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8

2007.08.14

광고 욕망이 춤추는 땀에 젖은 셔츠

유니폼 앞면 천문학적 광고료 … 경기장 옷이 아니라 현대사회 아이콘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8-08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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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유니폼 앞면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잉글랜드의 빅 클럽 첼시는 삼성전자에서 5년간 100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유니폼 앞면에 ‘Samsung Mobile’ 로고를 단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미국 금융기업 ‘AIG’ 로고를 달면서 4년간 비슷한 액수를 받았다. 국내 구단들도 1년에 10억원 상당의 광고료를 받고 모기업 로고를 부착한다. 뒷면에는 선수 이름과 등번호가 붙는다. 그래서 유니폼에서 정작 팀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폰서 광고에 비해 아주 작은 크기로 팀 휘장 또는 이름을 새긴다.

    선수들도 상대 팀 선수와의 유니폼 교환을 하나의 의식으로 존중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위생 문제를 들어 경기 직후 유니폼 바꿔입기를 자제해달라고 한 적도 있지만, 씨름 선수들이 샅바를 당길 때 상대 선수의 땀을 느끼듯 축구 선수들도 땀에 전 유니폼을 바꿔 입음으로써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2002년 9월7일 남북통일축구대회가 끝난 뒤 남측의 최태욱 선수와 북측 선수는 유니폼뿐 아니라 축구화까지 바꿔 신어 ‘짜릿한’ 감동을 주었다.

    경기 후 상대팀과 유니폼 교환은 하나의 의식

    물론 모든 풍경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7월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월드 시리즈 오브 풋볼 2007’에서 첼시와 경기를 마친 수원의 이현진이 특급 공격수 디디에 드로그바에게 유니폼을 바꿔 입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일부 팬은 드로그바가 이현진을 무시했다고 비난했으나, 첼시 구단 측에서 무슨 까닭인지 유니폼을 바꿔 입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유명한 사건이 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탈리아 대 프랑스 결승전. 우리는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을 들이받은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연인즉 연장전에 돌입하면서 이탈리아의 마테라치가 집요하게 지단의 유니폼을 붙잡자 지단은 “내 유니폼이 갖고 싶거든 경기가 끝난 뒤 주겠다”며 가볍게 놀렸던 것이다. 이후 과정은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네 유니폼보다는 누나를 갖고 싶다”는 식으로 마테라치가 맞받아쳤다는 뒷얘기도 있다.



    어쨌든 유니폼은, 더욱이 지구 전체를 커버하는 어마어마한 위성미디어 체계와 다국적기업의 광고 욕망이 집중된 유니폼은 축구가 단순한 경기 차원을 넘어 현대사회의 아이콘으로 작용하게 한다. 명문 구단의 유니폼을 구매해 입는다는 것은 스포츠 셔츠 하나를 샀다는 뜻이 아니라 해당 구단의 역사와 이미지를 구매함으로써 감정이입을 시도하겠다는 문화적 욕망인 것이다.

    그런데 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포기’하는 예도 있다. 5월 프리미어리그 막바지에 에버턴은 납치당한 꼬마 매들린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뛰었다. 꼬마의 아버지가 에버턴 팬이었다고 한다. 또 7월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89회 생일 기념 올스타 대회에서는 유니폼 앞면에 ‘46664’라는 숫자를 새겼는데, 이는 28년 동안 갇혀 지낸 만델라의 수인번호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가 있다. 100년 전통의 바르셀로나는 유니폼 앞면에 어떤 것도 새기지 않는다. 다만 2006~2007시즌에서는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를 새겼다. 물론 유니세프로부터 광고료를 받지 않는다. 이 팀은 앞으로 5년 동안 구단 수입에서 150만 유로를 적립해 극빈국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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