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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진성당원의 두 얼굴

정치혁명인가 목소리 큰 소수인가

진성당원 기존 정치 바꾸는 ‘뉴파워 그룹’으로 등장 … 판단 서툴고 격정적 모습 ‘흠 아닌 흠’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정치혁명인가 목소리 큰 소수인가

정치혁명인가 목소리 큰 소수인가

3월19일 충남 연기군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충남도당 대의원대회에서 열린우리당 당권 주자 8명이 인사를 하고 있다. 김두관·염동연·문희상·김원웅 후보, 정세균 원내대표·장영달·송영길·유시민·한명숙 후보(왼쪽부터).

3월13일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광주시당 위원장을 뽑는 경선장. 당 지도부와 언론은 이날 김태홍, 양형일 의원 등 두 명의 현역을 주시했다. 특히 재선인 김 의원의 정치력에 무게를 뒀다. 현역에게 도전장을 던진 김재균 북구청장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결과는 의외였다. 김 구청장이 재선인 김 의원을 제치고 승리한 것.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 수개월 동안 ‘밑바닥’을 다진 김 구청장의 노력을 이른바 진성(기간)당원들이 평가해준 것.

이변은 연달아 일어났다. 같은 날 목포에서 치러진 전남도지부 위원장 및 전남지역 중앙위원 경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유선호 의원이 지부장으로 당선된 이날 경선에서 이영호, 장복심 의원 등 현역 의원이 진성당원들한테서 심한 푸대접을 받은 것. 장 의원은 10명이 출마, 4명의 중앙위원을 뽑는 이날 경선에서 6위를 기록, 같은 여성으로 원외의 국영애 씨에게 중앙위원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영호 의원도 최하위권인 8위에 그쳐 체면을 구겼다. 전남의 이변도 중앙당과 현역 의원 일부들만 몰랐을 뿐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그 중심에 진성당원이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방주의적 의사 구조 거부 자신들 의견 적극 개진

기존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진성당원은 정치 마니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뉴파워 그룹으로 등장한 진성당원이 우리당 경선을 매개로 정치문화에 변혁을 몰고 오고 있다. 매달 2000원 이상 돈을 내는 그들은 당의 주인을 자처한다. 수직적 서열과 정당의 일방주의적 의사 구조를 거부하고 매사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이들은 1인 혹은 소수의 당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던 권위주의적 정당 시대를 거부한다. 임채정 당의장은 진성당원을 향해 ‘열린우리당의 제1대 당주’라고 불렀다. 민노당은 진성당원, 우리당은 기간당원, 한나라당은 책임당원으로,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지만 성격은 유사하다.

진성당원은 우리당의 이번 경선에 변화 바람을 몰고 온 주역이다. 문희상 대세론을 위협, 판을 흔드는가 하면 유시민, 김두관 후보의 비상을 유도, 끝없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진성당원만을 동원한 당 차원의 선거는 이번이 처음인 우리당 내부에서는 진성당원이 이끌 정치 실험의 끝이 어딜지 묘한 흥분과 긴장감이 교차한다. 이에 아랑곳 않고 진성당원은 기존의 흐름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경선 드라마를 엮고 있다.



당초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 전국정당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로 통했다. 그렇지만 우리당은 3월 말 현재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선에 참여한 진성당원은 22만여명. 2004년 10월부터 급작스럽게 만든 흔적이 있긴 하지만 외형상 나무랄 데가 없다.

우리당이 진성당원에게 부여한 권한은 막강하다. 당원 가운데 선출된 대의원들이 당을 대표하는 의장은 물론 대통령 후보를 직접 뽑는다. 명실상부한 당내 최대 권력이다. 이를 토대로 진성당원은 당내 파워그룹으로 부상했고 이를 통해 당 운영의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말없는 다수 흔든다’는 우려 목소리도 터져나와

대표적인 예가 국민참여연대(국참련). 노사모가 주축이 된 이들은 ‘정당을 당원에게, 권력을 국민에게’란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이들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제휴해 세를 불려나가자 현역 의원 30여명도 가입했다. 개혁당을 중심으로 한 참여정치연구회(참정련)도 같은 논리로 주도권을 쥐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은 유시민, 김두관 후보에게 몰표를 줘 ‘진성당원의 반란’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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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당원들의 달라진 위상은 경선 분위기에 변화를 몰고 온다. 당장 지구당위원장 포섭을 통해 지지 대의원을 확보하던 풍경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오히려 성향이 비슷한 대의원들끼리 세를 모아 “우리 요구를 들어주면 지지하겠다”며 역제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당원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후보들을 줄 세우거나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반대 현상이다.

당권파로 알려진 우리당 K 의원은 3월 초, 지구당 당원들과 담소 시간을 가지면서 특정인에 대한 지지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러자 앞에 앉은 한 당원이 “그 말에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반박,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말이다.

“대의원 스스로가 선출된 데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진다. 그 자부심은 독립성으로 연결돼 과거처럼 ‘누구를 찍어라’는 부당한 지시가 먹히지 않는다.”

4월2일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당 관계자들은 모두 K 의원의 얘기에 공감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의원이 지명한 사람이 대의원이 됐을 때도 40%는 의원의 뜻과는 다른 소신 투표를 했다”며 “이번에는 이탈자가 최소한 그 배는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영달 의원도 3월23일 “지역구 의원이 미는 후보라고 무조건 한 표를 줄 대의원은 절반도 안 될 것”이라며 “조직선거를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볼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선거 패턴은 상층부가 아닌 대의원을 직접 공략하는 밑바닥 훑기가 대세를 이룬다. 당락은 물론 순위 결정에 결정적 변수로 여겨지던 후보자 간 연대 움직임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중도 성향의 재선 단일후보라는 상징성 때문에 각 진영에서 러브 콜이 잇따랐던 송영길 의원 측은 “시킨다고 따를 표가 별로 없는 판에 연대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역구로 내려가도 이런 현상은 발생한다. 진성당원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구성된 당원협의회장은 기성 정치권을 견제하는 선봉이다. 총선에서 우리당이 의석을 독식한 서울 노원구의 경우 국회의원 수가 3명이지만 지역 당원협의회장은 1명이다. 이 지역 당원협의회장은 3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지역 문제를 논의한다. 우리당 노원구 한 관계자는 “현역 의원들이 ‘나는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다가 지역구 내 경쟁자가 2006년 지방선거 후보 선출 등을 좌지우지해버릴 수 있다”며 긴장한다.

진성당원의 힘은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의 ‘당원 게시판’을 통해서도 발휘된다. 당내 여론은 이 게시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의식해 중진들도 직접 글을 올리는 연쇄 파급효과가 동반된다. 당의장 경선에 출마한 유시민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게서 왕따를 당하는 것도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한 진성당원에 대한 견제심리의 발동으로 볼 수 있다. 유 후보는 당초 후보 단일화 카드를 옆구리에 차고 경선에 참여했을 만큼 풀코스 완주 의지가 약했다. 그런 그가 빅2와 빅3를 오가며 당의장까지 바라본다. 그의 부상에는 개혁당 세력을 중심으로 한 30%의 지지세력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는 진성당원의 한계이자 문제점으로 인식되는 배경이다. ‘목소리 큰’ 소수가 ‘말없는’ 다수를 흔든다는 우려다. 이번 경선에 출마한 한 후보의 측근은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당 이름이나 계파 위주로 모인 진성당원들이 특정 후보에 매몰되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고 말했다.

‘3김(金) 정치’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할 대안으로 등장했지만 아직 완전한 모습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정치적 판단이 서툴고 때로는 격정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진성당원제를 처음 도입한 우리당은 당비 납부에 부담을 느낀 당원들 때문에 이번 경선에 한해 ‘변칙’으로 진성당원을 모집했다. 이번 전당대회에 한해 당비 납부 약정만 하면 곧바로 당원 자격을 주는 예외 규정을 둔 것. 때문에 당비를 내겠다고 약속해 선거에 참가한 뒤 당비를 납부하지 않는 ‘가짜 당원’이 적지 않다. 여기에 변칙과 반칙이 끼여들 여지가 있는 것. 이에 비해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의 진성당원들은 매우 적극적이다. 2000년 창당 때부터 민노당의 밑바탕을 형성했던 이들은 당의 중심세력으로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진성당원제가 과연 최선의 제도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진성당원제는 지나치게 당원이 주인 되는 주장만 강조되어 실제 ‘국민’이 설 자리가 없다. 2002년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를 뽑는 경선을 ‘국민참여경선’이라 이름 붙이고 50%(100만)의 일반 국민을 동참시켰다. 당시 민주당 경선은 국민적 축제로 자리잡았고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경선에 우리당은 국민을 배제시켰다. 당내 행사인 만큼 정치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들만의 리그’라는 지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은 강재섭 원내대표를 뽑은 경선에서 20%의 인터넷 여론을 반영하는 차선의 선택을 택했다.

승리지상주의 앞에선 한없이 초라한 모습

이 고민을 확대하면 정기적으로 당비를 내는 유럽형 기간당원 중심 정당으로 갈지, 아니면 당원의 범위를 넓혀 미국식 대중정당으로 갈지에 대한 행보의 정리로 이어진다. 기간당원 중심 정당을 지지했던 우리당의 한 인사는 최근 “기간당원제를 주도적으로 주장해왔지만, 날이 갈수록 진성당원제의 한계가 보인다”고 말했다. 몸통만 있고 뿌리는 없는 정당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성당원의 역할과 기능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것은 하향식 공천이다. 열린우리당이 오는 4월30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의 충남 아산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중부권 신당’ 창당 논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명수 전 충남부지사를 영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 경선을 치르지 않기로 한 배경에는 최근 일고 있는 신당 바람에 대한 부담이 자리한 듯. 한마디로 ‘이기는’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승리지상주의 앞에서 진성당원의 위상은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당원협의회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지구당이 변형된 형태로 부활된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당초 당원협의회를 만든 것은 자발적인 입당 의지를 가진 당원들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실제 지역에서는 예비 후보들의 동원경쟁 수단으로 변질돼버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두관 후보의 한 측근은 “지구당 폐지라는 방향 설정은 정확했지만, 정치권 체질은 개선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성당원 모집을 총괄하고 있는 최규성 사무처장은 이런 고민에 할 말이 있는 표정이다. 그는 “나무를 보기보다 숲을 보라”고 말했다. 그의 한 측근은 “기간당원제도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며 “지금은 과거와 미래가 혼재돼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을 것”이란 낙관론을 편다. 이 측근은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들이 계좌를 만들어 진성당원의 당비를 내는 일이 언제까지 가능하겠느냐”며 시간이 지나면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4.05 479호 (p14~16)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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