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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휴대폰 문화인류학

언제 어느 때나 소통한다, 고로 열광한다

언제 어느 때나 소통한다, 고로 열광한다

언제 어느 때나 소통한다, 고로 열광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드리아(앤 헤서웨이 분)에게 휴대전화는 필수품이자 족쇄다.

“만일 우리 인생이 단 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몰리

입시철마다 일류대 수석합격자들이 신문에 대서특필되던 시절이 있었다. 신문에 실린 사진 속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전화기를 귀에 대고 활짝 웃는 표정이었다. 쇄도하는 축하전화를 받느라 기자와 인터뷰할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신문사 측에서 전화받는 장면이 기사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경사가 났을 때 전화는 낭보를 신속하게 전달해주는 말길이 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러고 보니 1974년 권투선수 홍수환 씨도 세계타이틀을 따낸 직후 전화기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목소리가 미치지 않는 거리에서 소통하는 방법은 인류 역사를 통해 여러 가지로 개발돼왔다. 수신호나 몸짓, 북이나 나팔, 종소리, 봉화, 전령 비둘기, 편지 등이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에 동원됐다. 근대 산업문명이 꽃을 피우면서 개발된 전신(電信)은 텔레커뮤니케이션의 초석이다. 물리적 속도로만 따진다면 아무리 빠른 기차나 비행기도 150년 전 발명된 모르스 전신 연락에 미치지 못한다. 자동차나 기차가 말[馬]을, 비행기가 새를 모방한 데 비해 원격통신은 인간의 능력으로 획득한 독창적 기술이다. 아주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기술, 빛의 속도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스템을 구현하면서 인간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마음에 정밀하게 집적, 점점 더 중독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 누군가와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을 널리 장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통은 곧 권력이다. 군대나 감옥에서의 통신매체 접근 차단은 집단을 통제하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뛰어난 통신수단을 지닌다는 것은 그만큼 우월한 지위에 있음을 암시한다. 전화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 전화가 있는 집은 온 동네의 부러움을 샀다.



휴대전화도 예전에는 그랬다. 무선호출기 ‘삐삐’가 필수품이었고 휴대전화가 조금씩 확산되던 1990년대 중·후반 시절을 돌이켜보자. 삐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기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느긋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등급에 속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기기값과 통신요금이 너무 비싼 상황에서 휴대전화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지금, 그러한 ‘차별효과’는 사라졌다. 이제는 휴대전화 소지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고급 제품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소비 급수가 가늠된다.

의식주와 함께 현대생활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또 하나의 영역이 ‘교(交)’다. 장소와 장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교통과 통신이 그것이다. 자동차와 전화는 20세기에 보편화된 테크놀로지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교통과 통신은 보급 속도에서 대조를 이룬다. 자동차에 비해 인터넷과 전화는 어느 시기에 접어들면서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자동차는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교통체증이 가중돼 그 물건으로 얻는 편익이 감소한다. 그에 비해 전화나 인터넷은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그 개별기기의 효용이 점점 더 높아진다. 접속할 수 있는 대상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임계치를 지나면, 있으면 편리한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불편한 단계에 이른다. 휴대전화를 전제로 생활과 업무, 그리고 인간관계가 영위되기 때문에 나 홀로 거부하기도 어렵다. 본인은 괜찮을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다며 원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드리아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려댄다. 편집장 미란다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업무를 지시하거나 진행상황을 점검하기 때문이다. 영화 결말에 이르러 앤드리아는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 휴대전화를 분수대에 던져버린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 장면에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직장에서 휴대전화는 사원들을 구속하는 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자유와 편리함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일지도 모른다. 네트워크 속에 자신을 노출하기로 결정한 이상 접속은 불가피하다. 모바일, 그리고 온라인은 삶 속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고 있다. 우리는 그 통신을 귀찮아하면서도 열렬히 환영한다. 친구나 애인에게서 배달되는 메시지는 삭막한 일상에서 위로가 된다. 답답한 세계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른다. 지하철이나 비행기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서둘러 휴대전화로 가족을 찾듯, 소통은 사람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존재 의미다. 그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언제 어디서든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이 살아 있음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휴대전화는 인간의 마음, 그 오묘한 코드를 정밀하게 집적한 기계장치다.



주간동아 603호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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