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커버스토리 | 중국산 농수산물, 북한산으로 둔갑

“北韓 민경련 조직적 외화벌이”

가짜 원산지증명서 발급 실질적인 개입 … 허술한 승인 사후관리 절차 엉망 피해 키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北韓 민경련 조직적 외화벌이”

“北韓 민경련 조직적 외화벌이”
한국은 북한의 주요 교역 상대다. 남북 경제교류의 확대는 통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의 수단으로 교역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남북 경제교류의 실상을 보면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피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악취’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대남 경제교류 창구인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이하 민경련)가 무역업자들에게 허위로 ‘북한산’이라는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주는가 하면, 한국의 통일부는 허술하게 북한 물품 반입 승인을 해주고 사후 검증에도 소홀했다.

통일부 담당자가 위장 반입 업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전보 조치되기도 했다. 북한산 농산물 반입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원산지증명서가 거래된다” 북측의 개입 없이는 가짜 원산지증명서 발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2003년 7월 북한과 ‘남북 사이에 거래되는 물품의 원산지 확인 절차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북한의 원산지증명서 발급 창구가 바로 민경련. 한국은 세관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북 측으로 가는 한국산 제품의 원산지 증명을 담당한다.

인천세관에 따르면 민경련은 조선족 사업가들을 내세워 이들의 탈법을 부추겼다. 조선족 사업가들은 ‘대박’을 노리고 민경련 상주원들에게 줄을 댄다고 한다. 원산지 증명과 관련한 합의서가 체결된 이후 인천세관이 위장 반입으로 적발한 말린 고추 등은 민경련 소속의 무역회사로부터 ‘북한산’이라는 원산지증명서를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의 엉성한 관리 아래 민경련이 사실과 다른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외화벌이’에 나선 셈이다.



북한 당국의 조직적 개입 없이는 가짜 원산지증명서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인천세관 조사팀의 판단이다. 민경련이 허위 원산지증명서를 팔면서 농산물 밀수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 물론 북한 당국의 개입 없이 민경련 소속 무역회사 수준에서 가짜 원산지증명서 발급이 이뤄졌을 개연성도 있다. 또 북 측 무역회사 직원의 개인 비리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천세관 측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경련 베이징 총대표가 지난해 12월 말 윤원철에서 허수림으로 바뀐 것에 관심이 쏠린다. 인천세관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농산물의 검역증 내용을 요청하는 등 중국에 정식으로 협조 요청을 구한 뒤 대표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 또 민경련 베이징 사무소가 철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경협 창구가 민경련에서 다른 곳으로 바뀔지와 북한의 대남 경협 조직체계의 변동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민경련은 남한 경제단체와 각종 협력사업 및 교류를 해온 단체로 산하에 개선무역총회사(농산물 등), 삼천리총회사(소프트웨어 등), 광명성총회사(가공품 등)를 두고 경제 교류를 벌여왔다. 북한은 지난해 ‘6월9일 지침’에 따라 이전까지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을 담당하던 민경련의 상급기관으로 민경협(민족경제협력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했다.

허술한 통일부의 ‘북한산’ 반입 승인 통일부의 북한산 농산물 반입 승인 과정과 사후관리 절차도 엉망이었다. 통일부는 반입을 승인한 뒤 승인 내용대로 반입이 이뤄졌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으며, 반입 승인량을 산정할 때도 기초적인 사안인 북한의 생산량과 소비량, 잉여량조차 고려치 않고 반입 승인 물량 한도를 정했다. 투명성보다 남북 교역 규모 확대에 더 매달렸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대목이다.

콩나물 콩의 경우 한국의 연간 총 생산량의 8~9배에 달하는 북한산 콩나물 콩의 반입을 승인했으며, 2003년 인천세관에서 적발된 가짜 북한산 콩나물 콩 1730t은 정부가 국내 농민에게서 수매한 양(92t)의 19배에 이른다. 녹두의 경우도 2003년 국내 생산량이 1681t인 데 반해, 북한산 반입 승인량은 5600t에 이르렀다. 북한의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물량을 반입 승인해줌으로써 불법 행위가 일어날 여지를 준 셈이다.

‘남북 사이에 거래되는 물품의 원산지 확인 절차에 관한 합의서’에 따르면 원산지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엔 현지 방문조사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방문 확인에 나선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북 측의 통보 내용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 게다가 북한은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의 원산지 증명 발급 내용을 한국에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다. 민경련이 2003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남 측에 통보한 원산지증명서 발급은 2481건에 이른다.

통일부는 또 △연도별 북한산 농산물 반입 신청 건수 △반입 승인 건수와 반입 불허 건수 △품목별 반입 승인량 △실제 반입 여부 등에 관한 기본적 통계조차 제대로 꾸리지 않고 승인 과정을 밟아왔다. 이렇다 보니 반입 승인 내용대로 북한산 농산물이 한국에 들어왔는지 확인하기조차 어렵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산 농산물 반입 승인과 사후관리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다”면서 “반입 한도를 줄이는 등 드러난 문제점을 고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통일부는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산으로 위장 반입했다가 적발된 3개 업체가 남북협력기금에서 5억2500만원의 반입 자금을 대출해가는 것을 걸러내지 못했다. 대출을 받은 업체 중엔 통일부 담당 공무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문제를 일으킨 곳도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위장 반입이 드러나기 전에 대출이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통일부 남북교류 담당자의 부적절한 처신 통일부에서 남북교류를 담당했던 A 씨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에 오른다. 인천세관은 불법 반입으로 적발된 업체들과 통일부 담당자의 공모 여부를 수사하면서 불법 반입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모(33) 씨와 A 씨 사이에 금전거래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또 말린 고추 위장 반입 사건의 ‘총책’인 김모 씨와 A 씨가 중국 단둥에서 함께 어울린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인천세관은 통일부 직원의 공모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A 씨와 금전 거래를 한 이모 씨는 중국산 콩나물 콩 1730t과 녹두 1300t(60억원 상당)을 수차례에 걸쳐 북한산으로 위장 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중국에서 선박을 빌려(속칭 배떼기) 중국산 농산물을 실은 뒤 북한의 남포항을 경유해 인천항과 군산항으로 반입하면서, 북한산으로 수입 신고해 통관함으로써 관세 약 90억원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북한산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A 씨는 업자와의 금전 거래에 대해 “이 씨에게 운송비 1000만원을 빌려줬고 그 돈을 되돌려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장 반입 공모는 없었다고 하지만 업자와 금전 거래를 한 것은 공무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 A 씨는 또 2002년 3월24~30일 중국으로 출장 갔을 때 말린 고추 위장 반입 사건의 ‘총책’인 김 씨와 단란주점 등에서 어울리기도 했다. 중국산 농산물 위장반입 업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공무원에 대해 통일부는 최근 상대적으로 한직인 타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했다.

A 씨는 “단둥으로 출장 가서 금강산국제그룹 단둥지사장으로 활동하는 김 씨의 안내를 조금 받았을 뿐이고, 이 씨와의 금전 관계는 지인의 부탁으로 도와준 것으로 이 씨 측이 이자를 주겠다고 했으나 이자조차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대북사업의 전설’ 박경윤 회장의 역할은? 박경윤(71)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은 대북사업을 벌여온 인사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남북을 잇는 교량이 되겠다고 나선 해외교포가 적지 않으나, 그중에서도 박 회장은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상자기사 참조).

이런 박 회장이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한국에 들여온 사건과 관련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인천세관은 2003년 말 국내에 들어온 박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다. 금강산국제그룹 단둥지사장으로 행세하면서 중국에서 구입한 고추를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국내 밀수업자들에게 보내준 김모 씨(통일부 담당자와 단란주점에서 어울린 업자와 동일인)를 수배하면서 박 회장과 김 씨의 관계를 조사한 것.

박 회장은 인천세관의 질의에 “내가 오히려 피해자다” “김 씨가 내 이름을 팔고 다녔을 뿐 나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인천세관은 결국 박 회장의 관련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박 회장의 주장대로, 김 씨가 박 회장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회사 이름 등을 팔았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판단한 것. 취재팀은 중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박 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말린 고추 위장 반입 사건의 ‘총책’인 김 씨는 중국 내몽고 지역에서 수매한 말린 고추 385t(28억원 상당)을 북한 남포항으로 옮긴 뒤 ‘북한산’이라는 원산지 증명을 가지고 인천항으로 들여와 관세 24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수배 중이다.

김 씨는 단둥에서 영향력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에서 김 씨를 만난 정부 관계자는 “김 씨가 정보기술(IT) 분야 등에서 실제로 대북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금강산국제그룹 단둥지사장으로 행세했다”고 전했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김 씨가 검거돼야 말린 고추 불법 반입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3.22 477호 (p18~20)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