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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이민과 한국인의 재형성

  •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이민과 한국인의 재형성

이민과 한국인의 재형성
1987년은 한국 민주화의 원년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민의 방향이 바뀐 해이기도 했다. 그 해 이후 해외로 떠나는 한국인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대신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한국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합법적인 수입 여부를 저울질하다 ‘산업연수제도’를 채택했다. 산업연수제도는 불법체류·송출비리·인권침해라는 치명적 문제점을 파생시켰고, 대안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대안으로 2004년 8월 정부가 내놓은 게 고용허가제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노동력은 받아들이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막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고용허가제도와 산업연수제도 등 국내의 외국인력 제도는 ‘이민 제도’가 아니라 단기간 고용 후 내보내는 ‘이주노동자 제도’다. 그렇지만 이주노동자 개개인은 교체되더라도 집단 자체는 남게 된다.

한편 한국인과 결혼하여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수가 급증하고 있다. 2003년 국제결혼 건수는 2만5658건으로 전체 결혼 건수의 8.4%에 달했으며 최근엔 10%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결혼 비율이 10%라는 것은 결혼하는 한국인의 5%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인이 단일혈통이라는 신화를 버려야 할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지표다.

이 땅을 매력적인 삶의 터전으로 바꿔야

한국은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지만 이미 다수의 이주자들이 살고 있다. 연합은 ‘1년 이상의 의도적 체류를 동반한 국제적 이주’를 국제인구이동(international migration)으로 정의하고, 단기 취업을 위한 이주노동자 역시 이민자 범주에 포함했다. 이러한 UN의 정의에 의하면, 40만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20만명 가까이 되는 국제결혼 이민자를 안고 있는 한국은 이미 ‘사실상’의 이민을 받아들인 국가에 해당된다.



받아들이는 이민이 증가했지만, 보내는 이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모습과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국내의 취업난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해외로 눈을 돌리는 구직자들이 늘어난 것. 산업인력공단 통계에 따르면, 98년 13명에 그쳤던 해외 취업자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2004년 상반기에만 1242명이 외국으로 진출했다.

또 조기유학과 원정출산 열풍도 꺾이지 않고 있다. 영어가 만능인 사회에서, 교육 투자의 하나로 자식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느라 허리가 휘는 ‘기러기 아빠’가 적지 않다. 2004년 기러기 가족은 무려 5만명을 헤아리고, 드러난 유학비용만 2조원을 웃도는 실정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시민권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탁란(托卵·기생부화)하는 속임수도 서슴지 않는 ‘뻐꾸기 엄마’가 속출하고 있다. 원정출산이 낳는 사회적 폐해가 확산되자, 국회에서는 국적법을 개정해 병역을 마치기 전에는 한국 국적을 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개정 국적 패러다임을 고수하려는 자들의 몸부림이 요동치고 있는 것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가 주장한 ‘국가의 종말’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사례다.

전 지구적 경제가 실현되고 있지만, 국민국가의 위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좀더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로 삶의 거처를 옮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의 공업도시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서울의 변두리에서 강남으로, 다시 강남에서 제1세계 도시로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전 지구적 계급질서의 지정학적 배치와 일치하는 증거다.

경제적 전 지구화가 진행될수록 이민 대열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이 체결돼, 법률·의료·교육 부문의 시장 개방이 이뤄지고 회원국 간 해당 분야의 자격증을 상호 인정하게 되면 국제적인 노동력 이동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자연인의 단기 이동’을 허용하는 ‘모드-4’다. ‘모드-4’란 개인이 다른 나라로 직접 이동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결국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사회에서 그것을 가진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것은 노동정책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 이민정책으로 귀결돼야 한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원해서 이 나라에 살게끔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는 국민 재형성에 관한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한민족 네트워크 구축이 ‘순수혈통 한민족’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귀화한 이민자와 국내 거주 외국인도 포용해야 한다. 외국인과 이민자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만큼, 이 땅을 떠날 수 없거나 떠나지 않으려는 한국인들은 이제 이곳을 저개발국 출신의 외국인노동자뿐 아니라 이민을 떠났거나 떠나려는 한국인들에게도 매력적인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주간동아 2005.06.07 488호 (p92~92)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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