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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6자회담 타결, 그 후 마음 통한 ‘밀월 북-미’ 연락사무소 초읽기

양자 이해계산 놀랍도록 근접 … ‘보이지 않는 손’ 주목해야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집중기획6자회담 타결, 그 후 마음 통한 ‘밀월 북-미’ 연락사무소 초읽기

설 연휴를 코앞에 둔 2월 중순, 10년쯤 전부터 알고 지내던 재미동포 출신 대북사업가 K씨가 느닷없이 ‘주간동아’에 전화를 걸어왔다. 평양을 거쳐 서울에 막 도착했다는 그는 다짜고짜 “남쪽 정부는 올해 안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는 듯하지만, 북쪽에선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6자회담이 끝난 직후 평양 당국의 핵심요인 몇 명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K씨는 왜 갑자기 이 얘기를 기자에게 전했을까. 여기에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든 기자는 20년 가까이 대북사업에 전념해온 또 다른 K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다. 최근 남북 당국 간 모종의 ‘사업’에 ‘올인’하고 있는 제2의 K씨의 해석은 이랬다.

“K씨에게 그 얘기를 한 북한 당국자들은 통일전선부(통전)에 속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통전은 2006년 8월 임동옥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한 이후 대남 협상에서,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힘을 거의 잃은 상태다. 지난해 9월 이후 은밀하게 계속돼온 남북 간 접촉에서도 통전은 소외돼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일에 대해 ‘재’를 뿌리는 행위라는 것. 그는 “이런 현상은 그동안 남북 당국에 공히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2월13일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폐막한 6자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은 ‘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냈다. 2차 핵위기 이후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던 양자는 어떻게 해서 갑자기 견해차를 좁힐 수 있었을까? 그동안 북-미, 남-북 사이에 어떤 줄다리기가 있었기에 ‘어느 날 갑자기’ 핵문제가 곧 해결될 것 같은 ‘낙관론’이 떠오르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배경’을 살펴보지 않는 한 풀리기 어렵다. 이에 ‘주간동아’는 앞의 ‘또 다른 K씨’에게 최근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해설을 요청했다. 6자회담의 배경과 전망을 다룬 앞의 글과 최근 남북관계의 이면을 파헤친 두 번째 글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다. 아직 전모를 밝히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에 모호한 대목이 있음을 독자들께서는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



2·13 합의로 ‘폼나는 모양새’ 만들어졌다

2007년 2월8~13일 베이징에서 열린 5차 3단계 6자회담 결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라는 이른바 2·13 합의가 만들어졌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참가국들은 그에 따른 수지타산을 따지기에 바쁘다.

우선 미국이 무엇을 얻기 위해 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이번에 6자가 합의한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걸 놓치면 이 다자간 합의의 알맹이를 놓칠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이 열리기 전인 1월16~19일에 있었던 북-미간 베를린회담은 우연히 마련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평양 쪽 얘기는 조금 다르다. 한마디로 가기로 돼 있던 방향대로 갔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9~30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렸던 김계관-크리스토퍼 힐 간의 회의는 비록 중국이 매개가 되어 자리를 비켜주는 형식이었지만, 당시 이미 미-북은 어느 정도 합의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제네바합의의 서명자였던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부장은 12월 초 6자회담 예비미팅이 벌어지기 직전 슬그머니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으로 건너와 꽤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주중 북한대사관을 벗어나지 않았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그때부터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 북-미간 베를린 회동의 성과는 그때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그 후의 과정은 순전히 미국의 모양새 갖추기라는 문제만 남아 있었던 셈이다.

세 가지 루트 사용된 양자 대화

북한의 미사일 발사든 핵실험이든, 미국이 방기(放棄)한 결과물이라는 데 이의를 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평양이 백기 항복하기를 원했지만, 그건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역학관계로 볼 때 나오기 어려운 해법이었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보수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대화파 간 세력다툼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러한 ‘복잡계’는 사안별로 하나씩 뜯어봤자 별로 분석할 가치가 없다. 모자이크 조각 하나하나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전체 조각이 다 모여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이 ‘그림책’은 매우 입체적이어서 전모를 풀이하기가 난해하다.

결론만 본다면, 미국 내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 대화를 할 필요성’이 지난해 말 이후 다시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첫 번째 변수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정책에서 평양을 ‘발판(정거장)’으로 평가해오던 정치세력이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이라크와 중동의 혼미한 상황이 이를 가속화한 측면도 있다.

미국은 양자 간 대화를 어떤 모양새로 할 것인가. 세 가지 루트가 사용됐다. 방코델타아시아(BDA)라는 금융제재 문제로 상징되는 협의, 중개자가 개입되지 않은 미-북 양자 간 직접 회담, 마지막으로 평양 당국과 물밑에서 조용히 조율하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다. 이들 루트는 각각 독립돼 있지만 사실은 하나를 지향한다. 바로 양자 간 대화틀의 회복이었다.

금융제재 해제 문제는 회담의 전제조건이라는 등 논란이 많았지만, 6자회담 합의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했던 지난해 11월 BDA 자금은 이미 ‘사용 불가’가 아니었다. 사용해도 좋다는 언질이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나왔다. BDA 문제의 초점은 단순히 묶인 자금의 용불용(用不用)이 아니었다.

평양이 겨우 2400만 달러 때문에 미국과의 대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선(先)해결을 주장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평양의 해외자금은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BDA는 ‘불법(illegal)’이라는 한 단어에 종속됐다.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한다고 평양이 좋아라 하면서 꺼내갈 성격의 문제는 아니었단 얘기다. 결국 워싱턴과 평양은 6자회담의 주제가 아닌 문제는 양자가 처리해야 한다는 전례를 남겼다.

1월의 베를린 협의는 양측의 화기애애한 셔틀회담이었다. 워싱턴과 평양의 관심사항이 스스럼없이 토의된 자리였다. 엉뚱하게 방해받거나 미주알고주알 끼어드는 중매쟁이도 없었다. 부시 대통령이 2·13 합의 후에 보인 태도를 보라. 자신의 임기 중에 평양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평양은 또 어떤가. 무조건 환영한다는 태도가 아닌가.

워싱턴·평양 다 만족 템포 조절?

부시 행정부 2기가 시작되기 전, 평양에서는 콘돌리자 라이스의 논문 읽기와 토론 분석이 당정(黨政) 주요 결정권자의 중요한 일로 재개됐다. 평양은 라이스가 평양을 읽는 눈이 곧 부시의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여겼고, 그럴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평양의 ‘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그 후 평양 당국은 라이스가 방북하지 않는 한 미-북간 대화는 첩첩산중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미-북간 연락사무소 개소식에 라이스 장관이 온다면 모양새가 좋을 것이라는 논의는 정확히 말해 2005년 이미 나왔던 얘기다.

미국이 평양 당국에 씌운 ‘고깔’ 가운데 테러지원국이나 적성국가법은 6자회담에서 제쳐질 문제가 아니다. 결국 2·13 합의에선 미-북 관계에 대해 병렬적인 조치를 언급하면서 이와 함께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설치까지 언급했다.

현재 드러난 것도 그렇지만, 특히 ‘보이지 않는 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예외 없이 평양과의 대화채널을 개방형으로 두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6자회담이 개최되는 시기에 국무부의 협상 에이전트급에 상당하는 인사가 평양을 방문, 미-북간의 향후 행보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이 같은 대화 통로는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이 있었음에도 늘 존재해온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기존의 대화 범주를 넘어서는 토의 내용들이 몇 가지 있었다.

단기적인 과제가 미-북간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다. 미국은 2005년 6월 이미 사무소 개설 준비팀을 평양에 파견했다. 이 사실은 극비리에 진행돼 당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법률적인 부분에서부터 현장 환경에 대한 실사 등을 추진했던 준비팀은 2005년 7월 당시 방북했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남측 방문단의 후속 조치도 점검하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억지로 쥐어짜내듯 만들어낸 9·19 성명이 미국 내 네오콘과 부시 대통령의 관점에서 수용불가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이 일은 진전되지 않고 잠시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미-북간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가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쉽게 표현하면, 당장 먹지 않으니 냉동고에 넣어둔 고깃덩어리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지금 이 문제가 다시 오븐에 올려져 해동(解凍) 중이다.

2·13 합의의 내용은 실무그룹 수준인데, 워싱턴은 벌써 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전 준비를 하는 셈이지만 이건 예비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전과 다른 것은, 마음먹은 것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평양도 적극적이다. 2월7일, 그러니까 6자회담이 열리기 바로 전날 평양발(發) 메시지 하나가 베이징 외교가에 회자됐다. 이런 내용이다.

“평양은 워싱턴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떠한 양보도 할 각오가 돼 있다. 워싱턴도 평양에 대해 최대한의 양보를 약속했다. 미-북 관계는 향후 전혀 다른 단계로 발전해갈 것이다.”

워싱턴 당국도 연락사무소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핵시설, 핵무기, 핵물질의 처리 방향이 제대로 잡힐 수 없다고 여긴다. 연락사무소는 대표부로, 대사관으로 상황에 따라 그 급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 평양은 연락사무소도 설치하지 않은 미국이 흔쾌히 ‘고깔’을 벗겨주리라고 믿지 않는다.

양자가 이것을 올해 중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다. 현재 양자 간의 이해는 놀랍도록 근접해 있다. 주변 국가와의 템포 조절을 어떻게 해나갈지 하는 문제가 다루어졌을 공산도 있다.

물론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취해온 다면적인 행동이 향후 어떻게 표출될 것인지 추이도 세심히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6자회담은 미-북 양자회담을 그 아래에 둔 것 같은 모양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6자회담은 본질적으로 미-북간 틀을 중심으로 각 참가국이 재주껏 가야 하는 양자협상 테이블 식으로 접어들었다.

현재 워싱턴과 평양은 만족해하는 상태다. 이 게임의 관전 포인트는 부시 행정부 말기에 다시금 힘을 받은 외교파가 앞으로 평양 분위기와 얼마나 잘 어울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긴 여정이 예상되지만, 미-북간에 괜찮은 조황(釣況)이 기대되는 포인터는 합의된 듯하다.

몸단 南,느긋한 北 ‘남북 축제‘ 8가지 장애물

6자회담 이후 서울은 분위기가 상당히 ‘업(up)’된 상태다.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낙관적인 발언들이 봄꽃 피듯 고개를 쳐든다. 최근 6자회담으로 조성된 기류에 편승하면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까지 단기간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엿보인다.

“(북에)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해줘도 (결론적으로) 손해가 아니다. 이건 마셜플랜 같은 효과가 반드시 나온다. 북측에서 먼저 장관급회담 하자는 걸 6자회담 끝난 뒤 하자고 (남측이) 미뤘다. 예비회담 40분 만에 얘기가 끝났다. (북측이) 바로 장관급회담 하자는 걸 보면 이제 정상회담 할 분위기는 잡힐 것 같다. 이산가족 문제도 바로 해결될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의 핫이슈는 민족문제, 남북한 문제가 된다.” 이런 말들이 나온다.

서울 분위기 up 낙관론 우후죽순

마치 참여정부 들어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남북 간 ‘축제’를 열 기회가 왔다고 단언하는 듯하다. ‘6자회담 선행론’으로 상황을 관리만 해왔을 뿐, 독자적인 타개책을 만들어본 적 없으니 더욱 그렇다. 그동안 남측 당국이 추진했던 일들은 거의 좌절을 겪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의 색깔에 맞는 정책이 없었다’고 자책하는 관료도 있었다. ‘포용정책’이라는 단어가 문제가 아니다. 특별히 해놓은 일 없이 엄청난 돈만 썼다.

이번엔 정말 잘될 수 있을까? 근거 없는 낙관은 객관적인 정황에서 볼 때 무모하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여겨져 현재 물밑에서 움직이는 현상을 정리해본다.

첫째, 2·13 합의는 서울이 다자회담의 주체가 아니라 ‘준회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계기다. 남한 정부의 주도론은 아전인수격 주장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여섯이 얽혀 있던 것과는 판이 달라졌다. 미국과 일본이 관계하여 이번 6자회담에선 사안별로 각각 실무그룹을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는 양자회담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러시아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의 의장국이 됐다.

서울은 경제 및 에너지 협력을 이끄는 위치다. 6자회담의 틀을 뛰어넘으려면 남북한 간에 별도의 양자대화가 차별화된 성과를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틀은 각자 따로 놀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 정부가 져야 할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남한은 돈이 들어가는 그룹의 의장국이다. 걱정이 안 될 리 없다. 원래 6자회담 자체가 서울 단독의 내용물이 아니었다. 이는 1994년 제네바의 미-북 양자 담판에서 90년대 말까지 이끌어온 4자회담, 그리고 6자회담까지 오게 된 사연을 보면 명확하다.

둘째, 남북 양자 간 협의 문제다. 참여정부 4년간 미국의 대북 강경책은 서울을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는 ‘통 크게 해줄 만한 게 없어서 그랬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데 6자회담이 초기 이행조치 합의를 했다고 해서 ‘통 큰’ 한판을 하겠다면, 선행돼야 할 게 있다. ‘퍼주기’ 논란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정권 초기에 대북송금 특검을 했다. 이제 와서 국민 세금을 대규모로 집행한다고 해서 향후 특검의 대상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주고받을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지 않고 ‘준다’는 쪽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셋째, 남북 양자 간 회담의 목표다. 대체로 일차적인 방향은 이산가족과 쌀 비료 지원, 인도적 지원재개라고 여겨진다. 이는 지난해 말부터 통일부가 아닌 다른 쪽에서 기획돼 현재 상당한 협의가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경의선 철도 시범개통과 경공업품 지원도 ‘거래 품목’으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 정작 2·13 합의를 통해 참가국들 간에 거의 무제한적인 대화가 이루어질 공산인 데 비해, 서울의 정치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산가족도 몇백 명 수준의 겉치레로 끝내기에는 오히려 반발요소가 더 클 수 있다.

정치 성과 위한 거래 회담은 금물

넷째, 남북 정상회담 관련 사항이다. 서울에는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들먹이기도 한다. 북측이 남측 대선 정국에 개입하려면 가장 적절한 방안이 정상회담 카드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그런데 실상은 좀 다르다.

최근 평양을 방문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온 제3국의 한 전문가는 “정상회담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엇비슷한 말이 여러 곳에서 흘러나온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북측 최고위층에서 정상회담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어느 쪽이든 과거처럼 주고받는 구도로 간다면, 다시 한 번 ‘화장질’로 끝나기 십상이다. 남북이 서로의 장래를 위해 협력해나갈 내용을 협의하기에는 아직 서울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다섯째, ‘평화협정’ 문제다. 최근 정부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슈다. 지난해 하노이 APEC 회의 때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토론 끝에 서울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도 좋다는 답을 얻어왔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평양은 아무리 타진해봐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미국에서 ‘고깔(테러지원국, 적성국가법)’을 벗겨주지 않으면 평화협정은 쇼일 뿐이라고 인식한다. 문제는 평양이 그 ‘쇼 타임’을 정상회담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부시행정부 임기도 이제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 낼 수 있는 성과를 계산해보면 한반도 문제가 딱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최근 들어서야 문제 해결을 위한 긴 여정의 첫발을 내디뎠지만, 과연 워싱턴이 그 성과를 서울에 양보하려고 할까? 더구나 임기가 10개월도 남지 않은 참여정부에 말이다.

여섯째, 북측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남측 정권과 할 일은 정치적 효과와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평양은 요즘 내부적으로 향후 2~3년간 강력한 경제부흥책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선군정치도 구호는 남겠지만 실리주의에 앞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다. 이 분위기는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표면화돼왔다. 정치 이슈를 앞세워 남북 경협을 풀어가겠다는 의도를 가진 서울에 이건 치명적인 문제다. 북측은 6자회담에서 합의된 협상 품목에 대해선 ‘받을 것을 받았다’는 식으로 여긴다.

일곱째, 6자회담의 결과 지게 될 부담도 엄청나게 크다. 200만kW를 ‘통 크게’ 제안할 때는 쉬웠는데, 이제 그것이 멍에가 됐다. 이를 통해 서울이 주도적인 역할로 외연을 넓혀나가겠다는 주장을 펼친다면 그건 모순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과연 그랬나? 경제 및 에너지협력 실무그룹 의장국 자리가 돈만 내면서 거기에 상응하는 발언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제네바합의문을 기억하는가. 거기에 한국과 관련된 내용은 딱 두 줄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엄청난 비용을 썼고, 욕을 먹었다.

여덟째, 앞으로는 다자협상이 아니라 양자회담이 대세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이제부턴 자국의 대북 접근에 비밀이 많아질 것이다. (정보교환) 협조를 잘하니 걱정 없다는 우리 정부의 말은 믿기 어렵다. 지금까지 남북 간 대화틀로 볼 때 평양으로부터 정보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이 평양으로 달려갈 때 우리는 휴전선 근처에 머물러야 한다면, 이건 곤란하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참여정부의 잔여 임기 10개월의 남북관계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남은 기간이나마 제대로 된 궤도를 잡으려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과거 숱한 문제를 양산했던 ‘통-통(남측 통일부-북측 통전부)체제’하에서 양측이 ‘화장질’을 기본으로 서로 주고받는 식의 정치적 성과를 위한 거래만을 한다면 그건 의미 없는 일의 반복일 뿐이다.

무조건 퍼주기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셜플랜이 되지는 않는다. 받는 측이 고마워해야 하고, 주는 측이 상응하는 대가를 예측하며 순환되는 구도가 돼야 한다. 문제는 그것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평양도 납득시켜가는 기획 의지가 현시점의 참여정부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주간동아 575호 (p34~38)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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