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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은 젊은이들만 보나”

‘원초적 본능’에 빠진 중노년 증가 … 나이 먹어 ‘주책’ VS 성 촉매제 엇갈린 반응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야동은 젊은이들만 보나”

“야동은 젊은이들만 보나”
‘야동순재’. 장안의 화제인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한방병원 원장 ‘이순재’ 역의 닉네임이다. 가부장적 성향의 대가족 가장이지만, 노트북에 내려받은 ‘야동’(야한 동영상)을 가족 몰래 감상하다 들켜 이런 별칭이 붙었다.

지난해 8월 방영된 MBC ‘황금어장’의 상황극 ‘아빠의 늦청춘’. 극중 ‘아버지’(임채무 분)는 정년퇴임 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그러던 그가 집에 위성안테나를 달고 TV 채널을 돌리는 순간, 우연히 야한 영화를 보게 되는데…. 이어 친구들과 야동까지 직접 구해보는 때늦은 ‘야동질’에 빠져든다.

탤런트 이순재 씨는 올해 72세, 임채무 씨는 58세다. 둘 다 야동과 거리가 먼 듯한 중노년. 그동안 공중파 방송에서 금기와도 같았던 중노년의 ‘원초적 본능’을 이렇게 제한적이나마 다뤘다는 사실은 나이라는 잣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기 힘든 현실에 대한 방증일 수 있다.

성인PC방 드나드는 노인들

중노년층 ‘야동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비록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제약 때문에 욕망을 초월한 듯 보이곤 했던 기존의 가식적 행태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



중소기업 간부 이모(50) 씨는 2년 전 대학동기와 함께 찾았던 한 유흥업소의 상무가 건넨 명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명함에 적힌 이 업소의 홍보용 홈페이지 주소 때문. 홈페이지엔 업소 현황과 예약 시스템 외에도 손님을 위한 서비스 차원의 색다른 코너가 있다. 야동 소개 코너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굉장하더군요. 한국과 일본·미국산 야동을 항상 3편가량 올려놓아요. 열흘 정도마다 새로운 내용들로 업데이트해 주니까 이젠 시간이 지나면 은근히 기다려집니다.”(이씨)

이씨는 지금도 집의 PC로 이 야동들을 종종 감상한다. 아내가 알아차린 듯한데, 뭐라고 따진 적은 없다고 한다. 잠자리에도 문제가 없다. 그의 말이다.

“왜 보느냐고? 상상 속의 성적 판타지를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남자라면 나이와 무관하게 성적 욕구가 있는 법이고, 일상과 달리 신선하기까지 한 야동은 그 욕구를 일정 부분 충족시켜줍니다. 그렇다고 집 밖에서 야동을 찾을 만큼 중독된 건 아니에요.”

“야동은 젊은이들만 보나”

성인PC방의 야동(왼쪽 사진 오른쪽)과 노인복지시설 사이트에 올라온 야동 광고들.

그러나 야동을 찾아 헤매는 중노년이 없는 건 아니다. 1월2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인근의 한 성인PC방. 좁은 골목길에 숨은 듯 자리한 이곳에 들어서자 실내가 온통 어두컴컴하다. 시간당 이용료는 5000원. 10분 연장할 때마다 1000원씩 추가된다. 종업원이 가리킨 방은 그야말로 밀실. 천장은 뚫렸지만 칸막이가 방들을 구분하고 있다. 한 평 남짓한 쪽방 안에 놓인 것이라곤 PC 한 대와 의자, 헤드셋, 옷걸이, 재떨이, 휴지, 쓰레기통이 전부다. 3~4년 전 음란물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경찰의 집중단속을 당했음에도 변함없이 성업 중이다. 언뜻 봐도 방이 20개는 넘어 보인다.

이미 켜져 있는 모니터엔 남은 이용시간이 표시된다. 바탕화면에 점점이 박힌 10여 개의 폴더를 열면 이내 동서양의 야동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때 대한민국 사회를 달궜던 ‘추억(?)의 야동’들도 있다. 마우스 조작 두어 번이면 ‘컴맹’도 감상은 식은 죽 먹기. 옆방에선 부스럭거리는 소리,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쉴새없이 이어진다. 대낮인데도 손님이 연신 드나든다.

이채로운 건 손님 중 60대를 넘은 듯한 이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는 점. 종업원과 인사를 나눈 한 노인은 단골인 듯싶다. 30대 초반의 종업원은 “노인들은 집의 PC를 아들이나 손자들에게 ‘점령’당한 경우가 많아 민망함을 감출 수 있는 이곳을 찾는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저렴한 비용으로 시간 때우기가 좋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야동 CD를 손에 넣기 힘들어 직장마다 ‘조달자’들이 한 명쯤씩 있던 과거와 달리 손만 뻗으면 언제든 야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로부터 여전히 ‘고립’된 노인들로선 성인PC방이야말로 ‘대안’일 수도 있는 셈이다.

노인 사이트엔 야동 광고 도배

야동을 즐기는 중노년의 존재는 남성의학 클리닉에서 확실히 부각된다. 김경동연합한의원(대구)의 김경동 원장은 “68세의 한 남성 환자는 성인PC방 단골이다. 부인도 있다. 은퇴 후의 허전함을 달래고 싶은데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어 자주 찾아간다고 털어놓더라”며 “성생활에 대한 욕구불만을 싼 비용으로 해소하려는 수요가 있으니 야동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로선 야동을 밝히는 중노년이 다수라고 보긴 힘들다. 정확한 관련 통계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올해 55세인 약사 S씨는 “3~4년 전쯤 약국 내 PC에서 야동 안내 스팸메일을 열어봤다가 PC가 오작동해 곤욕을 치른 뒤론 야동을 보지 않는다. 자칫 PC에 설치한 건강보험 약제비 청구 프로그램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은퇴 전인 60세 이하 지인들은 경제력이 있어서인지 야동보다는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선호한다”고 털어놓았다.

노인문제 전문 상담기관인 ‘한국 노인의 전화’ 강병만(77) 사무국장 역시 “3000여 건에 이르는 연평균 상담건수 중 10%가량인 300여 건이 노인들의 성(性)과 관련 있다”면서도 “소위 ‘박카스 아줌마’ ‘소주 아줌마’ 등에게 쌈짓돈을 털리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성인PC방을 드나드는 남성 노인들은 스스로 밝히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소수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찌 됐건 중노년층의 야동 노출 빈도는 점점 늘어간다. 실제로 노인복지 관련시설들의 자유게시판은 야동 사이트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서울의 한 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야동 광고를 수시로 삭제하는데도 끊임없이 올라온다”며 “우리 복지관을 찾는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이 71세인데, 이런 광고가 아니더라도 컴퓨터 교육을 받은 분들 중 일부는 인터넷은 물론 포토샵까지 다룰 만큼 PC 운용능력이 뛰어나 집에서 야동을 곧잘 본다”고 귀띔했다.

중노년의 야동 감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M·L세우미클리닉의 정정만 원장(비뇨기과 전문의)은 “정년이 있을 수 없는 섹스를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봐선 안 된다. 병적인 도착증에 빠지지 않는 한, 야동은 섹스 매너리즘에 빠진 부부들에겐 낯선 자극을 주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우리 병원을 포함한 일부 비뇨기과에선 방음시설이 된 방에서 포르노 장면들을 편집한 동영상을 성기능장애 환자들에게 보여주는 등 치료용으로 활용하며 또한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존재한다. 여성 중심의 성 이론을 주창하는 시인 송현(60) 씨는 “입맛이 없을 때 별미를 먹으면 잃었던 식욕을 되찾을 수 있듯, 야동을 식어버린 부부의 사랑을 새로 지피는 불쏘시개로 활용하는 것은 삶의 지혜일 수 있다”면서도 “대다수 야동은 과장과 왜곡으로 일관함으로써 더욱 강한 자극을 갈구하게 하고, 여성을 남성의 노리개로 묘사하는 등 남성 중심 섹스의 산물이므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동은 이제 음습한 밤거리에서 뛰쳐나와 양지를 활보하며 중노년층의 눈길을 붙든다.

하지만 어찌 그들의 야동 감상을 ‘주책’이라 매도할 수 있으랴. 추사 김정희마저 ‘일독이호색삼음주(一讀二好色三飮酒)’라 토로한 바 있으니….



주간동아 2007.02.06 572호 (p42~43)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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