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5

2007.03.06

세상에서 가장 싼 성형

  • 류진한 한컴 제작국장·광고칼럼니스트

    입력2007-02-28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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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싼 성형
    지난해 부천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20여 년 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가 처음 본 필자의 아내에게 “정말 아름다우시네요”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여성인 그의 인사가 담고 있는 ‘진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인사말은 아내가 성형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에서 자란 그에게도 최근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성형이 특별한 인상을 주었기에 나온 얘기였다고 필자는 미뤄 짐작한다.

    ‘스카치’ 광고를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 누님들이 두툼한 눈두덩에 쌍꺼풀을 만들기 위해 테이프를 붙이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관심조차 없었지만, 어찌 됐건 그 추억이 크리에이티브가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당시 받은 인상이 강하긴 했던 모양이다.

    ‘스카치’ 광고의 어딘지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먼저 가슴에 와닿았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것 같은 모델들, 심지어 손보지 않은 듯한(어쩌면 의도적으로 이렇게 헝클어지게 손을 본) 헤어스타일, 마치 집 근처 슈퍼마켓에 담배나 양말 정도를 사러 나온 듯한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우울한 블루 배경의 사진 한 장이 모델의 어색한 얼굴 외에 다른 곳으로 시선이 흩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왕이면 ‘스카치’의 뛰어난 성능을 활용해 예쁘고 멋진 성형 연출이 가능할 법도 한데, 도대체 크리에이터는 왜 이처럼 싼 티 나는 연출을 고집했을까? 혹시 이것이 ‘필요 없는 욕심과 꼭 필요한 욕심’의 차이, 연륜의 차이는 아닐까. 만일 두 모델이 아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성형을 눈치채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무의미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델들의 얼굴이 저런 모습으로 평생 고정되진 않을 것이란 점을 전제로 ‘스카치’ 제품의 성능이 ‘왠지 불안정한’ 광고를 통해 행복하게 전달된다. 책상 서랍 속에서 찾아낸 ‘스카치’테이프 하나와,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성형을 시도하는 나를 한번쯤 떠올림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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