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6

2005.10.18

한국 대표 미인 ‘연기의 맛’을 알았다

  • 입력2005-10-17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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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표 미인 ‘연기의 맛’을 알았다
    당신을 김희선처럼’. 간단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매우 자극적인 이 광고 문구를 중국 상하이에서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 김희선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안티팬이 많은 김희선이지만, 그녀가 미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30, 40대 세대의 대표 미인이 황신혜였다면 이제는 김희선인 것이다.

    10년이 지났다. 김희선이 대중 앞에 등장한 것은 1995년 TV 드라마 ‘아가사 크리스티’를 통해서였고, 그녀를 대중적으로 알린 것은 그해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바람의 아들’이었다. 이후 김희선은 승승장구, ‘머나먼 나라’ ‘목욕탕 집 남자들’ ‘웨딩드레스’ ‘프로포즈’ ‘미스터 Q’ ‘토마토’ ‘요조숙녀’ 등의 TV 드라마를 통해 부침 없이 자신의 아성을 구축했다.

    화려한 외모·솔직함이 만든 ‘안티’ 김희선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이광훈 감독의 ‘패자부활전’(1997년)에서 장동건의 상대역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 뒤로 송해성 감독의 ‘카라’(1999년), 이광훈 감독의 ‘자귀모’(1999년), 김영준 감독의 ‘비천무’(2000년),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2001년), 김정권 감독의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3년) 등을 찍었지만 대중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비천무’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는 연기력 부재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녀의 표피적인 연기는 시중의 놀림감이 되었다. 김희선 주연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예가 없다는 것은 그녀의 대중적 지명도에 비하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김희선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미모를 시기하고 싶은 본능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아름답다. 화려하다. 그러나 한국적 미인을 연상시키는 다소곳함과는 거리가 있다. 수수하면서도 내면에 간직한 아름다움이 언뜻언뜻 배어나오는 그런 미모가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움은 외향적이며 주변의 소음을 잠재울 정도로 광채를 발한다. 안티 김희선 집단은, 그녀가 토크쇼에 나와서 깔깔거리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지 않았다면 절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희선 같은 미인에게는 신비주의 전략이 필요했다.



    스크린에서의 김희선의 실패는, 깊이보다는 순간적인 감성을 요구하는 브라운관에 비해 훨씬 집중과 몰입을 요구하는 특성 때문이다. 그녀의 찰나적인 눈속임 연기에 관객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캐릭터의 몰입을 방해하는 화려한 외모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김희선 주연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비평적으로 관심을 모은 것은 ‘와니와 준하’뿐이다. 그때 ‘김희선이 달라졌다’는 말이 충무로에 쫙 퍼졌다.

    한국 대표 미인 ‘연기의 맛’을 알았다

    ‘와니와 준하’(위)와‘신화: 진시황릉의 비밀’.

    나도 개인적으로 ‘와니와 준하’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배우 김희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그녀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진작가 조세현과의 누드 파동을 막 겪은 뒤였다. 스스로 외부 세계와 단절했고, 올인하는 자세로 영화에 몰두했다. 연기는 정직하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다음 작품인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졸작이었고, 김희선의 연기 역시 울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꾸준히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대중의 시선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희선에게는 항상 많은 스캔들이 맴돈다. 그녀와 사귄다는 소문이 난 남자들은 대부분 연예인들이었고, 강남 일대의 카페나 바에서 그녀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목격담은 심심찮게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애주가다. 김희선이 술을 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녀는 술을 즐겨 마신다. 일찍 연예계에 데뷔한 뒤 긴장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그녀가 술을 가까이 한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20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는 술과 관련된 소문이 많이 줄어들었다.

    ‘친절한 청룽 씨’

    9월 말, 중국의 한 신문이 청룽(성룡)과 김희선의 스캔들을 보도했다.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 홍보 때문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청룽과 김희선은 중국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계에 초점이 모아졌다. 기사에 따르면 청룽은 ‘김희선에게 지나칠 정도의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었다’. 또 ‘청룽은 김희선이 어딜 가든 항상 안내와 통역을 자청했으며 영화의 성공 여부보다는 김희선과의 만남을 즐기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청룽과 김희선이 특별한 관계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국내에 보도되자, 김희선은 일갈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즉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니까 자꾸 이상하게 보이는 거지, 자신들은 절대 이상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정확한 내막을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남녀 관계이고, 중국 언론의 호기심 어린 기사가 단순히 그들을 악의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 혹은 가십을 생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중국 시사회가 끝난 뒤 그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신 것으로 전해졌다. 청룽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으며 김희선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김희선 측에서는, 청룽과 김희선은 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청룽은 예의 바른 젠틀맨이라는 것이다.

    9월23일 중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일제히 동시 개봉된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은 제작비 350억원을 들여 만든 대작이다. 개봉 첫 주말에만 중국에서 265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역대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대박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영화가 흐지부지 사라졌다면 가십거리 역시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고조선의 옥수 공주로서 조국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진시황의 후궁으로 들어온 김희선과, 진시황의 충실한 신하이자 그녀를 지키는 몽이 장군 역을 맡은 청룽은 이 영화의 주제곡 ‘무한한 사랑’을 함께 부르기도 한다.

    “개그맨이야, 김희선은.”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 촬영현장에서 청룽은 이렇게 김희선을 평가했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을 아주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나다는 청룽의 평가는 그만큼 그들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웃을 수는 없다. 특히 김희선 같은 배우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면 찬바람이 쌩쌩 돈다.

    ‘와니와 준하’를 비롯해서 김희선은 대부분 멜로 영화에 출연했다.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김희선은 이 영화에서 중국어로 대사를 하지만 더빙이다. 그러나 그녀의 등장은, 고조선 공주라는 설정 이외에는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처음에는 조국이 진나라에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정혼한 약혼자(최민수 분)의 가로막음을 뿌리치고 진으로 가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녀는 오직 몽이 장군만을 생각한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역사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고조선이 진의 속국이었다는 설정 자체가 기분 나쁘다.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은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의 야외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고, 청룽은 10월6일 한국에 도착해서 곧바로 부산으로 갔다. 김희선과 청룽은 7일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픈 시네마 상영으로 관객들과 만남을 갖고 8일에는 통영에서 열리는 통영예술제의 특별상영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그들은 1월 함께 통영의 문화관광 명예대사로 위촉되어 자선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에서 김희선은 확실히 달라져 있다. 중국어로 대사를 하면서도 감정의 굴곡 있는 표현이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서사적 전개에 있어서 한국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다면 상업 영화로서는 볼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 연기자 김희선으로 롱런할 수 있을 것인지는, 한국에서 촬영할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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