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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두 기업의 ‘원초적 고민’

상당수 기업 인수·합병 ‘후유증’ … 노사 갈등·직원 간 마음의 벽·문화 차이 극복 힘들어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한 지붕 두 기업의 ‘원초적 고민’

한 지붕 두 기업의 ‘원초적 고민’

2004년 7월6일 씨티은행과의 합병에 반대해 파업 중이던 한미은행 노조원들이 업무 복귀를 설득하는 사 측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2등 직원’이죠. 소속감도 엷어졌어요. 자기 살 걱정이 앞서 자꾸 눈치만 보게 되고요.”(인수된 한 기업의 노조 부위원장 A씨)

“우리도 싫습니다. 오히려 저쪽 부실만 떠안은 꼴이잖아요. 승진 기회도 줄어들고. 우리끼리도 잘할 수 있는데 왜 인수했는지 모르겠습니다.”(모 인수 기업 과장 B씨)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날로 활성화하고 있다. 그러나 M&A 후 양사 간 통합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기업이 적지 않은 실정. A씨와 B씨의 말에는 통합 기업 직원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의 일단이 담겨 있다.

M&A 시장이 활성화한 가장 큰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투자 여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새 성장동력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 계열사 등 정상화된 과거 부실 기업들이 속속 매물로 나오는 데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릿지 등 해외 투자 펀드들의 지분 의무보유 기간이 끝나가고 있는 것 또한 한 요인이다.

M&A 뒤 회사 가치 상승은 17%뿐



금융권은 최근 몇 년간 M&A가 가장 활발히 진행된 산업군. 그외 두산그룹의 고려산업개발·대우종기 인수, 대한전선의 쌍방울 인수, 롯데그룹의 KP케미칼 인수,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 등이 최근에 이루어진 대표적 사례다. M&A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해서, 2004년 세계의 기업 간 M&A 성사 규모는 1조8000억 달러로 전년보다 40%나 증가했다.

하지만 M&A ‘거래’ 성공이 곧 ‘M&A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LG경제연구원 박천규 연구원은 “KPMG 연구 결과를 보면 M&A로 회사 가치가 상승한 경우는 전체 사례 중 겨우 17%에 그친다. 53%는 오히려 하락했다. 실패 사례의 70%는 통합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소개했다. M&A의 성과는 전적으로 ‘합병 후 통합 수행과정(PMI, Post Merger Integration)’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송경섭 상무는 “단순히 실적이 오르고 통합 기업의 주가가 올랐다는 것만으로 ‘성공’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현대캐피탈과 GE캐피탈의 경우 통합 후 두 회사가 끌고 오던 순손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바람에 순이익이 뚝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한 M&A’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한 지붕 두 기업의 ‘원초적 고민’

2003년 6월22일 신한-조흥은행 간 합병 합의문 서명식을 마친 후 악수를 하고 있는 허흥진 당시 조흥은행 노조위원장(맨 오른쪽)과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성공적 PMI의 전제조건은 목표에 꼭 맞는, 제대로 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어 비전·전략의 통합, 리더십 및 조직문화 및 인적 통합 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엔 수많은 난관이 있다. 노사 갈등, 양사 간 임금 및 직급체계 차이로 인한 문제, 문화 차로 인한 직원 간 융합의 어려움 등. M&A로 탄생한 몇몇 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다.

3월7일, 창립 108주년 기념식을 실력 저지했다는 등의 이유로 피소된 조흥은행 노조 간부 2명이 구속 수감됐다. 윤태수 위원장은 도피 중이다. 조흥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매각된 것은 2003년 6월. 이후 강도를 더해온 양사 간, 노사 간 갈등이 폭발 지점에 이른 것이다.

피인수 기업인 조흥은행 노조는 “2월 말 전체 직원 6200명 중 480여명이 명예퇴직을 당했다. 직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수기업 측인 신한은행 노조 관계자는 “두 은행 간 경쟁력 차이가 현저한 상황에서 조흥은행 노조의 태도는 지나친 감이 있다”고 주장한다. “신한은행은 은행권에서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높은 은행이다. 조흥은행은 최하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조흥 측은 ‘신한과 대등한 임금’을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 어차피 ‘한 회사’로 가야 한다면 조흥은행 측도 그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 통합 기업도 이질적 문화 ‘고심’



신한은행 직원들의 이 같은 정서는 급기야 “도대체 왜 조흥은행을 인수했느냐”는 불만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22년이란 짧은 역사에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해온 만큼 고생도 많았고 보상에 대한 욕구도 강하다. 그런데 조흥은행 인수로 오히려 인사상 불이익이나 성장 둔화 등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두 은행 간 합병은 신한지주 주주들만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냉소적 결론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M&A가 생산성 증진이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재정 상황만 고려한 것으로 비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한다. 신한-조흥 사례처럼 완전 통합까지의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는 것도 좋지 않다. 그 사이 온갖 문제들이 불거져나옴으로써 리더십이 흔들리고 이해 당사자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조흥 은행의 경우 거래 당시 조흥은행 노조의 요구에 따라 3년의 통합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한편 신한지주 측은 “양사 간 통합은 ‘대등 통합’도 ‘흡수 통합’도 아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뉴 뱅크’로 거듭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신한은행 통합관리팀 이영종 차장은 “중요한 것은 노조가 아니라 직원들이다. 뉴 뱅크가 탄생하면 양사 직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신한-조흥 은행 간 통합이 은행권 M&A에서 유독 문제 많은 사례인 것은 아니다. 시티-한미 은행, 국민-주택 은행,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등도 저마다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M&A 전문가들이나 PMI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 인사들도 “우리나라 은행권 합병 중 아직까지 모범사례라 할 만한 것은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한 외국계 투자 은행의 M&A 전문가는 “많은 통합 기업이 여전히 2개 이상의 노조를 갖고 있으며, 양사 출신 직원 간 반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M&A 및 PMI 컨설팅 전문가인 엑센추어 이석근 파트너는 “예를 들어 국민은행-장기신용은행 합병의 경우 장기신용은행 쪽 인력이 우수해 큰 시너지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장기신용은행 인력의 50%를 차지하는 남성 직원 중 절반이 회사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주택 은행 합병도 M&A 당시 국민은행이 제시한 자료에 비춰보면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는 형편”이라는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비교적 성공적인 통합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 기업들의 상황은 어떨까.

두산산업개발은 지난해 5월, 두산건설이 고려산업개발(이하 고려산업)을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M&A 당시 고려산업 노조는 “두산건설의 목표는 오직 620.5%에 달하는 부채 비율을 낮추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당시 고려산업의 부채비율은 35.4%였다.

통합 후 1년여가 지난 지금, 회사는 평온을 찾은 상태다. 회사 내 4개 노조 중 하나인 구(舊) 고려산업 노조 관계자는 “회사 전체로 보면 합병 당시보다 주가가 3배 가까이 오르는 등 성공적인 M&A였던 셈”이라면서도 “양사 직원 간 ‘마음의 벽’은 합병 초기 구성원들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두 회사 간 문화가 너무 다르다. 고려산업이 ‘현장 중심’이었다면, 두산은 본사 중심이다. 때문에 현장 인력들의 자율성이나 역량 발휘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또 누군가 의욕적으로 일을 진행하려 하면 ‘저 친구 왜 나서냐’는 말이 돌아온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한쪽 문화가 더 우월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무엇보다 인수기업이 두산인 만큼 그쪽을 따라가는 게 자연스럽다”면서도 “부채비율을 낮추고 주가를 높이는 것 외에 어떤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은 “고려산업의 강점을 살려달라”고 주문하지만 실제로는 문제 제기조차 쉽지 않다.

비슷한 고민은 기아자동차 직원들에게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기아차 합병은 종종 성공적 M&A의 모범사례로 꼽히곤 한다. 현대차 측도 “양사의 브랜드와 강점은 유지하되 구매, 연구개발, 플랫폼 등 합병 시너지가 날 만한 부분은 신속하게 통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기아차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 기아차 출신 연구원은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초기엔 ‘너희는 망한 회사 출신들’이라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현대차 사람들은 또 ‘점령군’이니 그렇다 치고, 기아차 출신이면서 저쪽에 바로 줄서기 해버리는 임원들이 더 밉더라”고 했다. 그는 “이제 기아 고유의 색깔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현대 측이 요즘 새삼스레 ‘기아만의 문화를 창출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구매 등 전 분야에서 ‘범 현대가’의 이익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 또한 피곤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기업들 융합 위해 지혜 짜기 ‘안간힘’

올 초 해태제과를 합병한 크라운제과의 경우는 ‘오너 가족 챙기기’가 도를 넘어선 경우. 크라운제과 윤영달 사장이 해태제과 사장을 겸임하는 것은 물론, 사위 신정훈 씨를 해태제과 재경본부장(상무급)에, 부인 육명희 씨를 고문 자리에 앉혔다. 애초 윤 사장은 사위 신 씨를 공동대표이사로 삼을 예정이었으나 이사회 반대로 취소했다. 또 한때 고용승계 약속을 파기하고 200여명을 정리 해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 까닭에 최근 M&A에 성공한 기업들은 성공적인 PMI 수행을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형편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행보. 설날을 앞두고 쌍용차 임직원에게 후마오위앤 사장이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한마음 격려금’이라는 명목으로 1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특별보너스를 지급했다. 3월 말 한투증권 인수를 앞두고 있는 동원금융지주의 김남구 대표는 “인위적 구조조정이나 임원급 인사 이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이석근 파트너는 “우리나라는 시장이 좁아 동종 업계 기업의 경우 고객 중복이 심하다. 그런 만큼 두 회사를 합친다 해서 그만큼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결국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진단했다.

LG경제연구원의 감덕식 연구원은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성공적인 PMI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팬택&큐리텔은 연구개발력 강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이 아니라, 오히려 급여를 30%가량 인상하는 방식으로 핵심 인력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M&A의 본질적 성공률이 높지 않은 것은 ‘책임 경영’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고 주장한다. 이석근 파트너는 “보통 합병을 하게 되면 PMI 100일 계획 같은 걸 짜 실행하게 된다. 이를 외부 전문인력에 맡기지 않고 내부 인사가 맡을 경우 진행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통합 직후 벌어지는 분란과 논란은 전문가들에게 맡겨 재빨리 해결한 뒤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인 마이클 트램이 자신의 저서 ‘합병 그 이후’에서 “통합의 리더는 확고한 비전을 만들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주간동아 2005.04.05 479호 (p28~30)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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