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6

2005.10.18

홍어 생각만 해도 환장하겄네

  • 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5-10-17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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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생각만 해도 환장하겄네
    홍어만큼 속이 후련해지는 생선이 또 있을까? 혀가 찌릿찌릿하고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며 속이 확 뚫릴 만큼 잘 삭은 홍어를 먹다 보면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다. 과식을 해도 소화 안 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변비도 해결해주는 것 같다. 실제 홍어탕을 끓일 때는 풋배추를 데친 우거지 대신 잘 말린 시래기를 넣어서 끓이라고 한다. 홍어 때문에 풋배추 데친 우거지는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이다.

    홍어를 건강식으로 장복하는 이들도 있다. 흑산도에서 홍어 경매를 하는 김훈(42) 씨 말에 따르면 당뇨에 좋다며 한 달에 두세 마리씩 꼭 사가는 단골손님들이 있다고 한다. 또 물렁한 홍어 뼈는 관절과 뼈엉성증(골다공증)에 좋고, 삭힌 홍어는 기관지 천식에 좋다는 얘기도 있다. 아마 바다 생선을 두고 이렇게 다양한 민간처방이 도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홍어 하면 흑산도고, 흑산도 하면 홍어다. 홍어가 흑산도에만 몰려 살지는 않을 텐데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서해의 개펄에서 살던 홍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새끼를 낳기 위해 흑산도 근해로 모여든다. 흑산도 근해는 수심 70~80m로, 뻘층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새끼 낳기에 좋은 곳이다.

    주낙 사용 잡을 때부터 달라

    홍어 생각만 해도 환장하겄네

    홍어 중매인 김훈 씨가 최상품 1번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물론 인천항이나 군산항에서도 종종 홍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잡힌 홍어는 흑산도 홍어와 차원이 다르다. 현재 홍어잡이 전용 배는 흑산도에만 8척이 있다. 흑산도 홍어잡이 배는 주낙(줄낚시)을 사용한다. 80m 길이의 낚싯줄 하나를 한 고리라고 하는데, 한 고리에 30cm 간격으로 낚싯바늘을 단다. 낚싯바늘에는 미늘(작은 갈고리)도 없고 미끼도 없다. 보통 주낙을 수심 80m 바닥에 내려놓으며, 한번 출어하면 600~700개의 고리를 바다 밑에 내렸다가 끌어올린다. 반면에 서해에서 잡히는 홍어는 저인망 어선에 우연히 잡힌 것들이다.



    홍어의 맛은 먼저 잡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데, 주낙에 낚인 홍어는 상처 때문에 죽기 전에 몸속의 피가 다 빠져나간다. 그러나 저인망 그물에 잡힌 홍어는 피가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죽게 된다. 생선은 죽은 뒤에는 피를 뺄 수가 없는데, 피가 빠지지 않은 홍어를 삭히면 금방 물이 생기고 살이 무르다. 반면 피가 빠진 홍어는 삭혀도 살이 탱탱하게 유지된다.

    그 다음은 삭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홍어는 먹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맛의 기준이 다 다를 정도로 기호가 다양하다. 예전에는 암모니아 냄새가 날 정도로 곰삭은 홍어가 많았다. 이때는 삭힌다는 말보다 썩힌다는 말을 예사로 사용한다. 하지만 되우 삭히는 것은 냉장시설이 없던 과거의 낭만이 돼가는 것 같다. 요즘은 대부분 부드럽고 은근하게 삭힌 홍어가 유통되기 때문이다.

    홍어 생각만 해도 환장하겄네

    흑산도 홍어회는 한 접시(15점 안팎)에 4~5만원 한다.

    흑산도에서는 홍어배가 들어오는 아침이면 홍어 경매가 이뤄진다. 가격은 수요 공급에 따라 그날그날 달라진다. 홍어는 암컷이 수컷보다 크고 맛있다. 암컷은 크기에 따라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8kg이 넘으면 1번치로, 가격이 잘 형성되면 60만원가량 한다. 2번치는 7~8kg으로 50만원가량, 3번치는 6~7kg, 4번치는 5~6kg, 그 이하는 ‘폴랭’이라고 하는 새끼들이다. 홍어 가운데 큰 것은 주로 암컷인데, 수컷은 커봐야 5~6kg밖에 안 나가서 대충 크기별로 분류해서 판다. 가격도 암컷 5kg짜리가 30만원 한다면, 수컷은 18만원밖에 안 한다. 수컷은 뼈가 있어 억센 편이며, 배지느러미 뒤쪽에 막대기 모양의 교미기 2개가 있어 쉽게 구별된다.

    믿을 만한 흑산도 홍어를 맛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흑산도 중매인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이다. 홍어잡이 배가 한번 출어하면 사나흘 만에 항구로 돌아온다. 그러면 아침 7시 무렵에 흑산도 수협 공판장에서 경매가 이뤄진다. 경매에 참가하는 중매인은 16명 안팎이다. 중매인들은 낙찰받은 홍어를 일반 상인이나 음식점 주인들에게 수수료 3%를 붙여 넘긴다. 일반 소비자나 택배 주문자에게는 홍어를 손질하거나 삭혀서 5%의 수수료를 받고 공급한다. 즉 62만원에 낙찰된 홍어를 65만원 정도에 파는 셈이니, 큰 이익을 챙긴다고 할 것도 없다. 홍어 값이 비싸다 보니 중매인들은 5만원짜리 한 접시도 만들어 판다.



    8kg 넘는 상품 60만원 호가

    흑산도 홍어는 어획량이 적어서 전국 어느 음식점, 어느 미식가의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때문에 일반 수산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홍어는 모두 수입산 냉동 홍어라고 보면 된다. 수입산 냉동 홍어의 가격은 10만원대로, 흑산도 홍어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칠레나 뉴질랜드 홍어가 많았는데 이즈음에 중국산 홍어가 많이 늘었다. 흑산도 홍어와 수입산 홍어의 가장 큰 차이는, 흑산도 홍어는 부드러워서 껍질째 먹을 수 있는데 수입산 홍어는 거칠어서 껍질을 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홍어철이 돌아온다. 10월 하순부터 이듬해 봄 사이에 홍어가 흑산도 근해에서 산란을 하는데, 이때 잡힌 홍어를 최고로 친다. 이 가을, 붉은 홍어회든 걸쭉한 홍어탕이든 막걸리를 곁들인 홍탁삼합이든 제 몸을 삭힌 홍어로 속 한번 시원하게 풀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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