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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삼나무 꽃가루 ‘도쿄 대공습’

콧물·재채기 등 화분증 주의보 발령 … 마스크 착용·외출 자제 심각한 사회문제

  •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hanscho@donga.com

삼나무 꽃가루 ‘도쿄 대공습’

‘자연의 복수’인가. 산림 생태계를 무시하고 줄 맞춰 심었던 나무가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나무 심기’를 애국활동으로 떠받든 것은 한국뿐 아니라 패전 직후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그리고 곧게 자라는 경제림으로 선정된 삼(森)나무가 일본 열도 전역에 심어졌다. 산림자원 육성과 동시에 극심한 실업난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정책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적어도 그때는 누구나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30∼40년의 세월이 지나 인공 조림한 삼나무가 자라면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매년 봄철마다 눈보라처럼 꽃가루를 날려보내는 것. 꽃가루에 의한 각종 알레르기 증세, 즉 화분증(花粉症)에 일본 전체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약 2000만명이 시달리고 있다. 이는 8년 전과 비교할 때 1.5배에 달하는 수치다. 화분증 환자의 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폭이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 이상고온 사상 최악 꽃가루

콧물, 재채기, 눈물, 눈 가려움증, 목 아픔, 발진, 두통…. 화분증 증상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물론 삼나무만 꽃가루를 날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사회문제가 된 화분증 환자의 태반은 삼나무 꽃가루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카훈쇼(화분증)’를 언급할 때 곧바로 ‘스기(삼나무)’를 연상한다.



3월 들어서면서부터 도쿄 시내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유행성 독감 때문인가 싶지만 실은 화분증 탓이다. 안경 위에 고글을 끼어 이중 안경을 만든 사람도 보인다. 그만큼 화분증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동네 약국에는 화분증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각종 마스크, 약 등이 즐비하다. 집안의 꽃가루를 잡아주는 기능을 갖춘 공기정화기가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다. 언론매체에는 ‘증세가 심한 사람은 예방접종을 해두는 게 좋다’는 안내 기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생선을 많이 먹으면 좋다는 기사도 보인다.

더욱이 올해는 사상 최악의 삼나무 꽃가루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여름 일본 전국은 찜통더위로 고생했는데, 당시 넘쳐났던 일조량이 삼나무의 꽃가루를 예년보다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낸 것이다.

3월8일과 9일 도쿄 일대 관동지방 남부와 규슈 등지에는 화분 주의보가 발령됐다. 비영리 시민단체인 ‘화분정보협회’에 따르면, 이 일대의 비산량(飛散量)은 1cm2당 100개가 넘는 극심한 상태다. 화분증 환자는 꽃가루 비산량이 하루 30개를 넘어서면 콧물, 재채기, 콧속 염증, 두통 등 각종 증상을 보인다.

신문에는 꽃가루 비산량의 과다를 나타내는 지도도 실렸다. 덴쓰(電通)빌딩 46층에서 내려다본 도쿄 하늘은 뿌옇다. 황사가 아닌 꽃가루 때문이란 사실이 놀랍다. 식당에서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 언제 꽃가루가 이렇게 묻었나 믿어지지 않을 만큼 노랗게 묻어난다.

꽃가루의 대공습 시기는 해마다 날씨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대개는 2월 중순에 시작돼 3월 초순 절정을 이루다 4월까지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겨울철 포근한 날이 계속되면 꽃가루 비산이 일찍 시작된다.

꽃가루는 도심부보다 산간부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화분증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도쿄에 인접한 하초지(八王子)시의 경우 지난봄에 비해 꽃가루 비산량이 무려 65배에 이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사실 지난봄은 화분증 알레르기를 않는 이들에게는 행운의 계절이었다. 비산량이 과거 10년 중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2003년 여름에 이상저온 현상이 심해 삼나무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아 꽃가루 비산량도 현저히 줄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 이상고온 때문에 지난해보다 평균 30배의 꽃가루 공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화분증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도 도쿄 생활을 몇 년 하면 상당수가 화분증으로 고생한다. 재일 한국인 사이에서는 화분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보면 “어이구, 자네도 이제 일본 생활 꽤 했군”이라는 농담을 건넨다. 화분증은 일본이 인정하는 달갑지 않은 ‘주민등록증’인 셈이다. 봄철 도쿄 등지로 일본 여행을 생각한다면 화분증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삼나무 꽃가루의 비산량이 특히 많은 때는 정오 전후한 시각과 일몰 직후로 알려져 있다. 화분증이 심한 사람은 가급적 이 무렵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간단한 약물요법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가장 많이 쓰이는 약물요법은 히스타민 방출로 일어나는 알레르기 증상을 억제하는 항히스타민제이다.

인체는 몸 안에 들어온 이물질(항원)을 일단 ‘적’으로 판단해 이에 대응하기 위한 물질(항체)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면역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반응이 지나치면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난다. 화분증의 경우 코의 점막에서 히스타민이 방출되면서 콧물, 재채기 등 증상을 일으킨다. 예전엔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몹시 졸리곤 했는데, 최근에는 졸음기를 줄인 약도 나왔다. 효과를 보려면 꽃가루가 본격적으로 날리기 2주일 전부터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혼합림 조성 등 ‘뒷동산 살리기’ 운동

하지만 깜박 졸다가 큰일을 낼 수 있는 열차 기관사나 약물 투여에 조심해야 할 임산부는 항히스타민제 복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코의 점막을 레이저로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코의 점막이 과잉반응하지 못하게 레이저를 이용해 태우는 방법이다. 하지만 효과를 보기까지 수년 걸리는 데다 근본적 치료는 못 된다.

일본 산림 당국은 삼나무 꽃가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삼나무 중에서도 특별히 꽃가루를 많이 날리는 나무를 골라 제거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는 삼나무 단일 수종의 숲을 조림 이전의 혼합림으로 되돌려놓자는 ‘뒷동산 살리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산을 오르다 삼나무 조림지역을 바라보면 죽은 산처럼 느껴진다. 키만 멀쩡하게 큰 나무만 보일 뿐 그곳에는 새 울음소리도, 꽃도, 벌도 없다. 숲에 날짐승의 먹이가 서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선 맞은편 잡목림은 보기만 해도 포근하다. 풀과 나무와 꽃들이 우거져 있다. 누가 이 잡목림을 쓸모없는 산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시대에 따라 숲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현재 조림지역 대부분은 산림 도로 개설이 이뤄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태풍이라도 불면 우르르 넘어지고, 그늘에 잡목이 자라지 못해 지반이 약한 탓에 산사태도 잦다. 목재 값도 싸서 비싼 인력을 써서 손질해봐야 본전도 못 건진다. 고령화로 임업 종사자도 격감하고 있다. 언젠가 쓰일 가능성은 물론 있지만 현재 상태만 보면 ‘쓸모없는’ 조림을 한 셈이다.

미에(三重)현은 2001년부터 내버려진 사유림을 소유주 동의 아래 예전 식생으로 돌려놓기 위해 전액 공공비용으로 ‘환경림 정비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인공림의 약 절반을 간벌해 나무 간격을 3∼5m로 넓혀 햇볕이 들게 함으로써 풀과 잡목이 자라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미에현은 20여년 동안 이들 사유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삼나무 등을 계속 제거해나갈 계획이다. 파헤친숲을 원래대로 돌려놓기보다 쉬운 일이라고 하지만 삼나무 인공조림 숲을 복원하는 일은 무척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 종류의 나무만 잔뜩 심어놓은 단일림의 폐해. 숲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해주는 인간사회는 생태계의 자연스런 흐름이 낳은 잡목림처럼 획일적 사회, 단일림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아름답지 않나 싶다.



주간동아 2005.03.22 477호 (p54~55)

도쿄=조헌주 동아일보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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