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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향수는 여성 전유물 ‘옛말’ 무겁지 않은 은은한 향으로 ‘완소남’ 이미지 발산

  • 김정원 럭셔리 쇼핑 매거진 ‘에비뉴엘’ 피처 & 라이프스타일 디렉터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남성이 향기로 말하는 시대다. 2007 향수업계의 화두도 ‘남성’이다. ‘롤리타 렘피카 오 마스큘랭’의 남성 향수 홍보이미지.

‘킁킁 증후군’이란 것이 있다. 네이버 지식검색에 물어봐도 소용없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단어니까. 그렇지만 금세 알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인류학적으로 최근에 가장 왕성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신인종 싱글족에게서 흔히 ‘발병’되는 증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보통 여자라고 믿고 사는 30대 싱글족 여성의 경우는 중증에 속한다.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오후, 한 남자가 작업실로 들어선다.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뚫고 왔을 터인데 흐트러짐 하나 없이 말끔하다. 날렵해 보이는 무테 안경에 필시 타고난 곱슬이었을 머리카락은 헤어왁스를 덧입어 한결 산뜻해 보인다.

향에 남녀가 따로 있나 … 향수시장 성의 경계 와르르c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향수 ‘버버리 위켄드 맨’ ‘불가리 오 떼 블랑’ ‘롤리타 렘피카 오 마스큘랭’(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심플한 느낌의 짙은 그레이 코트, 소매 끝으로 보이는 톡톡하게 힘을 준 와이셔츠 단. 꽤 훌륭한 청년임이 틀림없지만 그때까지 이 ‘싱글녀’, 별 감흥이 없었다. 서울을 비롯해 도쿄, 뉴욕, 파리 할 것 없이 요즘 20, 30대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치고 자기 스타일에 무심한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자외선 차단용 SPF 15 데일리 수분크림은 기본이고 여드름 전용 젤과 울긋불긋한 피부색을 잡아줄 메이크업 베이스가 필수 아이템이 된 건 ‘크로스 섹슈얼 가이(Cross Sexual Guy)’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즉, 이처럼 자기 관리에 열심인 남자는 더는 감동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한데 복병이 숨어 있었다. 약속된 물건을 건네주며 싱글녀 쪽으로 몸을 기울인 남자, 그때 그녀의 코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킁킁. 오호! 결코 내놓고 코를 벌름거리진 않는다. 사회적 체면을 지키는 선에서 평상시보다 폐활량을 더 많이 늘리는 거다. 그러고는 말을 건넨다. 무심한 듯.



“버버리 위켄드 맨이네요.”

남자, 소년처럼 옅은 향수 혹은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그의 첫 내음은 박하다. 마치 릴레이 회의 중의 무거운 침묵을 재치 있는 농담 한마디로 역전시키는 비즈니스맨의 위트와도 같다. 그 다음은 친근한 라벤더. 외유내강할 줄 아는 남자의 살가운 부드러움이 이럴 듯싶다. 그러고는 풀숲에 핀 들장미의 와일드한 달콤함이다. 어딘지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그런 향기.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DKNY 비 딜리셔스 맨’

요즘 모성본능을 자극하면서도 기대고 싶은 소중한 남자를 뜻하는 신종어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에 영합하는 가벼운 취향이란 논쟁은 잠시 뒤로 미루자. 또 하나 덧붙인다면, 이 남자는 한계를 모르는 자유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어렸을 때 ‘애늙은이’란 별명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절제의 온건한 미덕과 사뭇 엘리트다운 긍정적 에너지, 사회적 관계들을 사려 깊게 조율할 줄 아는 매력을 갖췄을 듯하다. 근거? 클래식과 구닥다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린 남자가 버버리라는 브랜드에 손을 뻗을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더구나 향수 브랜드 홍보 담당자들이 이구동성하며 주장하는바, 향수란 남자에게 가장 보수적인 쇼핑 아이템이 아닌가.

그가 떠났다. 그러나 공기 중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다. 생전 처음 보는 누군가를 코로 느끼기 시작한다면 당신, 이들을 ‘변태’라고 몰아붙일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남자 동료, 찌릿 흘겨본다. “요즘 점점 더 원초적으로 돼가는 거 알아?”

그렇다고 이 싱글녀, 결코 기죽지 않는다. “젊은 남자가 요즘 트렌드에 도통 깜깜하구먼!” 외려 되받아친다.

결론을 말해, 지금은 남자가 향기로 말하는 시대다. 물론 현대문명이 시작된 이래 남성들의 체취도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지금 어필하는 향은 로렌스의 파격적 성담론서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장작 패는 근육질의 남성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상상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와일드함이 아니다.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X세대의 자극적인 향은 더욱 아니다.

한 국내 향수 브랜드의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요즘 젊은 남자들이 선호하는 향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모성을 자극하는 이른바 ‘완소남’의 따뜻한 이미지다. 최근 뜨거운 트렌드로 주목받는 연상연하 커플 붐이 향수의 선호도에도 반영됐다고 한다. 한 뷰티 에디터의 말은 이런 변화를 확실히 증명한다.

“여성 향수에 주로 사용되는 꽃 성분이 남성 향수에 가미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2005년에 첫 출시된 ‘디오르 옴므’는 여성 향수 성분의 대명사인 달콤한 아이리스꽃을 남성 향수에 최초로 사용해 유명해졌습니다.”

또 다른 뷰티 디렉터는 좀더 분석적인 시각에서 이런 변화를 짚는다.

“한마디로 성의 경계가 무의미해졌어요. 후각을 즐겁게 하는 특별한 것을 누리려는 욕망은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떠나 본능적인 것이죠. ‘프레시’의 향수에는 남녀 공용을 내건 제품이 많은데, 중요한 건 라이프스타일이에요.”

Perfume Do & Don’t
1. 향기에도 시너지 효과가 있다

“남자들의 애프터 셰이브는 대부분 여성용 화장품보다 향이 짙습니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이 취향이라 믿는 전혀 다른 느낌의 향수를 또 뿌리죠. 그건 마치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꿰맞춰 입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향수와 같은 라인의 보디 제품을 쓰셔야 합니다. 혹시 향수에 대한 정보가 밝지 않다면 향수 매장에서 추천하는 샤워젤과 애프터 셰이브, 스프레이 타입의 오 드 투알렛으로 구성된 패키지를 참조하면 도움이 됩니다.” (손지희, 홍보대행사 비주 커뮤니케이션 이사)

2. 드레스 투 킬?

“간혹 향수를 겉옷에 뿌리는 경우를 보는데, 좋은 사용법이 아닙니다. 향 입자 에센스가 자외선에 변색돼 옷에 얼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샤워 직후 맥박이 빠르게 뛰는 부위에 충분히 뿌려주는 것입니다.”(김주은, 뷰티 에디터)

3. 향기에도 TPO가 필요하다

“매력적인 남자의 비밀은 상황에 맞게 향수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향수를 들이붓는 순간부터 여자들이 멀어집니다. 특히 한 가지 향수를 사시사철 뿌리다 보면 그 향에 익숙해져 점점 더 과도하게 뿌리게 되는 경향이 생깁니다. 또 연령대를 초월한 선택은 금물입니다. 푸릇푸릇 젊은 남자가 소중한 유산처럼 ‘아저씨 향’을 풀풀 풍기는 것, 상당히 괴롭답니다. 여기에 트렌드를 살펴 자신만의 향기를 발견하는 센스가 발휘된다면 여자들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김정민, 스타일링 큐브 아카데미 이사)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여성 향수 성분인 아이리스꽃을 최초로 사용한 크리스찬 디오르 남성 향수 ‘디오르 옴므’.

첨단 디지털 세대 후각의 힘에 민감하게 반응

덕분에 최근 패션업계는 물론 향수업계의 화두는 단연 남자다. 불과 4~5년 전, 세계적인 프랑스 뷰티 브랜드가 ‘나는 소중하니까요!’를 전 국민에게 유행시키며 20대 여성들의 조명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 스스로의 소중함을 깨달은 건 남성들이었다. 당시 뷰티와 패션업계에선 여심을 잡으면 남성 고객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여길 만큼, 남자들의 스타일링엔 여성의 취향이 압도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던 것이 현재는 확실한 역전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한 남성은 자신의 향기에 대해 무척이나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

“일단 올드한 느낌의 향은 질색이에요. 브랜드 인지도가 아무리 높고 평판이 좋아도 일단 식상한 듯한 향은 관심 밖입니다.”

주관이 확실한 그의 향수 선택은? DKNY의 ‘비 딜리셔스 맨’이었다. 사과 모양의 상큼한 패키지로 큰 인기를 얻은 DKNY 여성 향수의 남성 버전이다. 달콤하면서도 어딘지 커피 내음이 감도는 따뜻한 액센트가 특징인 이 향수를 그가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흔하지 않거든요.”

그의 향수 취향이 그려진다. 잡지와 브랜드의 향수 샘플링을 통해 누구보다도 향에 대해 이모저모 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취향이 다른 여자 친구가 사주는 향수가 달갑지 않다고 살짝 고백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제 남성 향수는 여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한 것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해 자신을 표현하는 일종의 후각적 시그니처이자 자아의 표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첨단 디지털 시대에 젊디젊은 남자들이 후각의 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어느 싱글녀는 ‘생식생물학’ 이론을 접목했다. 남녀관계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실험, 분석하는 생식생물학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때 분명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함에도 공통적으로 후각의 이끌림에 강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결과를 놓고 어느 집요한 과학자가 DNA 분석을 해봤더니, 신기하게도 서로 유사하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체취에 무려 80% 이상이 호감도를 나타냈단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낯선 남성과의 첫 만남에서 여성들이 상대에게 공통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순위가 눈빛 다음으로 체취라는 것도 밝혀졌다. 페로몬을 처음 발견한 미국 여류 과학자의 실험에 따르면, 직장에서 여성 동료들에게 별 인기가 없었던 한 남자에게 페로몬 향수를 뿌리게 했더니 일주일 사이에 호감도가 무려 75% 상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향수란 후각의 리비도를 더욱 문명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에 든다고 무작정 코부터 들이대는 불상사를 연금술에서 시작된 과학의 힘으로 순화한 결과가 10온스의 작은 유리병에 든 향수인 것이다.

누군가는 과학이 향수의 신비로움을 해친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향기는 신비로움을 입고 있어야 제 맛이라 믿는 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늘 궁금했다. 과연 살짝 뿌리기만 했는데 흔들리는 이 마음, 저 작은 한 방울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리고 정말 남자들의 향기가 여자들을 매혹시킬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다. 신화보단 이성의 영역인 좌뇌를 믿고, 후각보단 시각의 힘을 믿는 디지털 시대의 영리한 신인류에게도 이것은 예외 없는 진리다.

남자와의 첫 만남 때 호감 순위 ‘눈빛 다음이 체취’

향수! 이 봄, 테스토스테론의 지배를 받는 남자들의 특권이자, 성의 구분을 훌훌 털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본능적 감각을 스타일링할 줄 아는 남자들의 취향에 대한 가장 쿨한 답변이다.

남성을 위한 추천 향수 6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시슬리 오 드 깡빠뉴

시슬리 가문의 역사 깊은 향수지만, 아직까지 대중적이지 않은 신비로운 향수.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순수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싱그러운 풀밭에서 막 걸어나온 듯 싱그러워 이번 S/S 시즌에 가장 적합한 향수’로 추천.

불가리 오 떼 블랑

여성 마니아가 많은 남성 향수로, 청량한 톱 노트와 은은한 베이스 노트가 압권. 트렌디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20대 중반에서 30대 남성들에게 좋은 아이템.

롤리타 렘피카 오 마스큘랭

유럽 감각의 깊고 풍부한 향에 자신 있는 이들에게 강력 추천.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롤리타 렘피카 여성 향수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머스크향이 인상적이다.

女心 흔드는 그 남자의 향기
조르지오 아르마니 블랙 코드

차가운 듯 부드러운 힘이 느껴지는 젊은 향수. 페미닌한 향이 취향에 맞지 않는 남성들에게 좋다. 남성들에게 친근한 담배 향과 가죽냄새에 깊은 나무 향취와 상큼한 레몬 향을 더했다.

랄프 로렌 폴로 더블 블랙

지난해 남성 향수 부문에서 최고의 판매액을 올린 베스트셀러 아이템 ‘폴로 블랙’의 2007년 버전. 스포티한 감각의 소유자를 위한 추천 아이템으로, 프레시 오리엔탈 계열의 향이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남성미를 돋보이게 한다.

까르띠에 데끌라라씨옹

정중동의 젠틀맨을 향기로 표현했다고 할 만큼 남성적인 우아함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향수. 유럽에서는 하이 주얼리 브랜드라는 명성뿐 아니라 최고급 맞춤 향수로도 유명한 까르띠에의 권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주간동아 575호 (p58~60)

김정원 럭셔리 쇼핑 매거진 ‘에비뉴엘’ 피처 & 라이프스타일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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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85호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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