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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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절대반지를 얻는다면?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입력2007-10-15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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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만약 절대반지를 얻는다면?

    영화 ‘반지의 제왕3’.

    고대 그리스 리디아 왕국에 착한 양치기 소년 지게스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천둥번개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지진이 일어났다. 지게스는 목초지가 갈라진 것을 알고 놀랐지만 호기심이 생겨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몸에 작은 문이 달린 채 속이 텅 빈 청동 말 한 마리가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손가락에 반지를 낀 송장이 있었다. 그는 반지를 빼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지게스는 양치기 모임 날 반지를 끼고 갔다. 그런데 무심코 반지를 손 안쪽으로 돌렸더니 갑자기 투명인간이 되어, 양치기 친구들은 마치 그가 없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반지를 손 바깥쪽으로 돌리자 지게스는 다시 보이게 됐다. 신기한 마법반지를 갖게 된 지게스는 왕의 사자 일행에 끼여 왕궁으로 갔다. 그리고 왕비와 간통한 후 그녀와 모의해 왕을 살해하고 왕국을 차지한다. 폭군 지게스로 돌변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서광사)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 운을 뗀 ‘착한 양치기 소년 지게스’ 설화다. 만약 마법반지가 두 개 있어서 하나는 지게스와 같은 착한 사람이, 다른 하나는 나쁜 사람이 낀다면 꼭 나쁜 사람만이 투명인간이라는 점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할까? 플라톤의 작은형 클라우콘과 큰형 아데이만토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목동 지게스처럼, 원래 착한 사람도 욕심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사람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절대적인 힘을 얻고도 욕심을 채우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자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사람들은 올바름과 착함 그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수나 평판 때문에 올바르게 행동한다. 올바른 사람보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생각하므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선은 아름답기는 하나 힘들고 수고로운 반면, 올바르지 못한 길은 손쉽고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이 때문에 플라톤은 ‘위대한 스승님’ 소크라테스에게 ‘올바름(善)’ 그 자체가 왜 좋은지를 증명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두 형은 동양의 순자나 한비자처럼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본다. 그래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게 계속 질문해 ‘올바름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내도록 한다. 우리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비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힘, 즉 지게스의 마법반지를 낀 다음에도 ‘도덕적일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미 영화화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영국작가 J. R. 톨킨의 ‘반지의 제왕’(황금가지)이 바로 플라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형식의 판타지 소설이다.



    평화롭고 작은 샤이어 공화국에 사는 난쟁이 호빗족 빌보는 우연히 낡은 금반지 하나를 얻는다. 그 반지는 바로 ‘암흑의 제왕’ 사우론이 만든, 세상을 지배하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주는 ‘절대반지’다. 빌보는 이 사실을 알고 조카 프로도에게 반지가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없애라고 한다. 그런데 절대반지를 영원히 파괴하는 유일한 길은 반지가 만들어진, 즉 사우론이 살고 있는 ‘불의 산’ 용암에 던져 넣는 것이다. 세계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진 프로도와 친구 샘은 불의 산으로 반지원정을 떠난다. 절대반지를 탐내는 골룸을 만나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와 반지원정대는 프로도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사우론과 싸우며 그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린다. 프로도는 인간성과 의지를 실험하는 절대반지의 유혹을 뿌리치고 불의 산 용암에 결국 절대반지를 던지고 세상을 구원한다.

    올바름 추구는 개인 의지와 선택의 메시지

    톨킨은 과연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해주려고 한 것일까. 플라톤의 형들처럼 사우론의 반지는 도덕성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절대반지를 낀다면 반드시 지게스처럼 변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샘 감지와 같은 호빗, 고귀한 품성의 인간 아라고른처럼 우리 중 누군가는 절대반지의 유혹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일까.

    물론 갈라드리엘이나 톰 봄바딜은 반지의 힘을 완전히 초월한다. 하지만 착한 호빗족 주인공 프로도마저 절대반지를 파괴해야 하는 순간 망설이고 만다. 다행히 프로도에게는 샘이라는 ‘순수한’ 친구가 있었다. 샘이 없었다면 프로도 또한 골룸처럼 타락했을 것이다. 절대반지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얘기를 통해 톨킨은 우리 모두가 플라톤의 지게스처럼 될 수도 있지만,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렸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닐까.

    스위스 극작가 뒤렌마트는 희곡 ‘물리학자들’(1962)에서 과학자들의 정치적 책임문제를 신랄하게 다룬 바 있다. 위대한 물리학자 뫼비우스는 자신의 과학지식이 인류의 멸망을 가져오리라고 예감한다. 그는 아마겟돈 재난을 막기 위해 정신병원으로 도망친 뒤 광인으로 위장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라는 두 정신병자가 정말로 정신병자가 아니라 뫼비우스의 지식을 빼내기 위한 스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뫼비우스는 ‘인류 멸망을 가져오는 아마겟돈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을 설득한다. 그러다 무심코 책상에 낙서를 한 그의 과학이론이 ‘쥐도 새도 모르게’ 곱사등이 처녀 정신병원장에 의해 이윤만 추구하는 군산복합체 기업에 팔리고 만다.

    “뉴턴 : 끝났어.

    아인슈타인 : 세계가 미치광이 정신병 여의사의 수중에 떨어졌군.

    뫼비우스 :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발명된 것은 이미 취소할 수가 없는 거야.

    아인슈타인 : 나는 아인슈타인입니다. 1879년 독일 태생. 1902년 나는 독일 특허국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물리학을 바꿔놓을 수 있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립했지요. 그리고 나중에 망명자가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탄압했는데 나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죠. 내게서 공식 ‘E=MC²’이 나왔습니다. 물질을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열쇠지요. 나는 인간을 사랑하고 바이올린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나의 권유대로 사람들은 원자폭탄을 만들었지요. 나의 공식 ‘E=MC²’과 원자폭탄은 이전보다 사람을 수천 배 더 손쉽게 죽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입니다.”

    선과 악, 야누스 얼굴처럼 동전의 양면

    과학지식이 과학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이 희곡은 ‘맨해튼 계획’의 수장이던 오펜하이머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이후 원자폭탄 제조 반대운동가로 변신했듯, 과학자는 과학 업적보다는 양심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여기서 뫼비우스는 바로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과학기술이 절대반지가 돼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미치광이로 가장했을 것이다. 노벨의 다이너마이트가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뚫는 폭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무더기로 죽이는 폭탄이 될 수 있듯 말이다.

    뫼비우스와 톨킨이 걱정하는 절대반지의 예는 실제 무수히 많다. 이디 아민과 같은 독재권력자, 핵무기, 생화학무기, 생명유전공학, 인간복제 기술, 로봇…. 그리고 신정아 사건에서 보듯 학점지상주의 사회에서는 학벌 간판이 절대반지일 수 있다.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않은 곳에서는 권력만 얻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절대반지형 권력추구 현상’ 탓에 뭇 인간이 이성을 잃고 정쟁만 일삼는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 인간의 본성을 상징하는 인물은 한때나마 반지의 소유자였던 골룸을 통해 드러난다면서 ‘골룸은 바로 인간 자신의 모습’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한 개인 안에 선과 악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고, 절대반지 역시 선악이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은유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플라톤, 뫼비우스, 톨킨 등이 했던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자. 만약 당신이 지게스나 빌보처럼 우연히 절대반지를 주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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