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6

2007.10.16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 흔들린 오만과 편견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7-10-15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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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 흔들린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영국 문학에 로맨스의 향기를 불어넣은 작가였다. 21세기에 태어났더라면 ‘파리의 연인’ 같은 멋진 연애 드라마를 써서 떼돈을 벌었을지 모르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같은 자작 시나리오를 써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775년에 태어나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이 영국 여성은 평생 혁명 따위와는 담을 쌓은 채 오빠 집에 얹혀살며 틈틈이 익명으로 쓴 6편의 소설을 남기고 41세에 요절했다.

    그럼에도 ‘에마’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 ‘맨스필드 파크’ 등 그가 남긴 작품은 죄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재탕 삼탕 우려졌다. 이 소설들이 없었더라면 할리우드 코스튬 드라마(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의상·소품 등을 이용해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사물)의 명운은 어찌 되었을까.

    나는 제인 오스틴의 짧은 연애담을 기둥으로 한 ‘비커밍 제인’이 만들어진 까닭은 순전히 할리우드가 ‘오만과 편견’을 2년 만에 또다시 영화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오만과 편견’의 드라마화가 BBC 드라마를 포함해 총 6번째 시도됐으니, 2007년도에 다시 한 번 ‘오만과 편견’을 만들 수 없었을 터. 그래서 이번에는 참신한 신세대 스타 앤 해서웨이를 간판으로 내세워 아예 제인 오스틴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비커밍 제인’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한 가지다. 영국 문학의 진수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이나 ‘맨스필드 파크’ ‘설득’의 한 챕터라도 읽든지(‘비커밍 제인’에서는 이들 소설의 요소들이 숨은 그림 찾기를 하고 있다),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제인 오스틴에 대한 관심 한 조각이라도 있어야 한다. ‘비커밍 제인’의 실체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그 작가, 제인 오스틴의 힘에서 나오니까.

    18세기 작가 제인 오스틴 자전적 이야기 현대적 해석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뒤바뀌어 있는 피아노를 일요일 아침부터 한 소녀가 난데없이 연주한다. 여자에게 유머는 필요하지만 재치는 위험한 재능이라고 설교하는 시골 목사를 아버지로 둔 제인. 그녀는 이른 새벽 가위를 들고 스스로 쓴 원고를 검열하며 작가의 재능을 힘껏 북돋우고 있다. 물론 제인도 이제 스무 살이 되었고, 주변 남자들의 청혼이 줄을 잇는다. “사랑을 선택한 대가로 감자나 캐고 있다”고 주장하는 어머니와 “가난처럼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는 흐리멍덩한 부자 청년의 청혼을 받아들일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사랑을 느끼는 대상은 런던에서 날아온 아일랜드 법률가이자 질풍노도 같은 사내 톰 리프로이.

    비커밍이란 말에서 풍기는 자아실현의 느낌처럼,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한다. 얌전한 시골 규수라는 것 외에는 그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 없는 그녀지만,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젊은 날 셰익스피어를 그려냈듯 제인 오스틴이라고 공상의 나래를 못 펼칠쏘냐. 앤 해서웨이가 분한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들처럼 사려 깊고 현명하며 지적이다. 게다가 남자들이 하는 크리켓 게임에서 방망이를 휘두르고, 돈 많은 속물 노파 앞에서든 사랑을 느끼는 남자 면전에서든 떳떳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문제는 이렇듯 새롭게 재해석된 현대적 감각의 제인이 어찌해서 오만 방탕한 데다 처음에는 독설까지 교환하던 톰 리프로이와 사랑에 빠지는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초기에 톰과 제인의 연애는 오스틴의 소설처럼 가볍게 서로를 비꼬며 유머와 풍자로 화답하는 고전적인 로맨스 영역을 넘나든다. 그러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제인은 톰과 야반도주하다 그가 동생이 줄줄이 달린 집안의 가난한 법률가라는 것을 깨닫고 갑자기 집으로 되돌아온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제인 오스틴 소설의 매력이 계급을 넘어선 소소한 캐릭터 묘사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비록 마크 트웨인이 “나는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마다 그녀의 무덤을 파서 정강이뼈를 찾아 그것으로 그녀의 해골을 패주고 싶다. 이 세상에서 오스틴 작품이 없는 도서관은 무조건 좋은 도서관이다”라고 말했다지만, 제인 오스틴처럼 섬세하게 부와 계급 유지에 매달리는 영국 중산층의 겉치레를 묘파한 작가는 드물다(때문에 ‘비커밍 제인’은 원작자인 제인 오스틴에게 시나리오 작법을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비커밍 제인’을 보면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신예감독 줄리언 제럴드의 정적인 연출이다. 영화 시작부터 계속되는 시계소리가 끈질기게 제인을 따라붙는데, 톰이 나타나자 사라졌던 시계소리는 제인이 톰과 사랑의 도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다시 그 뒤를 따라붙는다. 그런가 하면 얼룩진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거나, 롱테이크 롱샷으로 호수 위의 한 점처럼 잡힌 오스틴 자매의 모습은 모두 영국 중산층의 질식할 듯한 분위기에서 사랑에 목매도 원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18세기 여성들의 숙명을 대변하는 듯하다.

    부와 계급 유지 영국 중산층 겉치레 그려

    그렇기에 ‘비커밍 제인’은 ‘읽는 영화’가 아니라 ‘보는 영화’로서 제인 오스틴의 시대를 되살린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샤넬의 명품을 걸쳤던 앤 해서웨이의 고전 패션쇼라고 해도 좋을 ‘비커밍 제인’은 차고 넘치게 코스튬 드라마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한 여성의 자아 찾기와 눈먼 사랑의 격정에 따른 아드레날린 분출 사이에서 망설인다.

    영화는 결국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야말로 그녀가 합일할 수 없었던 사랑의 이상과 고통스런 현실의 타협물임을, ‘오만과 편견’ 매력남 달시 역은 그녀가 이도 저도 택할 수 없었던 부잣집 귀족 위즐리와 오만하지만 낭만적인 톰 리프로이의 환상적 결합물이란 사실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모든 작품이 해피엔딩인 까닭도, 그녀가 스스로에게 주는 조그만 위로는 아니었는지. ‘비커밍 제인’. 에밀리 브론테의 격정적인 낭만이 부담스러워질 때 제인 오스틴의 소설(또는 영화)을 들여다보자. 시대를 앞섰던 한 여성의 은은한 미소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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