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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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창의성’ 공교육 논술의 반란

경희고·창덕여고·대성고, 남다른 지도 노하우 전국에 명성

  • 김순희 자유기고가, 대전=지명훈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입력2007-02-28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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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창의성’ 공교육 논술의 반란

    유명 학원보다 탄탄한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선 고교가 늘고 있다.

    통합교과 논술의 도입으로 사교육 열풍이 더욱 거세졌지만, 공교육에도 희망은 있다. 유명 논술학원보다 탄탄한 교과과정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늘고 있기 때문. 논술교육 잘하기로 소문난 세 고등학교의 남다른 논술지도 노하우를 소개한다.

    수업시간에 ‘통합논술‘ 가르치는 서울 경희고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경희고 교사들은 모두 ‘논술교사’다. 각 교과목의 성격이나 교사의 능력에 따라 논술교육의 방법과 수준은 다르지만, 전 교사가 수업시간을 통해 학생들의 논술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부터 경희고에는 ‘생각나무’가 자라고 있다. 생각나무는 7명의 교사(국어 4명, 사회·역사·과학 각 1명)로 이뤄진 논술연구모임이다. 이 모임은 지난해 서울시 교육청 ‘교실수업 개선팀’에 선정됐다.

    생각나무는 지난해 11월 ‘정규교과에서 통합논술 가르치기’라는 논술교육 자료집도 발간했다. 1년 동안 37차례에 걸친 자체 세미나를 통해 제작된 이 자료집은 전국 각 고등학교에서 주문이 쇄도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생각나무 최인영 팀장(37·국어)은 “‘생각나무’는 학생들이 목적지에 제대로 이르도록 돕는 ‘나침반’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쉽고 간단한 것부터!’ 경희고 교사들이 논술을 가르칠 때 갖는 마음자세다. 이 원칙의 좋은 예로 ‘질문숙제’가 있다. 예컨대 교사가 학생들에게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썼던 질문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그런 질문을 실제로 써보도록 하는 것이다.

    경희고는 논술을 크게 ‘교과논술’과 ‘입시논술’로 구분한다. ‘교과논술’ 수업이 정규교과 과정에서 학생들의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입시논술’ 수업은 대학 입시를 앞둔 3학년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입시논술은 강의(논제 분석, 제시문 분석, 논점 잡기, 논점 확대 및 개요 짜기, 글쓰기)와 실전(기출문제 조별토론, 논술문 작성, 첨삭, 학생과 교사 평가)으로 나뉜다. 작성된 논술문은 학생들끼리 서로 돌려보며 첨삭한다. 입시논술 수업은 방과 후 열리는데 주 1회 90분간 진행되고, 한 반의 전체 인원은 10명 내외로 제한한다. 학생들은 시간당 3000원이란 저렴한 비용을 내고 알찬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수업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올해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한 졸업생 김종대(19) 군은 논술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대입 논술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렸다. 김군은 “수업시간에 이뤄지는 독서와 토론활동을 통해 기초를 다진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열정+창의성’ 공교육 논술의 반란

    경희고 김현철 교사가 학생들에게 논술 강의를 하고 있다.

    교사가 논술강의 평가받는 서울 창덕여고

    서울 송파구 방이동 창덕여고 학생들은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논술학원은 조만간 문 닫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곧잘 주고받는다.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논술학원보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논술수업에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 이 학교 1학년 450명 중 110명이 학원 대신 교내 ‘논술특강’을 선택했다. 월 20만~30만원(회당 3시간·4회 기준)에 이르는 인근 논술학원 수강료에 비하면 월 7만원(회당 90분·10회 기준)인 창덕여고의 논술 특강비는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학부모 유수경(43) 씨는 “논술을 위해 남다른 노력과 열정을 보여준 교사들을 신뢰한다”고 밝혔다.

    창덕여고의 논술특강이 처음부터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5월 학생들에게서 신청을 받아 처음 개설한 방과 후 논술반의 수강생은 30명에 불과했다. 2명의 논술 담당 교사는 학생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주 1회 90분간 진행되는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

    논술반 수업의 주제는 글쓰기 방법(요약과 개요 잡기), 동서양 사고방식 체계와 인간의 본성, 선과 악, 우주와 신, 인간과 자연 등 다양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호응도가 예상외로 높게 나타나자 학교는 4명의 교사를 추가 투입했고 이들은 머리를 맞댄 채 ‘밤잠’을 반납하며 교재 개발과 연구에 몰두했다. 지난해 2학기에 운영한 논술반 수강생은 1, 2학년을 합쳐 66명으로 늘었다. 겨울방학 특강 때는 수강생이 158명에 달했다. 현재 논술교사는 모두 10명이 됐다.

    논술반 태동의 주역인 박용주 교사(윤리)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고 강의 주제에 알맞은 유머를 ‘미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후 “통합논술의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 일반사회, 윤리, 국사, 지리, 국어, 물리, 생물 교사도 논술팀에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심층적인 논술교육을 실천하는 것이 창덕여고 논술반의 목표다.

    박 교사는 “먼저 논술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의 수요를 조사한 다음 강사를 구성하고 강좌를 개설한다”면서 “대신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강사와 수업 내용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학기와 여름방학 논술특강의 전체적인 강의 만족도는 83.4%였다.

    이 학교 2학년 정지혜(17) 양은 “몇 가지 주제에 치우치지 않고 범교과적인 내용의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좋다”며 “논술반에서 다독(多讀)과 다서(多書)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열정+창의성’ 공교육 논술의 반란

    남다른 논술교육 덕분에 대성고는 대전에서 가장 많은 학생을 서울대에 보낼 수 있었다.

    맞춤형 지도로 학원과 차별화한 대전 대성고

    수능시험이 막 끝난 지난해 12월 초 명문대 진학을 희망하는 지방 학생들의 ‘상경 러시’가 시작됐다. 서울의 유명 학원에서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시기 대전 대성고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서울과 대전의 명문학원에서 서울대를 목표로 재수, 삼수하던 졸업생 4명이 이즈음 대성고를 찾아왔다. 학교 측은 과목별 교사 7명을 투입해 이들과 재학생을 포함해 모두 7명을 대상으로 논술수업을 진행했다. 이 중 6명이 서울대, 1명이 고려대에 합격했다.

    이처럼 대성고가 대학입시에서 높은 성과를 거둔 까닭은 맞춤형 논술교육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 대성고는 3학년 1학기에 논술반을 운영한다. 하지만 2학기에는 수능에만 집중하고 수능이 끝나면 다시 논술을 시작한다. 이때는 1학기의 일반 논술과는 달리 학생을 모집단위 및 대학별로 나눠 맞춤형 지도를 편다.

    교사가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맨투맨으로 첨삭지도와 토론수업을 진행한다. 재학 시절 파악한 학생의 강점과 약점을 바탕으로 개인별 특성에 맞춰 지도하기도 한다.

    올해 서울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한 졸업생 안용주(19) 군은 “학원에서는 논술답안을 보고 유형별 모범답안을 제공해주지만, 학교에서는 개인의 논지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켜주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풀어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성고의 논술교육 노하우 중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신문 칼럼을 활용하는 것. 학생들은 일단 논리적 구조가 탄탄한 칼럼을 선택해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써본다.

    교사들은 첨삭지도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자연계열 논술의 경우 ‘지식 빅뱅’ 방법을 동원한다. 한 주제를 주고 동시에 답안을 작성해보게 한 뒤 차례로 발표를 시킨다.

    대성고는 정부의 논술방침이 오락가락하던 1997년부터 논술수업을 준비했다. 8년째 논술을 가르쳐온 차병식 교사는 “논술 설명회나 세미나가 있으면 전국 어디든지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학교 수업방식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차 교사를 비롯한 여러 교사들의 열정이 모여 대성고의 논술수업이 꽃을 피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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