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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권부’ 금감원 위기의 계절

전현직 간부 잇단 비리혐의 구속 … 정보 독점·조직 방만 운영 등 도마에

  • 홍수용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legman@donga.com

‘경제 권부’ 금감원 위기의 계절

‘경제 권부’ 금감원 위기의 계절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건물(왼쪽). 금감위원장은 금감원장을 겸한다. 1월8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가운데).

#1.2004년 1월2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외환카드 노동조합 명의의 진정서 한 통이 접수됐다.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가 외환카드를 싸게 인수하기 위해 허위로 감자(減資·자본감소) 소문을 유포했다는 내용이었다.

금감원 측은 “신빙성이 낮다”며 조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검찰 수사에선 진정서 내용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금감원이 즉각 대응하지 않아 사건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2. 금융회사 감사실에 근무하는 김모(38) 과장은 최근 몇 년간 금감원의 상시 검사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한다. 검사가 엄격해서가 아니라 검사하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검사 주체가 바뀔 때마다 설명해야 하고, 검사 기준과 관련해 금감원에 문의해도 “잘 모르겠다”며 전화를 돌리기 일쑤다. 김 과장은 “금감원 직원에게 10가지를 물어보면 1가지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제 권부(權府)’로까지 불리는 금감원이 1999년 출범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금감원 김중회 부원장과 신상식 전 광주지원장이 김흥주 삼주산업(옛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금감원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아울러 금감원의 감독 및 검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민간조직으로서 시장원리에 따라 감시 및 감독을 하기보다는 관료주의에 젖어 덩치만 키우려 한 게 이런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 현황
* 자료 : 금융감독원
。설립 근거 :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1997년 12월 제정)
。설립 시기: 1999년 1월
。조직 규모 : 28국 18실 220팀 1673명
。주요 업무 : 금융회사 검사, 자본시장 및 회계 감독
。1인당 평균 연봉 : 7428만9000원(2005년 기준)
。평균 근속연수 : 13.3년




금융회사 및 금융감독원 직원 수 추이
* 자료 : 금융감독원
구분 금융회사 수 금감원 직원 수
2001년 말 3386개 1460명
2003년 말 3182개 1545명
2005년 말 2965개 1640명
2006년 말 2898개 1673명


‘경제 권부’ 금감원 위기의 계절
금감원은 어떤 조직?

금감원은 1999년 1월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범했다. 현재 28국 18실 220개 팀에 속한 직원 1673명이 자본시장 감독과 금융회사 검사업무를 맡고 있다. 형식상 민간조직이지만 정부 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고 있다. 유일한 민간 감독기구라는 점 때문에 연평균 급여가 7500만원에 이르면서도 정부 조직 못지않은 권한을 갖고 있다. 민간과 관료 조직으로서의 장점만을 두루 갖춘 셈이다. 어떻게 이런 조직 구성이 가능했을까.

금감원은 과거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으로 나뉘어 있던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출범했다. 1997년 6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금융개혁위원회는 4개 감독기관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하는 금융규제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때 재정경제원(현 재정경제부·이하 재경원)은 금감원을 재경원 산하에 두고 감독 업무만 맡기려 했다. 금감위와 금감원이 정부기구로 운영되는 만큼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 직책도 겸하도록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국회가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개혁 법률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은행감독원 노동조합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금감원을 민간기구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도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하는 조항은 그대로 유지됐다. 한 사람이 금감위에서 지시를 하고, 금감원에서 지시를 받는 웃지 못할 일이 이때 시작된 셈이다. 이런 배경 탓에 금감원은 민간조직임에도 관료인 금감위원장의 지시를 받는 기형적 형태로 1999년 1월 출범했다.

필요에 따라 민관(民官) 양면성 활용

이렇게 출범한 금감원은 초기부터 문제점을 드러냈다. 직원 개개인의 위법행위에 대해 민간조직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예컨대 2001년 말 서울의 한 경찰서는 ‘금감원 직원이 1개월 동안 2차례나 음주운전을 한 데다 음주 측정까지 거부해 형사입건됐다’는 내용의 범죄사실 통보문서를 금감원에 보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금감원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다”라며 문서를 반송했다. 형식상 민간인이란 점을 충분히 활용한 것. 2003년 중반에는 한 직원이 폭력행위로 기소유예 처분된 사실이 통보됐지만, 금감원은 이 사실을 문서대장에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반면 금감원이 금융회사와 자본시장을 대상으로 법적 권한 이상 제재한 사례는 출범 후 5년간 1500건이 넘었다. 또 감사원이 2004년 2월 금융회사 직원 112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7.7%가 ‘구비서류 등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했다. 7.9%는 ‘인허가 담당 직원의 고압적 업무태도’를 문제로 지적했다. 관료조직이 아닌 금감원 내에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뜻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정부기구인 금감위의 권한이 과도하게 금감원으로 넘어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증시 관련 불공정거래 조사는 금감위 내부 기구인 증권선물위원회가 전담하고 금감원은 경미한 사안만 처리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금감원이 사건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감독 대상인 금융회사들은 “정기 검사나 인허가 신청 때마다 금감원 측이 형식적인 서류를 요구하고 퉁명스럽게 대하곤 한다”면서 “정부 관료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불만스러워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2000년 금감위와 금감원이 체결한 감독업무 분장에 관한 약정에 따라 인허가, 불공정거래 조사, 공시 및 회계감독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어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도덕적 해이에 정보 독점 문제까지

금감원 임직원이 금융회사와 유착돼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점도 문제다. 최근 참여연대가 2001년 1월~2006년 9월 금감원 퇴직자 114명의 재취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 76명이 금융회사나 금감원과 관련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지난해에는 금감원 직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의혹이 제기된 시점을 전후해 론스타의 법률자문회사로 대거 자리를 옮긴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금융업권 간 영역 붕괴로 금융회사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달리, 금감원의 덩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현재 금융업계는 은행, 보험, 증권 등 영역 간 경계가 없어지는 겸업화 및 인수 합병에 의한 대형화 추세에 따라 금융회사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말 3586개에 달했던 금융회사가 지난해 말 2898개로 줄어든 것.

반면 금감원의 덩치는 점점 커지고 있다. 1999년 말 기준으로 206개 팀, 1357명이던 조직 규모가 지난해 말에는 220개 팀, 1673명의 거대 조직으로 변했다. 금감원은 또 업무 영역별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조직을 세분화하는 한편, 검사 및 조사 인력을 늘리고 있다. 금융 겸업화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또 금감원이 금융 관련 정보를 다른 금융회사와 공유하지 않아 신용문제 등이 불거졌을 때 전체 금융권이 공동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자료가 금감원과 금감위에만 집중되는 탓에 한국은행은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의 주택대출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 김 부원장이 상호신용금고 관련 내부 정보를 유출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금융권 관계자들은 크게 허탈해했다.

“조직 운영체계 확 바꿔야” 지적

전문가들은 민관 성격이 혼재된 현 상태로는 제대로 된 감독이 힘든 만큼 금감원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명지대 조동근 교수(경제학)는 “업무에 대해 금감원 직원 개개인에게 부여된 재량권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라며 “하나의 업무에 대해 2, 3명이 공동 작업하고 공동 책임지는 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금감원 직원들이 퇴임 후 금융 유관 회사에 가지 못하도록 윤리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 교수는 “포상금 지급 등에서도 도덕적 해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시민단체 등을 통해 금감원과 금융 공기업 측에 포상금 지급명세와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금융감독체계 어떻게 해야 하나

완전 민영화 vs 정부기구화 ‘두 목소리’


‘경제 권부’ 금감원 위기의 계절

영국 금융감독청 건물.

경제 전문가들은 현행 금융감독 체계가 기형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인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와 민간조직인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함께 있는 것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금융감독 특성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경희대 권영준 교수(국제경영학)는 “민간인으로 이뤄진 금감원 위에 금감위가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 조직이 정치적으로 움직일 개연성이 있다”면서 “금융감독의 방향이 정부 입김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라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과거 신용카드 위기 당시를 대표적인 경우로 꼽았다. 당시 금감원으로선 카드 발급 규제를 강화해 부실 위험을 줄여야 했지만, 경기 부양이라는 정책적 목표에 밀려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측면이 있다는 것.

권 교수는 “금감위와 금감원을 합쳐 민간조직으로 만들어야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감독 기구가 될 것”이라며, “대신 민간조직인 금감원 직원들은 업계나 학계에서 검증받은 전문가들로 충원해야 수준 높은 감독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대신 계약직으로 뽑아 시장의 평가가 나쁘거나 비리에 연루되면 강력히 처벌하는 보완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상대 김홍범 교수(경제학과)도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민간기구이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금융감독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금감원이 금감위로 흡수 통합돼 공무원 조직이 되면 관료주의 때문에 체계적이고 바람직한 금융감독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금감위와 금감원을 공무원 조직으로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설립을 승인한 금융회사들을 민간조직이 감독하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은행 설립 및 감독은 법적으로 공적 행위인 만큼 민간조직이 금융감독 업무를 부분적으로 맡는 현행 체제는 기형적인 구조”라면서 “일본이나 미국 등 대다수 선진국들이 정부 기관에서 금융감독 업무를 맡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571호 (p32~33)

홍수용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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