알리는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부활절 8주 전 일주일간 열리는 러시아정교회의 ‘마슬레니차(Maslenitsa)’ 축제가 그것이다. 이 축제 기간이 지나면 러시아인들은 겨우내 닫혔던 창문을 열며 봄맞이 준비에 들어간다.

올해 마슬레니차 축제는 3월3일부터 9일까지 이어졌다. 축제 기간에 기온은 낮에는 영상, 밤에는 영하로 떨어졌다. 가는 겨울이 오는 봄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마슬레니차 축제의 기원은 러시아정교와 러시아 원시신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교회는 부활절 이전 금식기간을 정하고 육류 섭취를 금했다. 대신 버터 생선 달걀 등은 허용했다. 러시아어 ‘마슬로’는 버터 또는 기름을 뜻한다. 마슬레니차의 어원은 버터라는 게 정설이다.

여전히 추운 겨울이지만 이 기간에 배불리 먹지 않으면 1년 내내 가난하고 불행하게 산다고 여겼기 때문에 마슬레니차는 가장 흥겨운 축제로 자리잡았다. 특히 버터를 듬뿍 바른 블린(러시아식 팬케이크)은 이 축제 기간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준비하는 음식이다.



겨울 상징 허수아비 태우며 봄맞이 … 올해는 전통과 격식 파괴

달걀과 밀가루를 섞어 둥글게 만든 블린은 러시아에서 태양, 풍성한 수확, 좋은 날들, 축복받는 결혼과 건강한 아이를 상징한다. 이 축제가 유럽에서 ‘팬케이크 데이’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축제 기간의 겨울 보내기 의식은 러시아 고대신앙에서 비롯됐다. 러시아인들은 고대부터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태우는 것을 겨울 보내기 행사로 여겼다고 한다. 정교회가 들어온 뒤에도 허수아비는 겨울을 상징하는 역할을 맡으며 마슬레니차 축제 기간 어김없이 등장했다.

올해도 러시아 북쪽 도시의 호수나 강에서는 모닥불과 함께 허수아비를 태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축제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허수아비에 달린 주머니에다 벗어나고 싶은 불행과 슬픔, 근심 등이 적힌 종이쪽지를 넣고 함께 태웠다. 한 해의 재앙이 불꽃과 함께 사라진다는 믿음에서다.

올해 모스크바 시내에서 열린 축제에서는 전통과 격식이 파괴되는 장면들이 보였다. 축제 마지막 날인 9일, 붉은 광장에 모인 러시아 남성들은 불평을 털어놓았다. 모스크바 남쪽 툴라에서 놀러 온 세르게이 다리킨 씨는 “원래 축제 기간엔 전통술인 보드카를 마시며 추위를 녹이는 풍습이 있었지만, 행사 주최자들이 사고를 우려해 술 판매를 금지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남쪽 콘코바 공원 입구에서는 길거리 상인들이 만든 블린이 팔리지 않은 채 진열대에 쌓여 있었다. 한 상인은 “전자상점에서 블린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이벤트 행사장으로 갔다”면서 “축제 때 반짝하던 블린 대목도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축제가 끝난 지금도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는 태우지 않은 허수아비가 즐비하다. 길거리에서 만난 연금생활자 알료나 하케예바 씨는 “갑작스런 경제성장으로 축제가 더 화려해졌지만, 날씨와 축제 모두 계절감각을 오히려 잃게 만들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주간동아 2008.03.25 628호 (p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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