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커버스토리 | 박근혜의 착각

유리해 보인다고 유리한 것은 아니다

최순실 쓰나미, ‘문재인 대세론’으로 가나

  • 유창선 정치평론가 yucs1@hanmail.net

    입력2016-11-04 17: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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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케인급 최순실 태풍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이 강력한 태풍의 영향력은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을 넘어 내년 대통령선거(대선) 구도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지금이 내년 대선을 1년 1개월여 남겨놓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가 거세지면서 상황에 따라서는 조기 대선을 치를 수도 있는 정국이다.



    정권교체 가능성 높아져

    그동안 야당은 박 대통령의 탄핵이나 하야 요구와는 선을 그으면서 내년 대선을 질서 있게 치르는 경로를 우선시했다. 별도 특검을 통한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 규명, 이를 위한 대통령 직접 조사, 대통령의 전권 이양을 조건으로 거국내각이 성사된다면 박 대통령의 임기는 보장하면서 예정대로 대선을 치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자기 주도로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를 내정하면서 야권 대선주자들이 앞장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제는 대통령의 기본 권한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박 대통령과 그의 하야를 요구하는 야권 및 여론 사이의 힘겨루기 추이에 따라 정치 일정이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제 대선까지 길은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하고 전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우여곡절을 거치든 당초 예정대로 내년 12월 대선을 치르는 경우, 그리고 박 대통령의 하야로 조기 대선을 치르는 경우가 그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야당이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룰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10월 31일 내일신문-디오피니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9.2%로까지 추락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선거보도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이와 동시에 새누리당도 지지율 1위 자리를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게 내준 채 계속 추락하고 있다.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의 연루가 드러날수록 대통령의 책임론은 부각될 테고,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에게 내놓는 답이 미흡할 경우 지지율 바닥이 어디까지일지는 점치기 어렵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당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명박 대세론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듯, 대통령 지지율이 이 지경이 되면 집권여당의 패색이 짙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친박(친박근혜)계가 대선후보로 밀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고, 반 총장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나설 이유가 없다. 현재 여당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고 여당에 확실한 대선후보도 없는 만큼 야당 내에서는 집권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실제로 이미 여러 여론조사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야권 대선주자의 약진으로 연결되고 있음이 나타난다. 문화일보-엠브레인이 10월 29~30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3자 가상 대결에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36.0%,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34.2%,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17.7% 지지율로 나타났다. 줄곧 반 총장에게 뒤지던 문 전 대표가 오차범위 안에서 역전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문 전 대표는 특히 반 총장과 양자 대결에서 46.3% 대 37.9%로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대표는 반 총장과 양자 대결에서 37.9% 대 39.1%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여러 여론조사는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최순실 게이트 파문의 최대 수혜자가 문 전 대표임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현 상황을 대통령이 언제 하야할지 모르는 비상시국으로 인식하는 국민이 우선적으로 제1야당의 가장 유력한 주자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정당의 전체적 용량을 감안하면서 대안세력을 판단하려는 심리가 생겨나게 되고, 안정적으로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생각에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나타난다. 특히 박 대통령의 하야로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현 흐름을 타고 문 전 대표가 집권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각 당이 초스피드로 후보를 선출하더라도 짧은 일정 속에서 다른 대선주자들이 현 판세를 뒤집을 만한 변곡점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은 대선을 치를 채비조차 못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고, 야권의 다른 대선주자들도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때 문재인 대세론이 공고화할 공산이 크다. 단기간 내 치러야 하는 선거는 그 결과가 바람에 좌우되기 쉽기 때문이다.



    탄력받는 ‘문재인 대세론’

    하지만 예정대로 내년 12월 대선을 치를 경우 남은 1년 1개월이 제법 긴 시간이 될 수 있다. 물론 야당은 전에 없이 유리한 환경에서 대선을 맞겠지만, 이 기간 전과는 다른 책임도 동시에 떠안게 된다. 박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된 상태에서 국민은 야당세력이 대안세력으로 신뢰할 만한지 시간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만일 이 기간 국정 혼란이 심화하고 야당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되면 야당의 절대적 우위 국면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이제 막 문 전 대표와 경쟁하려던 다른 대선주자들은 최순실 유탄을 맞은 격이다. 대선후보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발동을 건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민주당 내 주자들은 추격전을 벌일 공간이 사라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이 돼 이들의 움직임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고, 이런 비상시국에 후보 경쟁이라도 벌인다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어 그조차 여의치 않다. 그 대신 이재명 시장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가장 먼저 요구한 데 이어 박원순 시장도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하야 요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문 전 대표와 차별성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당과 제3지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안철수 전 대표는 4·13 총선 때 보여준 약진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채 당과 함께 지지율이 하락한 상태였다. 그래서 3자 구도 하에서 집권을 목표로 하는 안 전 대표는 일단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 연대해 상승 모멘텀을 만들어낸 후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을 다시 끌어들여 목표에 도달한다는 구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다. 손 전 고문과 통 큰 경선 과정이 필요하고, 다시 정국의 전면에 나서 명실상부한 3자 구도 복원도 이뤄야 한다. 그런데 최순실 쓰나미가 갑자기 닥치는 바람에 단계를 밟아나갈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문재인 대세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평소 온건 노선으로 인식되던 안 전 대표가 민주당보다 앞서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물론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분노를 대변한다는 당위가 있겠지만, 박 대통령 하야 요구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이 국면이 끝나면 문 전 대표와 정권교체 대안을 가리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안 전 대표는 민주당에게 무게 중심이 실리고 있는 현 상황에 변화를 가져와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정계 복귀 선언을 하자마자 최순실 쓰나미를 맞은 손학규 전 고문은 유탄이 아닌 직격탄을 맞은 격이다. 정계 복귀와 함께 적극적인 행보로 지지기반을 구축해야 할 시점에 ‘제7공화국’이라는 화두를 포함해 모든 것이 덮여버렸다. 대선주자로서 그의 행보는 그만큼 미뤄지게 됐다. 당초 기대했던 세력 확보 작업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반사이익’ 효과는 언제까지?

    그러면 민주당과 문 전 대표는 차기 집권을 장담해도 좋은 상황일까. 아직은 성급한 판단이다. 최종 승부를 가릴 몇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먼저 여권의 재편 가능성이다. 일단 새누리당 간판으로는 대선 승리가 가능한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만약 새누리당에서 친박계가 물러나고 비박(비박근혜)계가 당권을 쥐는 상황이 된다면 당 이름을 바꾸고 당내 대대적인 신장개업 공사도 진행할 것이다. 그렇게 친박계의 흔적을 지우고 박 대통령까지 탈당하게 만들어 새로운 보수 정당이 된 뒤 반기문-김무성-유승민 등이 경선을 치러 최종 대선후보를 결정한다면 야당은 그 힘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만은 없을 테다. 물론 친박계가 당권을 끝까지 놓지 않을 경우 비박계는 분당과 신당 창당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정치세력 간 이합집산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판을 흔드는 변수가 될 개연성도 있다. 새로운 조합과 연대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요동치는 판에서 대선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문 전 대표가 대세론을 믿고 안주하기에는 리더십 검증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는 정국 고비 때마다 종종 불안한 리더십을 드러내곤 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도 거국내각을 가장 먼저, 그것도 가장 강력하게 요구했다 막상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하자 다시 거부하는 모습이 돼버려 자신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스텝까지 꼬이고 말았다. 국민의 분노는 분출되는 데 지도자로서 결기하는 모습 없이, 대세론에 안주한 채 상황 관리만 하려 한다는 비판이 야권 지지층 내에서도 많다. 야권 내 부동의 선두주자임에도 여전히 유권자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분명히 나뉜다. 지금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거부감이 문 전 대표에게 반사이익을 안기고 있지만, 자기 힘으로 얻은 선두 자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뿌리가 깊은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에서 이탈하는 층이 문재인 정치를 더 지켜본 후 내년 12월 20일 문재인 후보를 찍을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여권 세력의 몰락은 야권의 각 세력과 인물을 새롭게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19대 대선의 최종 승자를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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