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1

2007.01.30

때 아닌 인플레이션 지표 변경

  • 김종선 경원대 교수·경제학

    입력2007-01-24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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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은 올해부터 금리정책의 근간이 되는 대표 물가지표로 근원물가지수 대신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근원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 산정에 채택된 품목 가운데 가격 급등락이 심한 농수산물, 유류 등을 제외한 품목에 대한 물가지수다.

    농수산물은 계절적 요인으로, 유류 관련 품목은 지정학적 위험으로 경제의 펀더멘털과는 상관없이 가격 등락이 심하다. 또 이 두 품목의 가격 변화는 일시적인 게 특징이다. 그래서 구조적 인플레이션 위험을 정확하게 예견하기 위해 어느 나라나 소비자물가지수 대신 근원물가지수를 주목한다.

    올해부터 소비자물가지수 사용 … 한국은행 역할 의구심

    그렇다고 근원물가지수가 항상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인플레이션 예견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수년간 유가상승을 이끌어온 요인이 지정학적 위험이 아니라 수급 불균형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유류 가격의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 근원물가지수가 인플레이션 진행 상황을 정확히 반영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수차례 받았다. 그래서 물가당국은 사실상 양쪽을 다 들여다본다. 그러나 어느 쪽을 공식 물가지표로 보느냐는 문제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해마다 거의 모든 중앙은행들은 대표 물가지표에 대한 상한선을 명확히 제시한다. 그리고 물가가 이 상한선을 뚫고 올라가면 어김없이 금리인상이라는 칼을 빼든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물가당국의 약속이다. 만일 이 선언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민은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의지를 불신하게 된다. 그래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많은 물가지표 가운데 대표 물가지표 하나만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상한선을 제시하지 않고 대신 약간의 범퍼를 둔다. 목표선에 대해서도 상한선과 하한선을 둔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로 발을 들여놓는다 해도 침략 의지가 엿보이지 않으면 경고만 하는 것과 같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은 군사분계선만 넘으면 무조건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에 비유해서 물가 얘기를 하고 있으니,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물가와 관련해 꼭 알아야 할 사실을 몇 가지 더 얘기해보겠다. 북한군이 ‘전면적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선다는 것이 사실상 전쟁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물가가 상한선을 넘어선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이미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보다는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능한 중앙은행은 소비자물가지수가 언제 움직일지를 알아내기 위해 늘 다른 지표를 살핀다. 즉 후방에서 일어나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보고 침략 조짐을 읽어내듯, 중앙은행도 생산자물가와 임금의 변화를 예의주시한다. 소비자물가가 오르기 전에 흔히 생산자물가가 먼저 오르고, 또 생산자물가 전에 임금이 움직이는 특성을 중앙은행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이 보기엔 물가가 전혀 움직일 것 같지 않은데도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올리는 일이 허다하다. 이른바 선제적 방어다. 이런 일을 소신 있게 잘해야 이름 그대로 중앙은행이다. 대표 물가지표를 바꾸는 일은 한가할 때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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