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2

2007.02.06

美 대선가도 심상찮은 오바머 바람

특별한 가족 내력, 때묻지 않은 신선함 정가·언론 관심 집중

  • 워싱턴=김승련 동아일보 특파원 srkim@donga.com

    입력2007-01-31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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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대선가도 심상찮은 오바머 바람

    대화를 나누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왼쪽)과 오바머. 최근 둘 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됐다.

    오바머의 무엇이 미국인을 열광시키는 걸까. 그는 과연 힐러리를 물리치고 민주당 후보를 거머쥘 수 있을까. 그리고 흑인에 대한 터부를 극복하고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2007년 벽두부터 워싱턴에서 감지되는 버락 오바머(46) 열풍을 보면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도 그럴 것이, 가는 곳마다 주목받고 있는 오바머는 전국 정치무대에 선 지 2년밖에 안 된 새내기 상원의원이다. 일찌감치 ‘록스타’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무리가 아닌 듯싶다. 1월23일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 때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들어간 방송카메라는 줄곧 오바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았다. 카메라는 솔직하다. 그만큼 그의 ‘정치적 상업성’이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오바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특별한 가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1961년 하와이생. 아버지는 케냐에서 온 유학생 버락 후세인 오바머 시니어(우파 정객들은 공개적으로 오바머의 미들네임인 ‘후세인’을 강조한다. 이슬람 커넥션을 각인시키자는 의도다), 어머니는 중서부 농촌 지역인 캔자스주에서 온 백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오바머의 부모는 그가 두 살 되던 해 헤어졌다. 이후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그는 초등학교 시절 4년간 자카르타의 이슬람-가톨릭 학교에 다녔다.이복 여동생은 중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했다.



    오바머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때 그의 친척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날은 ‘미니 유엔회의’가 열리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다양성, 그 속에서 느끼는 일체감을 오바머는 뼛속 깊이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흑백 혼혈에 다국적 혈통

    오바머는 5학년 때 하와이로 돌아와 백인 중산층 가정의 삶을 산다. 사립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우리 식으로는 79학번. 잠시 시카고 흑인 저소득층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하버드대 법대에 진학한다. 그리고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하버드 법대 법률지(Law Review)의 편집장으로 선출된다.

    한때 그는 월스트리트의 변호사로 진출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시카고 슬럼 지역을 택했다. 그는 늘 낮은 곳을 향했고, 몸을 낮췄다. 오바머가 7년간의 주 상원의원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이 된 뒤 인기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을 때의 일화다.

    사회자가 그의 매력을 평가하는 말을 이어가자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응수한다. “저에 대해 기분 좋게 생각하시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저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 그들에게도 저와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말이죠.”

    그의 말마따나 오바머 정도의 경력을 지닌 정치인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를 특별하게 여긴다. 그가 살아온 삶을 ‘오바머가 2007년의 미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믿는다. 흑백의 피를 모두 받았고, 부모의 이혼 후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영락없는 흑인이다. 그러나 그는 통념을 깨뜨린 흑인이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인종의 벽에 좌절하지 않았다. 늘 도전했고 쉬운 길보다는 옳은 길을 찾았다. “고등학교 때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에 마리화나와 코카인에 손댔다.” 그가 자서전에서 고백한 젊은 시절의 삽화 하나다.

    미국인들이 그를 특별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신선함이다. ‘검은 케네디’. 그의 또 다른 별명이다. 1960년 40세의 청년 상원의원 케네디가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것처럼, 그 역시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신비감으로 미국인 앞에 출사표를 던졌다. 어찌 보면 그의 일천한 워싱턴 경험은 약점보다는 강점이 될 수 있다. 조지아주 주지사 출신으로 워싱턴 경험이 없던 지미 카터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워싱턴 정치에 신물난 미국 유권자에게 어필했다. 지난 1~2년간 하루 걸러 하나씩 터져나오는 정치인과 로비스트의 추문(醜聞)은 ‘워싱턴과의 거리’가 먼 오바머에게 ‘덜 오염된 정치인’이란 인상을 주고 있다.

    1980년 이후 민주당은 일곱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다섯 번 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빼면 완패다. 따라서 이길 수 있는 후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 경선구도를 힐러리-오바머의 양강 구도로 본다면 미국인은 고민해야 한다. 민주당원의 열렬한 지지와 중도파· 공화당원 사이에서 ‘비호감’이란 극단적 평가를 얻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공화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까? 이런 민주당의 승리 집착은 역으로 오바머의 가능성을 돋보이게 한다.

    현재 지지도는 힐러리보다 열세

    이런 탓인지 그는 상원의원 초기부터 최고의 스태프와 팀을 짤 수 있었다. 상원 원내대표의 비서실장,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비서관, 퓰리처상을 받은 전기작가가 1년차 상원의원실에 모여들었다. ‘겸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앞날을 말한다’는 그의 의정활동 컨셉트는 이렇게 태어났다.

    어쩌면 민주당 후보 자리를 놓고 벌이는 힐러리와의 대결은 ‘본선 경쟁력’ 싸움이 될 수 있다. 일단 1월20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는 힐러리(41%)-오바머(27%)라는 선호를 드러냈다. 그러나 앞으로 1년 가까이 남은 민주당 경선 전쟁은 당선 여하에 관계없이 오바머가 미국인에게 더 분명하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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