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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게릴라의 개성만점 배낭여행 (33) 벨기에 브뤼헤

시간 멈춘 중세 동화의 나라로 초대

  • 글·사진=이용한

시간 멈춘 중세 동화의 나라로 초대

시간 멈춘 중세 동화의 나라로 초대

마르크트 광장 남쪽에 자리한 살바토르 성당.

이른 아침, 북해 연안에서 몰려온 안개가 한 겹씩 베일을 벗으면서 중세의 역사문화도시 브뤼헤(Brugge·2000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의 아름다운 자태가 햇볕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부터 마르크트 광장에는 600여 년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중세의 골목을 빠져나온 여행자들이 하나 둘 마차에서 내리고, 브뤼헤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종탑을 오르기 시작한다. 366개의 계단 끝자락에 매달린 47개의 종을 만나러 가는 아침의 여행자들. 종탑 문이 열리는 순간, 여행자들은 가장 먼저 종루에 오르기 위해 숨가쁘게 계단을 올라간다.

왜 모두들 그렇게 숨가쁘게 올라왔는지는 종루에 올라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곳은 사방에 펼쳐진 브뤼헤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며, 중세도시의 그윽한 향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둥그렇게 수로가 감싸고 있는 브뤼헤 도심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로로 세워놓은 달걀처럼 생겼는데, 그 노른자위에 마르크트 광장과 종탑이 자리해 있다.

종루에 올라 브뤼헤 도심을 내려다보면 북서쪽으로 어스름하게 풍차 언덕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살바토르 성당과 비헤인호프가, 서북쪽으로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가 걷히면 도심을 타원형으로 감싸 흐르는 운하의 물길도 선연하게 펼쳐진다.

47개의 종을 거느린 브뤼헤 종탑(13~15세기)은 벨기에의 다른 종탑 29개와 함께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 높이는 88m, 종의 무게를 다 합치면 무려 27t에 이른다. 이 종들을 움직이는 오르골(Orgel·자명금)도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종루 아래층에 오르골이 보관된 방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사실 브뤼헤에 와서 종탑을 오르지 않고는 브뤼헤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자 박물관 … 여유와 낭만 물씬



시청과 종탑 사이로 난 골목을 따라가면 고색창연한 옛 시청 건물(1376~1420년)을 만날 수 있다. 벨기에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관공서 건물로, 2층의 고딕홀은 이제 명소로 자리잡았다. 본래 고딕홀은 옛 시청사 회의실이었는데, 꽃이 핀 듯한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금빛으로 반짝이는 벽화, 은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기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종탑 남쪽에 자리한 살바토르 성당 내부도 고딕홀의 천장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화려함 대신 위엄과 웅장함을 갖추고 있다.

살바토르 성당에서 좀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비헤인호프가 자리잡고 있다. 비헤인호프는 일종의 수도원 보호소로 주로 과부(전사한 군인의 아내들), 보호자가 없거나 순결을 맹세한 소녀들, 수녀들이 살던 ‘여자들만의 마을’을 가리킨다. 본래 비헤인(Begijn)은 ‘순결한 여성’, 즉 미혼 여성과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수녀를 가리키는 말이며, 호프(Hof)는 ‘뜰’ ‘공원’ 또는 ‘안식처’를 뜻한다.

과거 비헤인호프의 여성들은 성처럼 둘러싸인 수도원에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생활을 했으며, 자수공예나 레이스 짜기, 태피스트리(여러 색깔의 실로 그림을 짜넣은 직물) 만들기 등으로 생활을 유지했다.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역에는 12곳의 비헤인호프가 있었는데, 1998년 12월2일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시간 멈춘 중세 동화의 나라로 초대

초콜릿 박물관에서 초콜릿만큼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연인. 네덜란드 풍차의 원형인 플랑드르풍 풍차.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중세도시의 향기가 가득한 수로를 지나고 있다(왼쪽부터).

브뤼헤를 여행하는 방법 세 가지(도보, 자전거, 보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보트나 유람선을 타고 수로를 따라 하는 것이다. 브뤼헤의 수로는 본줄기가 둥그렇게 도심을 둘러싼 모양이며, 도심을 관통하는 수로가 다시 남북을 연결한다. 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로는 중간중간 지류가 뻗어 복잡한 미로를 이루는데, 곳곳에 유람선 선착장이 자리해 있다. 브뤼헤를 서유럽의 베네치아라 부르는 것도 도심 곳곳에 미로처럼 뻗어 있는 수로 때문이다.

수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래된 풍차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풍차는 네덜란드 풍차와는 모양이 약간 다른데, 본래 풍차의 원조가 플랑드르 지역이라고 한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는 플랑드르가 네덜란드에 병합돼 있었지만, 플랑드르 사람들은 지금도 네덜란드가 풍차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브뤼헤에는 유난히 박물관이 많다. 옛날 다이아몬드 가공 중심지답게 시내 남쪽에는 다이아몬드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르크트 광장 인근에는 초콜릿의 역사와 제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초콜릿 박물관이 있다. 맥주 제조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개인 소유 맥주박물관, 중세시대의 카펫에서부터 다양한 생활도구를 전시한 포트리 박물관, 시청사 고딕홀 박물관, 가구와 도자기, 태피스트리, 레이스 등을 전시한 그루터스 박물관, 중세 화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레이디 박물관을 비롯해 소규모 전문박물관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브뤼헤를 가리켜 ‘천장 없는 미술관’이라고 말한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고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대외무역이 성행한 중세의 브뤼헤는 벨기에에서 가장 잘살던 도시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브뤼헤는 전혀 개발되지 않아 가난하고 낙후한 도시로 전락했다. 그것이 오히려 오늘날에는 브뤼헤를 벨기에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어줬다. 두 차례 세계대전이 지나자 중세도시의 원형을 보러 오는 관광객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했다. 브뤼헤 시민들은 당당하게 이곳이 서유럽의 문화수도라고 말한다.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브뤼헤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주간동아 2007.07.03 592호 (p86~87)

글·사진=이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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