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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과장? 전 앨리스입니다”

토종 한국인들 ‘영어 창씨개명’ 한창 글로벌 비즈니스 영어 이름 필수조건화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김 과장? 전 앨리스입니다”

“김 과장? 전 앨리스입니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안녕하세요. 데이비드입니다.”

“저기…. 마크 씨 자리 비우셨나요?”

회사원 최모(여·29) 씨는 협력업체에 전화를 걸 때마다 어색함을 느낀다. 협력업체 직원 ‘마크’ 씨는 외국인이나 해외교포가 아닌 토종 한국인 과장. 그러나 이 회사가 영어 이름 사용을 권장하는 동시에 직급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최씨는 그를 ‘김 과장님’이 아닌 ‘마크 씨’라고 불러야 한다. 최씨는 “한국 사람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직까지는 낯설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해외연수를 떠나면서도 영어 이름 사용을 거부했던 국문학도 강모(32) 씨는 최근 영어 이름을 하나 짓기로 결심했다. 얼마 전 사업차 접촉한 싱가포르인과의 전화 통화가 계기가 됐다. 상대방이 ‘앤드루 고’라고 자신을 소개해 단박에 알아들은 반면, 강씨는 자신의 한국 이름 석자를 네댓 번 반복해 말해야 했기 때문. 강씨는 “한국 이름을 고집하는 것은 요즘 같은 국제화 시대에는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영어 이름 장려하는 기업 잇따라



누구나 영어 이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시대다. 서강대 채서영 교수(영문학)가 2004년 발표한 논문(‘한국인의 영어 이름 사용실태와 작명방식 변화에 대한 영어의 영향’)에 따르면, 20대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 231명 중 59%에 해당하는 136명이 영어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이들 영어 이름은 영어회화 교실에서나 해외유학을 떠날 때 등 제한적으로 사용됐지만, 요즘 들어 그 사용 영역이 확산되는 추세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거나 해외 업무를 맡고 있는 직장인들이 외국인을 상대할 때뿐 아니라 한국인과의 업무 교류에서도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명함에 영어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은 기본. 레스토랑, 미용실, 의류매장 등에서 영어 이름 명찰을 단 점원을 만나는 것 또한 흔한 일이 됐다.

“김 과장? 전 앨리스입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전 직원은 매장과 본사에서 모두 영어 닉네임을 사용한다.

심지어 전략적 차원에서 영어 이름을 장려하는 기업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W서울 워커힐 호텔. 이 호텔에서는 전 직원이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 홍보팀 PR매니저 캐서린 씨는 회사 임원에서부터 갓 입사한 인턴사원에 이르기까지 ‘캐서린 님’이라고 불린다. 그의 본명은 강소영이고 직책은 과장. 그러나 사외(社外) 사람들도 그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강소영 과장’이 아닌 ‘캐서린 씨(혹은 님)’를 찾아야 한다.

영국의 핸드메이드 화장품 ‘러쉬’를 유통하는 ㈜열심히도 매장 점원뿐 아니라 본사 직원들까지 제품명에서 따온 닉네임을 사용한다. 제품명이 모두 영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이계정 씨는 ‘키팀’으로 불린다. 그의 닉네임 ‘키쓰’와 ‘팀장’을 결합한 애칭이다. 프랜차이즈 패밀리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도 본사와 매장 직원 전부가 영어 닉네임을 하나씩 갖고 있다. 마케팅부의 카라(본명 방지연) 매니저는 “영어 이름으로 부르다 보니 서로의 본명을 잊고 지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들 기업이 영어 이름을 권장하는 이유는 고객에게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라는 ‘실용적’ 목적에서다. ‘상대적으로’ 딱딱하고 특색이 적은 한국 이름보다 ‘도로시’ ‘앨리스’ ‘프레드’ 등 영어 이름이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에도 친근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 W호텔 캐서린 PR매니저는 “고객에게 일상생활에서 탈피한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호텔의 컨셉트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 전 직원이 일상적인 이름에서 벗어나 ‘스테이지 네임’이라고 불리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직책을 생략하고 서로를 부를 수 있는 영어 이름은 사내 문화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데도 기여한다. ㈜열심히의 이계정 팀장은 “직급을 생략하고 영어 이름으로만 부르는 생활이 좀더 친근하고 의견 교환이 자유로운 사내 문화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들, 발음 쉬운 이름 짓기 한창

영어 이름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는 작명소까지 변화시켰다. 전통적으로 사주팔자에 맞춰 한자 이름을 지어주던 인터넷 작명소 대다수가 현재는 영어 이름 작명까지 겸하고 있는 것. 이들 업체 게시판에는 이민, 유학, 연수 등 해외 출국을 앞둔 사람들뿐 아니라 ‘회사에서 사용하려고 한다’ ‘자녀에게 평생 사용할 영어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등의 요청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좋은이름연구소 성민경 소장은 “영어 이름도 사주팔자에 맞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사회에 살다 보니,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영어 이름을 원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예 자녀 이름을 영어 이름과 비슷하거나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한글로 짓는 경향도 뚜렷하다. 수지, 지우, 유니, 유준, 동후 등이 요즘 인기 있는 이름이다.

현대인의 자발적인 ‘창씨개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연세대 김하수 교수(국문과)는 “영어 이름 사용은 국제화된 환경에서 비즈니스와 문화가 결합되는 양상으로 보인다”면서 “비즈니스 네임 정도로 영어 이름을 활용하는 것을 두고 민족성이나 애국심 차원으로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예인, 예술가도 영어 이름 선호

Rain … Rui … Lena Park을 아십니까


“김 과장? 전 앨리스입니다”

리나 파크’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가수 박정현.

‘Rain’이라는 이름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가수 비(본명 정지훈) 이후 영어 이름으로 대외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 늘고 있다. 가수 이승철과 박정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 이름을 버리고 각각 ‘루이(Rui)’와 ‘리나 파크(Lena Park)’라는 예명으로 일본에서 활동 중이다.

예술가들 중에서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 영어 이름을 선택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유치원부터 대학원 교육까지 받은 행위예술가 낸시 랭은 만 18세 때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박혜령’이라는 한국 본명을 버리고 ‘낸시 랭’이라는 영어 이름을 새로 지었다(즉, 낸시 랭은 가명이 아닌 그의 본명이다). 그는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성(姓)까지 미국, 중국, 프랑스,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쓰이는 ‘랭(Lang)’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젊은 사진작가 에어리어 파크(Area Park) 또한 해외로 이민이나 유학을 떠나본 적 없는 순수 한국인. 그의 본명은 ‘박진영’이다. 동명이인인 유명가수와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이미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 ‘구별짓기’를 위해 5년 전부터 ‘에어리어 파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국제적인 활동까지 고려해 일부러 영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주간동아 575호 (p50~51)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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