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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필 모리슨 감독의 ‘준벅’

시골 시댁 vs 도시 며느리 ‘좌충우돌’ 문화갈등 겪다

시골 시댁 vs 도시 며느리 ‘좌충우돌’ 문화갈등 겪다

시골 시댁 vs 도시 며느리 ‘좌충우돌’ 문화갈등 겪다
도회지에 나가 성공한 큰아들이 아름다운 연상의 신부를 데려왔다. 외교관의 딸로 세계를 여행한 미국 시카고의 여피 화랑 주인 메들린. 사실 메들린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아웃사이더 아트 화가 데이비드 워크의 작품에 반해 신랑 조지의 가족도 만날 겸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시아버지 유진은 좀처럼 속을 알 수 없고, 시어머니 페그는 퉁명스러운 데다 까다로우며,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남동생 조니는 까칠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만 조니의 임신한 아내 애슐리만이 하루 종일 메들린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을 건다.

서로가 서먹하고 버거운 가운데 각자의 마음을 숨기고 있지만, 이 집에는 벽에도 귀가 있다. 숨겨진 한숨 소리, 다투는 소리, 신혼부부의 격렬한 섹스 후 신음소리. 얇은 벽 때문인지, 잠든 척하고 있는 가족의 귀에 그 모든 소리가 울려 퍼진다. 6월 노스캐롤라이나의 햇볕은 너무 길고, 시카고에서 한 가족에게 이르는 길은 너무 멀다.

미국 남부 보수적 가정 배경으로 절묘한 캐릭터 조화

‘준벅’은 원래 ‘6월의 풍뎅이’ 또는 매혹적인 칵테일의 이름이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니와 애슐리의 아기 이름이며, ‘멋진 여자’라는 뜻도 있다. 섹시하면서도 상냥한, 그러나 겨우 며칠 머문 시댁에서 도망치듯 떠나는 메들린이야말로 ‘멋진 여자’인 동시에 ‘풍뎅이’가 아니었을까? 그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아웃사이더 아트의 애호가지만, 찌는 듯한 남부에 와보니 자신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역시 노스캐롤라이나가 고향인 감독 필 모리슨은 자신의 고향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행간에 한 가족의 비밀과 근심을 오롯이 숨겨둔다. 한 예로 아버지 유진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목공 일을 하는데, 그는 스크루 드라이버가 어디 있는지 영화 내내 찾아 헤맨다. 결국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메들린이 침대 밑에서 드라이버를 발견한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드라이버를 찾아주며 “아버님 목각품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지만, 정작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위해 만든 새 목각을 뒷주머니에 감춘 채 그것을 아내 손에 슬며시 쥐어준다. 왜 유진은 메들린에게 끝내 목각을 주지 않았을까?

에이미 애덤스, 맹하고 여린 조연 연기 일품

시골 시댁 vs 도시 며느리 ‘좌충우돌’ 문화갈등 겪다
‘준벅’은 이 가족이 메들린이라는 우아하고 완벽한 여피 여인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리지 않는 복잡한 미로를 숨겨놓았다. 영화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은유들로 어디에도 그늘이 없을 것 같은 남부의 햇볕에 가족의 그림자를 새겨둔다.

사실 스크루 드라이버를 찾아내는 메들린을 바라보는 시아버지의 시선은 며느리의 늘씬한 다리에 꽂혀 있다. 그런가 하면 임신한 애슐리는 남편 몰래 자위를 하고, 시동생 조니는 메들린이 사랑한다고 안아주자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댄다. 한 남부가족의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가면 갈수록 이 가족을 서로에 대한 오해의 코너로 몰아붙인다.

그러나 이 가족은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 알고 있는 남부 공동체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이곳에서 사는 방식은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출산이 임박한 며느리를 잘 대해주는 것이다.

아니, 실제 그들은 가족이나 사랑에 대한 소박한 믿음 속에서 선거 때마다 공화당을 찍으며 신앙심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종종 격렬한 가족의 말다툼 끝에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텅 빈 집과 방, 노스캐롤라이나의 비어 있는 풍광이다. 감독은 이렇게 남부의 보수적 가정에 깃든 심리적 풍광을 절묘한 캐릭터와 대사에 얹어놓았다.

반면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워크의 작품은 그와 정반대로 생생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실제로는 또 다른 아웃사이더 화가 앤 우드의 손끝에서 되살아났지만). 귀가 잘리고 피가 분수처럼 솟고 음경이 산처럼 쌓여 있는 아웃사이더 아트에는 어쩌면 이 가족이 숨기고 있는 음화(淫畵) 같은 풍경이 살짝 묻어난다. 워크는 메들린에게 노예해방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면서 의미심장하게도 “내가 아는 흑인이 한 명도 없어서 이들의 얼굴을 모두 백인으로 그렸다”고 말한다.

이렇게 ‘준벅’은 당신의 지적 능력과 문화적 감수성 지수를 모두 측정할 수 있는 영화다. 16mm로 찍은 이 작품은 HD로 변환해 선댄스 영화제에 선보였을 만큼 ‘언더’한 냄새가 물씬 풍기고, 미국 인디 록의 명가 ‘욜 라 텡고’의 음악도 근사하다. 특히 이 영화의 발군은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약혼자로 나왔던 에이미 애덤스. 그는 다소 맹하고 여리지만 황금 같은 사랑의 마음을 숨긴 남부 여자 연기로, 선댄스와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완벽한 사랑도, 완벽한 미움도 없는 ‘가족의 초상’

준벅이란 이름의 아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필 모리슨은 도시 며느리와 시골 가족의 좌충우돌 문화갈등을 통해 ‘가족의 문제는 같이 살지 않는 한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내인 애슐리를 귀찮게만 여기는 것 같던 조니가 미어캣(몽구스류의 작은 육식동물)을 좋아하는 애슐리를 위해 비디오를 녹화하려 하지만 결국 안 되자 오히려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말이다.

시골 시댁 vs 도시 며느리 ‘좌충우돌’ 문화갈등 겪다
완벽한 사랑도 완벽한 미움도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초상. 그러고 보니 그중 가장 근사해 보였던 큰아들 조지 역시 언젠가 메들린도 자신의 단점을 알게 될 거라고 걱정하지 않는가. 조지의 이 대사가 마음에 꽂히는 지점이 있으면, 당신은 이미 ‘준벅’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맞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미국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준벅’이 위대한 영화라면, 그것은 진실된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진심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주간동아 2007.07.03 592호 (p7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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