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네 안의 창의력을 깨워라

진정한 예술가란 누구인가

  •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http://cafe.daum.net/hurrah2

진정한 예술가란 누구인가

학생들에게 ‘위대한 예술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상당수는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성황리에 공연을 하는 가수들이라고 대답한다. 또 미술품 경매에서 그림 한 장에 몇 억을 호가한다는 명망 있는 화가들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른바 직업적인 예술가들이 답변의 주된 대상이다. 물론 학생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이 떨어진다. ‘진정한 예술가’의 실체를 밝히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이는 학생들이 ‘진정한 예술가’에 대해 창의적으로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을 읽고 진정한 예술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쫓기듯 산에서 내려오고 논둑길을 걸어오는데, “장판 사려어-”/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장판지를 말아서 짊어진 할머니가 다시 ‘장판 사려’ 하고 외친다. 나는 그의 뒤로 바싹 붙어서 따라가다가,/ “할머니?” 하고 불렀다. 할머니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이러고 다니면 장판지가 더러 팔려요?”/ “사는 사람이 있으니께, 팔리니께 댕기지.”/ “많이 남아요?”/ “물밥 사묵고 댕기믄 남는 것 없지, 친척집에서 잠은 자고….” 노파는 다시 외친다. 집이래야 눈에 띄는 농가(農家)가, 박 덩굴 올라간 초가지붕이 몇 채도 안 되는데, 뒤따라가는 내 생각으론 한 장도 팔릴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노파는 유유히 목청을 돋워 장판 사라고 외치다가, 그것도 그만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연못 속의 금붕어가 어쨌다는 그런 노래였는데 너무 구슬프게 들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다가, 여기도 또한 거리의 악사(樂士)가 있구나 하고,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진짜로 예술가(藝術家)인지 모르겠다는 묘한 생각을 하다가, 그 노파는 윗마을로 가고 나는 가매못 곁에 와서 우두커니 낚시질을 하고 있는 아이들 옆에 서서 구경을 한다. 가매못 옆을 지나가면서 나는 어릴 때 상두가(喪頭歌)를 구슬피 불러서 길켠에 선 사람들을 울리던 그 넉살 좋은 사나이와 농악(農樂)꾼에 유달리도 꽹과리를 잘 치고 춤 잘 추던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이야말로 예술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박경리 ‘거리의 악사’ 중에서


진정한 예술가란 누구인가

공연을 하고 있는 무명 배우들.

이 수필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과 사회적 삶의 모습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장판 파는 할머니, 상여꾼, 농악꾼들이 부르는 노래는 삶의 현장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거리의 악사들이 부르는 노래는 예술로서 그대로 그들의 삶과 일치한다. 즉, 삶이 예술이다. 작가는 삶의 현장이 예술적 현장이 되고 있는 ‘거리의 악사’들이야말로 참된 예술가라고 본다. 작가라는 직업 예술가의 삶을 반성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 작가는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와 강박관념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작된 예술품을 생산한다고 본다. 이는 삶과 예술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예술이란 생활 속의 체험에서 얻어진다는 ‘창의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논술을 공부하는 수험생은 대상에 대한 관점을 다양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수험생들은 고정적인 시선에 매몰돼 대상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예술가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겉보기에 화려하고 돈을 많이 벌며 인기를 끄는 예술가를 뛰어난 예술가로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생활 주변으로 눈을 돌려 진정한 예술가를 찾아보자. 대학로의 소극장, 몇십 명 관객 앞에서 열정을 다해 공연하는 무명 배우들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배우들은 한 달 출연료가 10만원에 불과한 때도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생각해보자. 지하의 작은 카페에서 관객과 정서적 교감을 이루며 연주에 땀을 흘리는 무명 가수들이다. 우리는 무명 배우, 언더그라운드 가수 등에게서 진정한 예술가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예술의 현장이 곧 생활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진정한 예술은 생활 속의 체험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두 창의적으로 생각한 결과다.

TV나 영화계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스타)의 출연료에 대한 이야기도 접한다. 출연료가 낮아 출연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문제는 우리가 출연료가 비쌀수록 더 뛰어난 예술가로 본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나 관객들 대부분이 스타 예술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출연료가 높을수록 그들에게선 오히려 생활과 예술의 관계가 멀어질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뛰어난 미모의 특급 배우가 농사일을 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관객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학생들이여, 대상에 대한 속성을 자신의 창의성을 활용해 다시 규정해보자. 그 속에서 진정한 예술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97~97)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http://cafe.daum.net/hurrah2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