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2007.09.18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희귀한 ‘합작품’

  • 편집장 송문홍

    입력2007-09-12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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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에서 별도 기사로 다루진 않았지만,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언론 노출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국정원을 격려 방문하겠다”며 김 원장을 두둔했다지요.

    ‘시대 변화에 따라 정보기관의 역할과 활동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청와대의 주장이 일견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건 노무현 정부에 정보기관 운영의 ABC, 나아가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일 뿐입니다.

    국가정보기관을 다루는 교재들에 따르면 “국가이익을 위해 국가기구가 공개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합법·비합법 수단을 동원해 수행하는 기구”가 바로 국가정보기관입니다.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정보기관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때로 비합법 수단을 활용할 경우도 있는데, 그 판단의 최종 주체는 결국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물론 대통령 결정에 대한 사후 검증은 국민대표인 의회와 언론의 몫이지요). 당연히 그들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비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피랍자 석방을 위한 탈레반과의 협상은 우리 정부에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가족 품에 데려와야 한다는 과제와, 테러단체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전 세계 민주국가들 사이의 묵시적 합의가 그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후자의 가치를 포기하는 대신 전자의 가치를 택했지요.

    그런데 그 과정에 국정원장이라는 사람이 마치 ‘나 잘했지?’ 하듯이 TV에 얼굴을 내밀고, 여기에 대통령이 ‘그래, 참 잘했어’라며 맞장구치는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먼저, 이를 지켜본 다른 나라 정부와 정보관계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최소한 ‘저 나라와는 비밀스런 얘기를 하기가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한국이 과연 테러 반대 대열에 동참하는 나라인지’ 의구심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외국의 정보관계자라면 ‘드러내놓고 공적을 자랑하는 저런 나라의 정보기관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겁먹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은 국가간 경쟁과 협력이 갈수록 심화되는 시대입니다. 세계화에 맞춰 국제범죄, 테러 등 국경을 넘나드는 어젠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때 한국의 정보기관 수장과 대통령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수를 놓고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일부 대학에 개설된 정보학 교과목 중에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 사례연구’라는 게 있습니다. 각국의 정보활동 중 실패 사례들을 모아 그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는 수업입니다. 성공한 정보활동은 결코 공개되는 법이 없기에 ‘정보성공 사례연구’라는 과목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만복 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합작품’은 세계정보사(史)에 희귀한 사례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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