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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응징이냐 고유가 희생양이냐

공정위, SK㈜ GS칼텍스 질긴 악연 할 말 많은 정유업계 “법정으로”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담합 응징이냐 고유가 희생양이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석유화학업체에 부과한 합성수지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한 총 1051억원의 과징금은 억울한 부분이 많지만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유업계가 기름값 담합을 했다면서 부과한 총 526억원의 과징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공정위가 2월20일 석유화학업체의 가격 담합 혐의를 발표한 데 이어 이틀 뒤 정유업계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를 공개하자, 국내 최대 정유회사인 SK㈜와 2위 업체인 GS칼텍스 관계자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업체 모두 공정위의 기름값 담합 발표에 대해선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SK㈜와 GS칼텍스가 이처럼 반발하는 이유는 두 업체가 석유화학사업 부문까지 거느리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다. 이에 따라 두 업체는 이틀 사이에 공정위로부터 연거푸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두 업체는 2000년 공정위가 군납유 가격 담합 혐의를 적발했을 때도 제재 대상이 됐다. 두 업체로선 공정위와 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 526억원 과징금 부과

물론 공정위는 정유업계의 이런 반발에 대해 애써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작 자신들이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을 많이 위반해놓고, 법에 따라 이를 제재하는 공정위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난센스”라는 얘기다. 공정위는 오히려 공정위가 밝혀낸 가격 담합 사실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공정위의 이런 입장은 2월22일 공개한 보도자료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공정위는 이 자료에서 두 회사를 비롯한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의 석유류 가격 담합 기간을 2004년 4월1일부터 그해 6월10일까지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 외에도 가격 담합이 의심되는 기간이 있었지만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이번 제재조치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또 앞으로도 가격 담합 행위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해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는 가격 담합 행위가 과징금만으로는 근절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신체 구금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제재는 미미한 수준이다”라는 것.

그럼에도 정유업계는 “이번 공정위의 조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이미 정해진 각본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다”면서 “고유가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정유업계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음모론’의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공정위 관계자들은 정유업계와 공정위의 악연이 계속되는 이유가 석유류 제품의 특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석유류 제품은 밀가루나 시멘트처럼 제품이 동질적이기 때문에 담합이 쉽고, 이 때문에 공정위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것.

SK㈜와 GS칼텍스의 반발은 이미 석유화학업체 가격 담합 조사 과정에서 엿보이기 시작했다. 공정위의 발표에 따르면 호남석유화학, SK㈜ 등 10개 합성수지 제조업체가 1994년부터 11년 동안 기준가격을 매월 합의하고 전월에 합의한 판매 기준가격에 대한 실행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매월 회의를 개최하는 등 가격 담합을 해왔다는 것.

이에 따라 공정위는 10개 합성수지 제조판매사의 가격 담합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담합 행위에 직접 가담한 SK㈜, ㈜LG화학, 대한유화공업㈜, 대림㈜, ㈜효성 등 5개 업체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과징금 규모로는 군납 유류 입찰 담합(1211억원), 시내전화사업자 공동행위(1152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금액이다.

석유화학업계는 겉으로는 가격 담합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내심 할 말이 많은 눈치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담합 행위는 90년대 초반 서산단지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을 막기 위한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의 ‘행정 지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도 같은 정부 부처인 공정위가 자기들의 잣대로 담합 판정을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정위도 심결 과정에서 산자부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 ‘행정 지도’ 사실을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정위는 그동안 관련 부처 측이 법에 규정되지 않은 ‘행정 지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해왔다. 이런 마당에 석유화학업계의 가격 담합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던 것. 다만 정상을 참작, 과징금을 일부 경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산업원자재 시장에서 11년간 지속된 담합 관행을 적발하고 시정조치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의 잣대로만 본다면 언젠가는 한 번쯤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음에도 과거의 관행만 고집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않은 석유화학업계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렇다고는 해도 업계 1위 업체인 호남석유화학의 과징금 전액 면제 조치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린다. 업계 관계자는 “호남석유화학이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지만, 시장 1위 업체인 만큼 담합에 의한 부당이득도 가장 큰 호남석유화학이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호남석유화학 면제는 왜?

이때만 해도 SK㈜와 GS칼텍스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잘못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2월22일 공정위가 석유류 제품 가격 담합 사실을 발표하면서 두 업체의 불만이 폭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SK㈜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개 정유사는 2004년 4월 무렵 서로 연락해 가격 결정에 관한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한 뒤 대리점이나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류 제품의 판매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각 정유사의 지역 본부나 지사별로도 가격이 다르고, 그나마도 하루에 몇 번씩 가격이 변하는데 어떻게 담합을 하겠느냐”면서 “때로는 같은 시간대에 지역간 가격 차이가 최고 200원에 이를 때도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했음에도 공정위가 가격 담합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공정위와 정유업계의 공방은 결국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에 불복하면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의신청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행정소송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주간동아 575호 (p20~21)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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