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2

2007.02.06

햇빛에 비친 빨랫줄의 감동

  • 류진한 한컴 제작국장·광고칼럼니스트

    입력2007-01-31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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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에 비친 빨랫줄의 감동
    겨울이면 시냇가에서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던 어머니의 뒷모습, 햇볕 좋은 날 마당을 가로질러 기분 좋게 내걸려 있던 하얀 이불보와 아버지의 러닝셔츠. 하얀 빨래를 볼 때마다 이런 추억을 떠올리는 세대가 있다. 이런 추억 어린 시각으로 만들어진 광고는 30~40년 전쯤 서울 한 구석의 한가한 오후를 연상케 하지는 않을까.

    세탁기 기술이 날로 발전함으로써 예전의 누나나 어머니들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기능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은나노 세탁이니 스팀 세탁, 살균 세탁 등이 화두가 되기도 하고 선명한 색상을 오래 보존하게 해주는 세탁기술도 우리를 현혹한다. 그럼에도 ‘빨래의 기본은 하얗게 만드는 것’임을 우기는 필자는 어쩔 수 없는 구세대인가 보다.

    이번에 소개하는 광고는 세탁용 세제인 ‘프록터 앤 갬블(P·G)의 Tide’ 광고다. 시선을 끄는 크리에이티브의 광고가 대부분 그렇듯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밍밍하거나 심심하지도 않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대화의 아쉬움이 살짝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이 오히려 매력적인, 그 도도함에 나도 모르게 끌리고 마는 광고다. 고급스런 제품은 아니지만 단아하고 뚝심 있는 표현의 줄기를 잊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저력이 느껴진다.

    비주얼의 아이디어 역시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흥미롭다. 어쩌면 아트디렉터가 한 일이라고는 창가에 비친 하얀 햇빛조각들의 머리 끝에 빨랫줄 한 줄 정도를 그어놓은 일이 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의 부가가치를 생각한다면 그 역시 멋진 일임에 틀림없다. 한 획으로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챙기는 능력이라면 부럽지 않겠는가.

    바람이 하늘거릴 때마다 오리엔탈리즘의 신비가 물씬 풍겨날 것 같은 향기, 빨래를 널고 외출했다가 돌아온 주인의 입이 귀에 걸릴 것 같은 즐거움, 그 옷을 입고 삼삼오오 성전에 오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인생의 즐거움이 어디 큰 덩어리에만 있겠는가. 하얗게 빨아진 양말 한 켤레, 월요일에 입는 깨끗한 와이셔츠 한 장, 갓 돌이 지난 아기의 뽀송뽀송한 속옷…. 가끔씩 이런 것들에서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함을 느낀다면, 당신은 행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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