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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2007 남북정상회담

다시 ‘악수’와 ‘선언’ 거품이거나 걱정이거나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 의지 진일보 … 공동번영 실천과 신뢰는 여전히 ‘안개 속’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다시 ‘악수’와 ‘선언’ 거품이거나 걱정이거나

북한의 올 겨울은 무척 지독할 뻔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해올 만큼 경제난은 절박했다. 탈북자 K씨의 증언이다.

“북한의 지인들과 자주 통화(북한의 북-중 국경 지역에선 중국 휴대전화가 터진다)하는데, 상황이 1995년 ‘고난의 행군’ 초입 때보다도 나쁘다. 아사자(餓死者)가 나타났으며 통제도 이완되고 있다. 수해 탓에 농사도 망쳤다.”

중국 베이징(北京)의 대북사업가 K씨가 전하는 북한의 상황도 비슷하다.

“식량난으로 대중의 불만이 눈에 띄게 고조됐다. 통제력이 약화돼 봉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평양이 정상회담에 나선 건 한마디로 ‘먹을 거’ 좀 달라는 거였다.”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256억 달러(1인당 GNI=1108달러)로 한국(8873억 달러)의 35분의 1. 한국은행의 이 추산은 북한 생산물에 한국 가격을 곱한 것이므로 북한의 실제 GNI는 이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노동신문’에 실린 올 신년사설에서 경제문제를 첫머리에 거론하며 ‘절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단어를 사용한 건 1995년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1.1%.

서울은 10월2~4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 △평화벨트 △남북경제공동체 △조선소 건설 △농업, 과학기술, 보건복지 분야의 협력사업 등 준비해간 의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북한의 속내는 조금 달랐다. 가장 시급한 것은 혹한기, 춘궁기에 필요한 쌀이었다. 북한이 당면한 어려움만을 해결하기 위해 정상회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었다. “북한의 바람대로 쌀 차관 70만t을 제공하면 남측의 제안이 상당 부분 수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최근 10여 년 동안 북한에 지원된 액수는 결코 작지 않다. 10월2~4일 정상회담 직후 진영 의원(한나라당)이 통일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95년부터 올 7월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가 북한에 지원한 액수만 7조원(식량 차관 포함)에 육박한다.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은 기본적으로 ‘통일투자’임에도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퍼주기는 ‘주기만 하고 받는 게 없어서’ 나온 불평이다. ‘제대로 주고, 제대로 받는’ 공식이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북사업가 “먹을 거 좀 달라는 회담”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부 중 북한에 가장 많은 지원을 했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단체가 지원한 7조원 중 3조5000억원가량이 현 정부에서 집행됐다. 김대중(DJ) 정부 때는 1조4915억원, 김영삼(YS) 정부 때는 2314억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식량 차관 포함) 액수에서도 역대 정권 중 으뜸이다. 현 정부의 인도적 대북지원 액수는 1조3868억원으로 DJ 시절(6153억원)보다 갑절 이상 많다. 1995년부터 2007년 8월까지 인도적으로 지원된 액수(2조2139억원)의 63%가 현 정부에서 이뤄졌다.

그런데도 북한은 지난해 7월5일 미사일 시험발사와 10월9일 핵실험으로 ‘뒤통수’를 쳤다. 노무현 정부는 핵실험 직후엔 북한과 소통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아무런 직함도 없는 안희정 씨를 내세워 비선(秘線)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다가 우왕좌왕한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을 늘렸음에도 민중의 생활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의 남북경협 및 대북지원 성과가 컸다고 하기 어렵다. 개성공단만 해도 북한의 불만대로 정치적 상징물을 크게 넘어선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는 한국의 도움 없이는 연명하지 못할 만큼 좋지 않다. 그동안 북측에 투자·지원된 자금이 효율적으로, 실사구시적으로 쓰였다면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지 모른다. 그런데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뒷돈인 5억 달러(4500억원)는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개성공단이 개방의 표본이라고 선전돼온 것은 노 대통령의 말대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서 나오는 비판적 반응은 이랬다. “개성에서 배우는 산업지식 습득이 있는가? 없다.” “하나에 몇 푼 떼는 임가공이랑 다를 바가 없다.”

인도적 지원 급증, 그래도 주민들 생활은 ‘팍팍’

개성공단과 관련해 투자된 액수는 사업권 구입 5억 달러를 포함해 5억2089만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인풋’ 대비 ‘아웃풋’은 ‘글쎄요’다. 평양에서조차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확대, 발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거셌다. 그러면서도 평양은 정상회담에선 통행·통신·통관의 3통(通)에 대해 ‘조속히 완비해 나가겠다’며 비켜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2개성공단 건설을 구체적으로 합의하려 했으나 평양 측의 반응은 미지근했다고 한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이면서 개성공단 생산품목의 원산지마저 한국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협상력을 보였다. 남북한 경협도 국제문제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10월3일 평양 옥류관에서 “개성공단을 ‘개혁’과 ‘개방’의 표본이다”라고 얘기했는데, 우리식 관점에서 우리 편하게 얘기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런 사실을 평양에 가서야 알았다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북한전문가의 말이다.

“개성공단은 DJ 정권과 현대의 결합으로 시작된 시작부터가 정치적 사안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DJ의 미완성 건축물을 넘겨받아 관리만 해왔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서도 성과가 있는 것처럼 선전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개성공단의 북한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낮다. 그런데 이번에 개성공단에 대한 마스터플랜, 리모델링 계획도 올바르게 제시하지 못한 채 ‘제2공단’ 이슈를 꺼냈다. 개성공단에 두 정상이 함께 방문해 ‘성공적인 사업’에 만족감을 나타낼 것이라는 관측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은 ‘점’(개성 해주 등)을 ‘선’으로 연결해 ‘면’을 구축하는 형식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가 공동선언에 명시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북한은 선과 선이 이어지는 걸 껄끄러워한다. 개혁, 개방이라는 용어 자체에 불신과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개성을 군사섹터에서 경제섹터로 바꿔놓은 개성공단은 개성이 6·25전쟁 때 북한군의 주 공격루트였다는 사실에서 큰 의의를 지니며 중소기업들의 숨구멍을 열어준다는 면에서도, 즉 산업경제 면에서는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개성공단의 오늘’은 기대 이하인 것이다.

금강산 관광사업도 회임(懷妊) 과정의 업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관련 비용은 4억6092만 달러로,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에만 9800억원이 투자된 셈이다. 금강산 관광은 여전히 사업성 있는 비즈니스로 남기가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이 투입되는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도 허투루 쓰인 부분이 많다. 민간섹터의 지원 역시 노무현 정부 때가 가장 많다.

1995년부터 올 7월까지 민간섹터의 북측에 지원된 액수는 6691억원. YS 때 196억원, DJ 때 2402억원이 지원됐고 현 정부 들어 현재까지 4091억원이 지원됐다.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뤄져선 곤란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북사업가 K씨의 말부터 들어보자.

“민간 지원 단체들의 상당수가 지원 액수의 절반 넘는 자금을 잘라먹는다. 놀랍겠지만 이것이 실상이다. 서류를 평양에서 만든 것처럼 위조하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수법이다. 베이징이나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도장을 스캔(scanning)해 팩스로 몇 차례 주고받는 식으로 서류를 위조한다. 심각한 일이다. 중국 등에 유령회사, 단체를 두고 돌려먹기식으로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이것이 알려져 정확한 조사가 이뤄진다면 서울은 당장 뒤집어질 것이다”

선언적 측면 강한 남북경협 프로젝트

남북협력기금은 남북한의 상호신뢰와 동질성 회복을 위한 인적 교류 및 경제협력을 촉진할 목적으로 설치됐다. 그런데 사용처에 대한 증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악취’를 풍기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L의원은 남북협력기금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관여하는) 재단의 사무총장이 어느 날 쫓아와서 협력기금, 그거 5억원만 쓰게 해달라고 그럽디다. 그러면 한 3억원은 남는다고. 국정감사 때 협력기금 사용명세를보니까 문제가 심각합디다. 사용금액은 있는데 명세가 없는 게 수두룩해요. 아주 큰 액수도 그렇더군요. 종이에 그냥 액수만 적혀 있고 아무것도 없어요. 몇백억짜리도 그렇고. 정말로 심각해요.”

예산을 따내는 데 필요하다면서 북한에 특정 서류를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남북협력기금을 더 받아내야 하므로 요구 물품 항목을 늘려달라고 평양에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나랏돈으로 평양에서 북측 인사들과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북한 관료들의 호주머니로도 지원금의 일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전문가의 설명이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을 선서한 사람’들이 버글대는 곳. 부서에서 돈을 주며 일을 시키지 않고, 돈을 독립적으로 벌어서 살고, 정해진 돈을 국가와 상부에 입금해야 하는 곳. 그래서 영웅이 되고 이런저런 훈장을 받는 곳이 평양이다. 북측의 오늘날 경제현실에 청진기를 대고 무엇이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경협인지 살펴봐야 한다. 10원 들어갈 곳에 100원을 지출하지는 않았는지, 100원을 넣고 10원의 성과밖에 거둔 건 아닌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어쨌거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담론은 핵심 이슈였다. 그 결과가 합의문 5항(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 하구 공동이용)와 안변과 남포 조선협력단지,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의 협력사업 등이 이름을 올렸다. 조선협력단지를 비롯해 한강 하구 공동이용, 사회기반시설 지원 착수 등은 통일투자면서 실사구시적인 ‘주고받기’식 사업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평화 이슈가 경제적으로 투영된 경협사업 중 상당수는 노무현 정부 임기 내에 실행이 가능하지 않다.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과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로 상징되는 ‘평화벨트 사업’도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았다. 경제특구 건설은, 대상지역이 북한군 기지인 데다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안개 속’이다.

결과적으로 “실사구시형 실무회담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장담은 다소 어긋났다. 10·4 공동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적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미관계 개선 속도도 변수다. 남북 경제공동체와 평화체제라는 두 개 축을 잡고 이번 회담에 나섰으나 한계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불신의 벽’을 한번에 깨뜨리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선언문 속 경협 사안엔 구체성이 결여된 막연함과 모호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거쳐 쌀 차관 40t가량을 북한에 추가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식량난은 조금 숨통을 트게 됐으나 얻는 것 없이 퍼주기만 했다는 논란이 또다시 나올 수 있다.

‘주간동아’는 올 2월 토지공사가 국방부,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북한 개발 로드맵’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적이 있다(572호 ‘토공, 남포공단도 착공하나’ 제하 기사 참조). 북한의 6개 주요 도시(남포, 해주, 함흥, 원산, 신의주, 나진·선봉)를 분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특구 건설을 위해 해주의 도로·철도·항만 건설비와 남포의 4개 항만·도로·발전소 건설비용만 각각 1조여 원, 9400억원이 필요하다.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이 희망하는 중유와 경수로를 제공하고, 고속도로 개보수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에 나설 경우 대북 지원액은 앞으로 4∼7년에 적어도 9조원에서 많게는 1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투입되는 자금도 그동안의 남북경협 및 대북지원 사업처럼 집행된다면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얻는 것 없이 퍼주기만 했다” 논란

국제문제와 남북문제가 얽힌 구도에서 한계에 부닥친 노무현 정부는 4년 반 동안 북한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4년 반을 까먹고 난 뒤 이뤄진 정상회담이었고, 그마저 한 차례 연기되는 풍파를 겪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에 가장 많은 지원을 했으면서도 그동안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북한에 우호적이면서도 북핵문제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이나 국내 노동집약적 중소기업 처지에서 북한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북 인력(원료)+남 기술’ 조합의 상생거리는 널려 있다. 개성공단이 올바르게 리모델링되고 실사구시적 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기 어렵다.

그러나 남북한은 2000년 6·15 공동선언이 가졌던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 해법을 그동안 찾지 못했고, 어떻게 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에서 의견이 여전히 엇갈린 듯 보인다. 노 대통령도 “북한과의 대화에서 벽을 느꼈다”는 말을 했다.

노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인 대선까지 2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경제+평화이슈가 11월에 열릴 남북 총리회담과 국방장관 회담에서 얼마나 구체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북에 대한 경제 지원과 협력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가 임기를 마친 뒤 가장 많이 주고 가장 얻은 게 없는 정부라는 비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이 당면한 어려움만을 해결하기 위해 정상회담에 나섰다는 일각의 의구심이 현실이 돼서는 안 된다. ‘악수’하고 ‘선언’을 낭독했으나, 남북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다시 ‘악수’와 ‘선언’ 거품이거나 걱정이거나




주간동아 606호 (p36~40)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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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85호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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