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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제2 이라크 수순 밟나

미국 하리리 前 총리 살해사건 조사 주도… “테러 지원 지속 땐 정권 내놔야” 협박 메시지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시리아, 제2 이라크 수순 밟나

미국의 시리아 길들이기가 본궤도에 올랐다. 과연 그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2월14일 의문의 자동차 폭발사고로 숨진 레바논의 전 총리 라피크 하리리에 대한 유엔 조사단의 중간조사 결과 보고가 10월2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서 있은 뒤 향후 시리아가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리리는 시리아가 압력을 행사해 친(親)시리아 인사인 에밀 라후드 대통령의 3선 연임이 가능토록 헌법을 개정하자 이에 반발해 사임했다. 그 후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던 중 누군가 그의 승용차에 설치해놓은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암살 배후에 시리아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레바논 국민들에 의한 반(反)시리아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시리아는 결국 레바논에 주둔하던 자국 군대를 철수했다(주간동아 478호 참조).

유엔 조사단 12월15일 최종 보고서

그 결과 시리아의 영향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치러진 5월 레바논 총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반(反)시리아연합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하리리 살해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진상조사를 끈질기게 요구해 결국 이를 관철했다. 독일의 저명한 검사 데트레브 메흘리스를 단장으로 하는 유엔 조사단이 결성된 것. 조사단 결성에는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의 노력도 컸다. 포브스지에 의해 세계 100대 부호에 선정될 정도로 막대한 재력을 소유한 하리리 전 총리는 이를 무기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교분을 나눴는데, 그중에서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유엔 조사단 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후문이다.

조사단의 중간조사 결과 공개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하리리 살해 사건 이후 시리아에 대한 유엔의 제재가 임박했다는 각종 언론 보도로 인해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10월12일 시리아의 내무장관 가지 카난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가 자살한 이유가 조사 결과에 어떤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관심을 더욱 부추겼다. 카난 장관은 20년 넘게 레바논 내 시리아 정보기관장을 역임한 인물로, 만일 시리아가 하리리 암살 사건에 관여했다면 누구보다도 정황을 잘 알고 있을 위치에 있었기에 조사단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조사단의 중간조사 결과는 “다마스쿠스 정권이 하리리 암살에 관여했다는 강한 의혹이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5월 구성된 조사단의 조사시한은 10월15일이었고 향후 조사시한을 2개월 더 연장 요청할 수 있다는 조건 아래 5개월 동안 300명이 넘는 관련자를 조사했지만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의 지시로 암살했다’와 같은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조사 결과가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볼 때 조사기간을 2개월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은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란 쉽지 않기 때문.

예상대로 메흘리스 조사단장은 조사기간 연장 신청을 해 유엔으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안보리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 논의를 최종조사 결과 보고가 나오는 12월15일 이후로 연기함으로써 결과 보고는 마무리됐다.

시리아로서는 두 달여 시간을 번 셈이지만 시리아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리가 중간조사 결과 보고를 토대로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에게 조사단이 조사하기 원하는 모든 인물에 대해 조사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줄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발표했기 때문. 문제는 조사대상 범위 안에 바샤르 아사드의 동생이자 시리아공화국 수비대장 마헤르와 시리아군 정보기관장인 매형 아세프 샤우카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사드 대통령의 주변부를 넘어 핵심부로 조사 범위를 좁혀 들어오고 있는 조사단이 아사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한 조사에서 어떤 혐의를 밝혀내면 아사드 정권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이들을 비호할 경우 또한 그 결과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남은 2개월 시리아 운명은

이 모든 시리아에 대한 압박은 비록 유엔의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것이다. 미국에 유럽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자체적으로 시리아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미국-시리아 간 교역 규모는 3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유럽-시리아 간 교역 규모는 70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미국의 대(對)시리아 압박이 실효를 거두려면 유럽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미국의 대(對)시리아 압박의 이유는 무엇일까.

잘 알다시피 미국은 현재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군 병사뿐 아니라 민간인의 피해 또한 늘어나는 실정이다. 미국은 그 배후에 시리아가 있다고 본다. 이라크 내 많은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 국경을 통해 잠입하고 시리아에서 은신처를 찾는다. 또 미국은 테러 단체들의 무기 또한 시리아로부터 지원 혹은 입수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는 미국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불량국가’다. 따라서 미국은 모종의 대책을 찾아야 했고 하리리 암살 사건이 좋은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미국의 주 관심사는 시리아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이나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범을 밝혀내는 것, 혹은 레바논에서 시리아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보다 시리아와 테러와의 연계고리를 끊는 데 있다. 따라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전하는 미국의 메시지는 ‘만일 테러 지원 행위를 지속한다면 경제제재를 당하는 것뿐 아니라 정권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강한 협박이다. 그럼으로써 남은 2개월 안에 시리아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암살사건 배후에 시리아가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76년 레바논 내전을 빌미로 자국 군대를 주둔시킨 이래 시리아는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레바논 지도자를 암살했다. 시리아가 레바논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행한 주요 수단이 바로 지도자 암살이었던 것. 시리아의 의지에 반하는 지도급 인사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따라서 레바논에서 지도급 인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親)시리아 인사가 되든지 적어도 시리아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말아야 했다.

남은 2개월간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향후 시리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정권이 전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결과에 따라 중동 정치는 다시 한번 소용돌이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레바논의 입장에서는 미국 덕분에 한 세대 넘게 지속돼온 ‘시리아의 위성국가’ 처지에서 벗어날 호기를 맞은 셈이다.



주간동아 2005.11.29 512호 (p62~63)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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