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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한국인 최초의 특허 출원자 정인호를 아십니까

  • 전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한국인 최초의 특허 출원자 정인호를 아십니까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침해자는 20만명이 넘는다. 그 가운데 5259명은 구속됐다고 한다. 2006년 국정감사에서 나온 통계다. 지적재산권이라면 당장 ‘발명’을 떠올리기 쉽고, 발명 하면 에디슨을 연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의 지적재산권 침해는 음반ㆍ비디오 및 게임물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다. 절반 이상이 이쪽에서 나온다.

그런데 과학적 창의성을 북돋우려고 시작한 지적재산권 제도가 이제는 오히려 창의성을 억압하는 수단이 돼가고 있다. 큰 회사에서는 수백 명의 변리사와 특허전문가를 두는 것은 기본이고, 회사 간의 국제적 분란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디지털 혁명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에서 언제까지 특허권을 누려도 좋은 것인지 불분명해지고 있다. 실제로 정보가 무한대로 복제되고 유포되고 있기 때문에, 아예 독점권을 포기하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변리사와 변호사도 활동 범위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변화는 불과 100년 사이에 일어났다. 100년 전, 아니 97년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나라에는 아예 특허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1936년 1월1일자 ‘동아일보’는 발명 특집기사를 냈는데, “우리나라에 특허제도가 생긴 것은 융희 2년(1908) 가을인데, 조선 사람으로 제일 먼저 등록을 받은 분은 정인호(鄭寅琥) 씨의 ‘말총토수’요 그 외에 말총모자(帽子) 등등이 모두 다 정 씨의 발명품으로 권리를 보장받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1910년 식민지가 되기까지 통감부 특허국에 등록된 발명ㆍ특허 건수는 한국인이 2건, 미국인이 24건, 일본인이 249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인 2건의 주인공이 바로 정인호란 인물이다. 한국 역사상 첫 특허를 받은 그는 대한제국의 농상공부 참서관과 청도(淸道)군수 등을 지내고, 1920년에는 구국단(救國團)이란 비밀단체를 만들어 조선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모금 운동이 발각돼 1922년 2월14일에는 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랬던 정인호가 1938년 6월, 71세의 노인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미술전 공예 부문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말총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었는데, 모자·핸드백·쿠션 등 30여 상품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신문은 가내공업으로 성공하면 수출도 가능하다는 찬사를 곁들였다. 총독부 상공과장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더니 크게 칭찬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1937년 1월에 그는 서울에 동양특산양행이라는 회사를 열고 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단다.



1938년 6월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서울 인사동 117번지의 금성여관 6호실에 묵고 있었는데, 그의 장남이 장진강 수력발전 공사장에 의사로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기사에는 운보 김기창(金基昶, 1914∼2001) 화백도 등장한다. 1943년 조선미전에서는 13명이 특선을 차지했는데, 그때 정인호도 같은 주제로 공예 부문 특선에 올랐다. 동양화 분야의 장우성(張遇聖, 1912~), 배렴(裵濂, 1911~68), 서양화의 박영선(朴泳善, 1910~94) 등 걸출한 미술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그들의 이름이 지금도 높은 유명세를 자랑하게 된 것에 비하면, 정인호의 일생은 초라하기만 하다. 그가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팔아서라도 그의 이름을 빛내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나는 정인호의 이후 행적까지는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69~69)

전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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