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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중국산 농수산물, 북한산으로 둔갑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중국서 손질 북한 거쳐 한국으로 반입 … 북-중 커넥션에 통일부 사실상 방조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북한산이라며 한국에 들어온 말린 고추가 사실은 북한에서 재배된 게 아닙니다. 북한이 아니라 단둥에서 손질한 중국산이에요, 중국산!”

2003년 6월, 낯선 제보가 인천세관에 들어왔다. 제보를 접한 인천세관 조사총괄과 이찬근 반장은 싸늘한 긴장을 느꼈다. 모종의 심상치 않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직감한 것. 단둥(丹東)은 북한 신의주에 인접한 북중 무역도시. 한국으로 반입되는 북한산 고추가 왜 단둥에서 손질된다는 것일까. 제보는 구체적이었다.

“단둥의 창고에서 중국산 말린 고추가 한국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납품 규격에 맞춰 꼭지를 따는 등 손질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북한의 남포항으로 옮겨져요. 한국 당국의 눈을 속이고 북한산으로 둔갑하는 거죠.”

2000년 6·15선언 이후 남북 간 교역이 급물살을 탄다. 남북 교역액은 1989년 1800만 달러 규모로 시작돼 2004년 6억9700만 달러로 늘었다.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교류 확대에 나섰으나, ‘주간동아’ 취재 결과 그 ‘속살’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고 있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북한산으로 위장 반입하다 세관에 적발된 농수산물 내용을 보면 ‘누구를 위한 교역인지’ 어안이 벙벙해진다(상자기사 참조). 중국산 콩나물 콩, 호두, 녹두, 참깨 가루, 북어채, 상황버섯을 비롯해 러시아산 북어까지 북한산으로 원산지 표시를 갈아입고 한국인의 먹거리로 식탁을 오르내렸다.



지난해 남북교역액 6억9700만 달러

2003년 7월 남북이 체결한 ‘남북 사이에 거래되는 물품의 원산지 확인 절차에 관한 합의서’가 시행된 이후에도 불법 반입이 끊이지 않아 더욱 충격적이다. 북한의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이하 민경련)가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한 뒤 한국에 통보하고 있으나, 불법반입 업자들은 민경련에 줄이 닿는 브로커를 이용해 허위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는 등 더욱 지능화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중국산 농산물에는 200~600%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데 반해, 북한산은 민족 내부 거래로 보아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규정대로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넘기지 않고 중국산을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직접 유통시킬 경우엔 관세를 물지 않아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잘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농수산물유통공사를 거치지 않고 시중에 유통된 양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인천본부세관 전경. 인천본부세관 조사총괄과 조사3반 수사관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위장 반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중국→브로커→북한→한국으로 향하는 농산물의 여정엔 구린내가 풀풀 풍긴다. 우선 북 측의 개입 없이는 중국산에 북한산이라는 원산지증명서를 붙이기 어렵다. 인천세관에 따르면 민경련은 조선족 사업가들을 내세워 업자들의 탈법을 부추겼다. 민경련이 북측에서 생산조차 안 되는 농산물에 대해서도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외화벌이에 나선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15쪽 기사 참조).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마약밀매 등으로 외화벌이에 나섰던 북한이 국가 위신이 떨어지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니까 적발돼도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국산 농수산물 밀수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서 ‘통일부의 북한산 물품반입승인서=돈’이라는 소문은 벌써부터 파다했다. 베이징(北京)과 단둥에 상주하는 수입업자들 사이에선 북한산 원산지 표시 허위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한 경쟁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조선족 사업가들은 ‘대박’을 노리고 원산지증명서를 받아내기 위해 민경련 상주원들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무역에 노하우가 없는 이들까지 “돈이 된다”는 소리에 위장 반입에 뛰어들었다. 인천세관에 의해 고발된 한 중소 수입업체의 대표는 송장(invoice)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의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뜨내기들까지 북한산 농수산물 수입에 나선 것을 보면 수년 동안 북한산 물품 반입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혀를 찼다.

앞서의 제보자는 중국과 내몽고에서 수집된 말린 고추가 중국인들의 손질을 거쳐 다시 북한 남포항으로 이동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검은 경로’를 줄줄 꿰고 있었다. 수법은 간단했다. 중국업자에게서 농산물을 구입한 뒤 브로커를 통해 민경련으로부터 북한산이라는 원산지증명서를 받아낸다. 그리고 허위 원산지증명서로 통일부의 눈을 속인 뒤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다.

무관세 이용 막대한 ‘시세 차익’ 너도나도 가담

제보자가 이처럼 경로를 꿰고 있는 이유는 그 역시 북한산 농산물을 한국으로 들여오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산 말린 고추를 수입하기로 마음먹고 금강산국제그룹 단둥지사장으로 행세하는 김모 씨와 계약을 맺은 뒤 계약금조로 돈을 건넸지만, 이 업체는 말린 고추 인도를 차일피일 미루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남북교류의 허점을 파고들어 돈을 벌려다 거꾸로 당한 셈이다.

중국과 북한을 조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행된 인천세관의 1년 5개월의 끈질긴 추적은 쉽지 않았다. 제보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인천세관은 지난해 중국산 말린 고추를 남포항을 거쳐 인천으로 들여온 4개 업체를 적발해 4명을 구속하고 6명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수법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4개 업체가 북한 민경련으로부터 발급받은 원산지증명서를 제출하고 통일부로부터 북한물품 반입 승인을 받은 뒤 중국과 내몽고 등에서 kg당 500원에 말린 고추를 수매하여 단둥의 창고를 거쳐 대당 400달러의 운임을 주고 탑차(깡통차)를 이용, 남포항으로 이동해 북한산으로 둔갑시킨 것.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북한산 수입 농수산물의 대부분이 들어오는 인천항.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인천세관의 통일부 선박담당 관계자가 “대두 500t을 싣고 북한 남포항을 출발해 부산항에 들어온 화물선이, 실은 남포항이 아니라 중국 단둥에서 물건을 실었다는 선적 기록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또 다른 제보 내용마저 집요한 추적 끝에 사실로 확인했다. 중국산 대두와 녹두 등을 북한 나진을 거쳐 강원 동해시 묵호항으로 들여온 밀수업자들을 적발해낸 것. 통일부로부터 북한 물품반입 승인 허가를 받은 업자들은 선박을 이용해 중국산 대두와 녹두 3030t을 중국에서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이송했다가 국내로 반입했다.

한 불법반입 업자는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민경협 산하 무역업체로부터 북한산 원산지증명서 등 6가지 서류를 t당 100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산이라는 원산지 허위증명서를 돈을 주고 샀을 뿐 아니라 실제로 물건이 북한에서 이동한 정황을 미뤄볼 때 북한 당국의 조직적 개입 없이는 중국산 농산물의 북한산 둔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인천세관 조사팀의 판단이다.

‘남북 사이에 거래되는 물품의 원산지 확인 절차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된 이후 인천세관에 의해 위장 반입으로 적발된 품목과 수량은 중국산 말린 고추 646t과 대두 1730t, 녹두 1300t에 이른다. 이들 농산물 중 상당수가 민경련 산하 무역회사로부터 허위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위장 반입된 말린 고추의 경우 금강산국제그룹 단둥지사장으로 행세해온 김모 씨가 총책임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금강산국제그룹(회장 박경윤)은 베이징을 무대로 남북한 문화 교류,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중개 창구 구실을 해온 곳으로, 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회장 등의 방북을 성사시킨 대북사업의 전설적 인물이다. 인천세관은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김 씨를 수배하고 박 회장까지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했다(박 회장은 김 씨가 자신과 무관하며 이름을 팔고 다녔다고 주장한다).

지난 5년 동안 북한산으로 위장 반입하다가 세관에 적발된 중국과 러시아산 농수산물은 모두 26건으로 총 440억5600만원에 이른다. 북한 및 중국의 폐쇄성과 이에 따른 수사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적발된 물량은 실제 밀수된 물량의 극히 일부로 볼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까지 공모했을 경우 북한산 농수산물로 들여온 것은 거의 중국산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 당국의 수수방관 탓에 업체는 폭리를 취하고, 농가는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칙대로라면 사회주의 국가와의 국영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고추, 대두 등 16가지의 북한산 농산물은 농산물유통공사를 거쳐 농협을 통해 유통되기 때문에 농가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에서 들여온 농산물 중 상당량이 시중에 불법 유통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부가 반입 승인한 물량과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인수한 물량의 차이에서도 부정 유출 가능성이 확인된다. 2003년 통일부는 2만6560t에 이르는 물량에 대해 반입 승인을 했지만, 농산물유통공사가 인수한 물량은 5518t으로 2만1042t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반입 승인된 물량이 모두 수입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계상의 오류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 차이가 최고 80% 가까이 나온 것은 일부 물량이 농수산물유통공사를 거치지 않고 유통됐다고 의심할 수 있다.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북한산 농산물의 시중 유통 문제가 거론됐다.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2003년도 반입 승인한 물품 중에서 20%만 농수산물유통공사에 인수됐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가격이나 품질이 맞지 않아 모두가 인수되는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정 장관은 이어 “2003년 초까지는 그런 허점이 있었다지만, 2003년 말 이후 들어온 농산물에 대해서는 농수산물유통공사로 100% 들어가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북한산 농수산물은 모두 중국산이다?

우리의 생활 속을 파고드는 북한산 농수산물들. 슈퍼에 진열된 채소류.

5년간 26건 440억원 적발 ‘빙산의 일각’

통일부는 인천세관의 집요한 추적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앞으로 북한 민경련으로부터 참깨 등 주요 물품을 얼마나 우리 측에 수출할 수 있는지 직접 통보받기로 했으며, 우리 측 사업자가 중국 등 제삼자를 거치지 않고 북한산 농산물을 직수입하도록 조처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중국 등 외국산 농수산물이 북한산으로 둔갑해 우리나라로 반입되는 경우가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또 직계약, 직수송, 민경련과의 원활한 협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위장 반입을 방지해나간다는 복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통일부의 이런 의지가 위장 반입 근절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농산물의 특징상 북한산 농산물과 중국산 농산물을 물리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산 종자가 북한에서도 많이 재배돼 국립 농수산물 품질관리원에서 일일이 검수하는 것도 해법이 되지 않는다. 민경련으로부터 수출 가능 물량을 통보받는 방안도 허위 원산지증명서 발급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애초부터 민경련이 중국산 농산물 위장 반입을 주도할 경우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곽대경 교수는 “중국 공안과의 협조 구축이 시급하며 관계 부처들의 투명한 정보 공유로 밀수업자들의 동향 파악과 함께 검사 전문인력을 전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 김운근 원장은 “쏟아져 들어오는 가짜 북한산 농산물 때문에 발전적 농업 교류가 방해받고 있다”면서 “농업 협력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남북교류인 만큼 더욱 솔직하고 진지하게 남북한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5.03.22 477호 (p14~17)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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