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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김유찬 ‘12년 애증’

편지 한 통으로 맺은 로맨틱 인연, 1년 만에 파경 후 드라마틱 악연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이명박-김유찬 ‘12년 애증’

이명박-김유찬 ‘12년 애증’

김유찬(왼쪽) 씨가 2월22일 염창동 한나라당 당무조정국에 이명박 전 시장 검증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1995년 봄, 국회 의원회관 이명박 의원(전 서울시장)실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보낸 사람은 외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김유찬 씨. 하루 수십 통이 넘게 오는 우편물을 일일이 확인하는 의원들은 없다. 그럼에도 김씨의 편지는 이 전 시장에게 전달됐다. 당시 이 전 시장의 측근으로 활동하던 한 인사의 설명이다.

“김씨의 글은 보기 드문 명문이었다. 글에서 열정이 느껴졌고, 이 글을 이 전 시장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 비서진의 판단이었다.”

김씨가 편지에 어떤 내용을 썼기에 비서진이 그렇게 감동했을까. 2월22일 전화 인터뷰에서 김씨가 밝힌 내용이다.

“걸어온 길에 대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솔직하게 썼다. 정치를 하고 싶고 ‘신화의 인물’인 이 의원 밑에서 정치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편지를 통해 ‘필’을 받은 이 전 시장은 곧바로 그를 6급 비서로 채용했다. 이 전 시장과 김씨의 로맨틱(?)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뢰는 채 1년이 가지 않아 금이 갔고, 1996년 김씨는 이 전 시장의 선거자금을 공개, 주군을 파멸로 몰았다.



이 전 시장 측은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다”며 치를 떨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악몽은 여전히 이 전 시장 주변을 맴돈다. 대선 레이스에 나선 이 전 시장에게 김씨가 검증의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 이 전 시장과 김씨의 애증(愛憎)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끝날까.

이명박-김유찬 ‘12년 애증’

김씨가 집필한 ‘이명박 리포트’.

국회에 들어온 김씨는 총선 전략서를 작성, 이 전 시장에게 전달했다. 당시 한 측근의 설명이다.

“들어오자마자 100쪽 분량의 ‘종로지역구 필승전략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정치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기획력이 돋보이는 보고서였다. ”

비서 시절 술값 대납·직급 상향 등 무리한 요구

이 전 시장은 ‘쿨’한 보고서를 쓰는 김씨를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한솥밥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두 인사 모두 강한 개성이 문제였다. 김씨는 1996년 총선 직후 ‘1천만원이 넘는 술값을 갚아달라’거나 ‘6급 비서인 자신의 직급을 5급으로 올려달라’는 등 이 전 시장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들을 거침없이 했다.

이명박-김유찬 ‘12년 애증’
김씨도 자신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는 이 전 시장에게 감정이 쌓였다.

판단이 서면 실행에 옮기는 것이 김씨 스타일. 그는 곧 이 의원에게 결별을 고했다. 문제는 결별 과정이었다. 서로 앙금과 감정을 다 털지 않은 채 돌아선 것이 화근이었다. 김씨는 ‘복수’를 꿈꿨고 곧바로 이 전 시장의 선거장부를 총선 경쟁자였던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 전달했다. 이로 인해 이 전 시장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했다.

그 후 10여 년. 이 전 시장 측은 잊을 만하면 김씨가 나타났다며 한숨을 내쉰다. 서울시장 선거 때 이미 ‘이명박 리포트’를 들고 나타나 이 전 시장을 압박했고, 경쟁후보였던 민주당 김민석 후보 측과도 접촉했다고 주장한다. 또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공사와 관련해 이 시장의 ‘측근’으로 행세하고 다녔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씨는 이 전 시장 측의 이런 주장들을 부인한다. 오히려 이 전 시장 측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방해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두 사람은 이런 신경전을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김씨의 인생은 이런 긴장감 속에 고저장단이 뚜렷하다. 매사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반병(兵)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제대할 때는 장교 계급장을 달았다.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변신. 무슨 배경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설명이다.

“일반병으로 근무하다 보니 무료했다. 그래서 소정의 교육을 받고 장교로 전환했다.”

김씨, 토지분양 사업 관련 투자자들에게 피소

제대를 한 그가 처음 몸담은 곳은 현대건설. 장교 특채였다. 그가 신입사원으로 일하던 1991년 8월 당시 회장은 이 전 시장이었다. 그렇지만 신입사원이었던 김씨는 이 전 시장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 회사에서도 특유의 언변과 ‘카리스마’(?)로 두각을 나타냈다. 지켜보던 그룹문화실에서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러나 김씨는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입사한 지 43일만에 사표를 낸 것. 사직 이유에 대해 그는 “직장 상사가 올바르지 않은 일을 시켜 박차고 나왔다”고 했다.

회사를 나온 그는 캐나다를 오가며 오퍼상을 했다. 그러나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전 시장에게 편지를 쓰고 여의도에 입성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 전 시장과 헤어진 2002년 김씨는 한국네트워크마케팅협회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당시 그와 함께 일했던 K씨는 23일 전화 통화에서 “그는 자기 과시욕이 강한 사람이라 총장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사무총장은 살림을 하는 자리인데 수시로 바깥으로 나도니 조직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이 일을 서너달 만에 그만 두었다. 대신 한국네트워크마케팅사업자총연맹이란 조직을 만들어 초대총재직에 올랐다. 김씨는 이 밖에 양심적 해직교수협의회 대변인 및 사무총장이란 명함도 갖고 다녔다.

2003년 초 그는 상암동 DMC 사업을 추진했다. 수십억원을 끌어들여 ‘IBC코리아’를 설립해 대표를 맡은 뒤 137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토지분양을 신청한 것. 그러나 자격미달로 탈락했고, 결국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투자자들 중에는 고교 동문도 많았다. 이 사업에 투자했던 쭛쭛고의 한 관계자는 23일 통화에서 “동창만 아니라면 할 말이 많지만…”이라면서 “그는 언제나 당당하지 않느냐”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동창 가운데 상당수가 금전적 손실을 입었고, 이 때문에 김씨에 대해 동창들의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고교 동창이나 후배들은 김씨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김씨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정치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 지인은 “고교 때 그의 꿈이 대통령이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어렸을 때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정치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말이 수시로 바뀌어 신뢰를 잃는 경우도 많았다고.

“받은 돈 1억여 원 벌어서 갚겠다”

김씨는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모든 일상을 일기형식으로 메모해둔다. 1996년 김씨를 수사했던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도 김씨의 이런 기록 습관과 탁월한 기억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정치권에서 그를 제2의 김대업이라고 빗댄 것과 관련해 “노는 물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록물을 토대로 ‘이명박 리포트’를 썼다고 한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사관(史觀)을 기준 삼아 본 것만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이 전 시장을 지켜본 기간은 불과 1년 남짓, 그것도 6급 비서의 위치에서 본 것이 전부다. 이 기간에 ‘이명박’의 모든 것을 다 볼수 있었을까. 이 같은 문제제기에 김씨가 말을 바꾼다.

“내가 직접 보지 않더라도 그(이 전 시장)와 함께 5년, 10년을 함께한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생생한 간접체험이지 않은가.”

김씨의 사무실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있다. 한 달 임대료는 1000만원 전후. 김씨는 이 임대료가 버거운 눈치다.

김씨는 22일 기자회견에서 “이 전 시장에게 받은 1억2050만원을 돌려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돈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벌어서 갚겠다”고 했다. 그는 조만간 나올 ‘이명박 리포트’를 중요한 수입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전 시장을 떠난 MB맨들 어떻게 지낼까

측근 인터넷 카페 통해 이명박 사람 관리


이명박-김유찬 ‘12년 애증’

1996년 9월10일 김유찬 씨가 서울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 동고동락하던 비서진은 10여 명 내외.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이 전 시장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헤어졌다. 그런데 최근 김유찬 씨의 폭로와 함께 이들의 이름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광철 전 비서관. 그는 이명박 캠프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던 핵심 측근이다. 1996년 김씨가 대국민 폭로에 나섰을 때 사건 무마를 위해 김씨를 전담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그를 표적수사한다는 지적을 받았을 정도이며, 실제 3개월 복역했다. 2003년 미국으로 떠난 그는 현지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동안 ‘MB선수마당’이란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명박 사람을 관리했다. 김씨가 K씨로 지칭한 인물은 신한국당 종로지구당 사무국장을 지낸 권영옥 씨. 그는 이 전 시장과 사돈관계다. 김씨에게 100만원씩 현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김씨가 인터뷰를 통해 “위증 대가로 1억205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하자 “생활비가 없다고 해서 100만원, 150만원씩 준 것뿐”이라고 말해 김씨를 구석으로 몰았다.

김씨의 녹취록에 나오는 J씨는 조직부장 출신. 한때 김씨와 DMC 사업을 같이 할 정도로 친한 관계였지만, 지금은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다. 종로지구당 청년부장 출신인 또 다른 K씨는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태권도 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전 시장 곁을 떠난 사람들은 한때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이들을 지휘한 사람은 서갑원 열린우리당 의원.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이 전 시장의 속살을 들여다 본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주간동아 575호 (p12~14)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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