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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체험여행 | 경북 영주 ‘선비촌’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떠나요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떠나요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떠나요

순흥 선비촌의 전경.

중앙고속국도를 타고 충북 단양을 거쳐 죽령터널을 빠져나오면 경북 영주시가 나온다. 영주 IC를 지나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다. 거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순흥인데, 작고 야트막한 집들을 지나자 학자수라고도 불리는 적송들이 버티고 선 숲이 나타난다. 이 숲 안에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불리는 곳이다. 주세붕이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있던 사묘에 학사를 세우고 ‘백운동’이라는 이름의 서원을 꾸렸다. 이것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가 임금인 명종에게 새 이름을 지어줄 것을 건의하여, ‘소수’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임금에게 이름을 얻은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하는데,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기도 하다.

영주 땅은 유학의 본고장이다. 유생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사방 10여리를 가도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소수서원 지나 청다리라고도 불리는 제월교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설의 본원지이기도 하다.

청다리를 지나 산 아래 들판에 7년 전부터 예사롭지 않은 공사가 진행됐다. 그 공사가 지난가을에 끝났다. 산자락 아래 일곱 채의 기와집과 다섯 채의 초가가 강학당, 정자, 누각, 저잣거리, 주막거리, 대장간, 방앗간 등과 어우러진 마을로 태어났다. 그 마을이 영주시가 7년 동안의 공사로 만들어낸 선비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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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집에서 투호를 하고 있는 관람객.

짧지 않은 공사 기간이 말해주듯 선비촌은 뚝딱 흉내만 낸 곳이 아니다. 경상도 각처에 흩어져 있는 전통 가옥들을 1cm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재현해놓은 마을이다. 마을 위쪽으로는 유학을 가르치던 강학당이 있고, 그 위로는 소수박물관이 있다. 소수박물관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서로 연결돼 있어 입장권 한 장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강학당에서는 실제로 유교 강의가 진행되고 있고, 떡메를 직접 쳐가며 떡을 빚어 파는 저잣거리에는 문방구·도자기·옷감 등 전통적인 소품들을 파는 점방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다. 집들을 재현한 솜씨 하며 한갓진 조선의 골목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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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선비촌에서 한학을 배우고 있다.

조용한 가옥에 들어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방 안 허공에 영상이 떠오른다. 그 집에서 이루어지던 전통 생활의 일부를 보여주는 영상물이다. 가구들이 잘 차려진 방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 크기의 인형들이 앉아 자녀를 훈육하는 사설과 노래를 들려주기도 한다. 센서가 방문객의 기척을 알아채서 작동되는 첨단 시설로 유교의 전통 문화를 재현해 보여주는 것이다. 문인이나 무인, 혹은 중인이나 주민들의 집들에도 저마다 제기차기나 팽이치기, 장기, 널뛰기, 투호 등을 체험할 수 있게 설비해놓았다.

그런데 정말 반가운 것은 낮 동안 전시 공간이었던 가옥들이 밤에는 체험 공간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이 방은 일반인들에게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값도 아주 싸서 마당 딸린 두 칸짜리 초가를 통째로 빌리는 데도 모텔 숙박비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추운 날, 아이들과 함께 기와가 올려진 중인의 집 중 사랑채를 빌려 들어갔다. 약방으로 꾸며진 곳으로, 방 안에는 약장이 있고 서랍마다 약초들이 잘 정돈돼 있으며 마루 천장에는 약봉지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다.

해가 진 뒤 거리는 어둠뿐이다. 길가의 바윗돌이 조명등 구실을 하지만 도회의 거리와 사뭇 달라서 나갈 일도 나갈 곳도 없다. 텔레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작은 방에 오랜만에 모인 식구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간단한 도구로 할 수 있는 놀이나 끝말 잇기, 무서운 옛날이야기 하기 등. 그러고 있노라면 밖에서 죽을 사 먹으란다. “찹쌀떡, 팥죽, 호박죽”을 외친다. 팥죽을 한 그룻 시켰더니 무척 뜨겁다. 구름다리 건너 저잣거리에서 절절 끓던 팥죽이다. 밤이 더욱 깊어져 네 명의 가족이 2인용 방에 나란히 누웠다. 옛날 같으면 이런 방에 일곱 명은 잤다고 호언을 해놓고 자리에 누웠다. 일곱이 아니라 여덟 명도 잤겠다. 어찌나 외풍이 매섭던지 식구끼리 끌어안고 자느라고 좁디좁은 방이 오히려 남는다.

이러고 있노라니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실컷 복닥대본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문명의 이기가 사라지고 오직 한기와 어둠만 남아 있는 선비촌에서 보낸 하룻밤은 가족이 똘똘 뭉쳐 놀고 끌어안고 자는 가족용 MT 여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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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행사 참여자들이 지게를 지고, 널뛰기를 하고 있다

해가 뜨자 소세간에서 소세(梳洗)를 하고 나와 햇빛이 한가로운 길을 걸으며 널도 뛰고 제기도 차고 집집마다 들어가 구경도 하고 뒤란의 토끼와 수탉, 냇가의 오리떼와 마을 안쪽의 상여가 들어찬 곳집, 남자들이 대청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는 일종의 남성 전용 별장인 정사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알던 한옥보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훨씬 다양하고 쓸모 있게 지어진 집들은 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인의 생활과 직업이 느껴질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마을을 돌아 저잣거리를 구경하고 영주의 특산물인 풍기 인삼과 영주의 쇠고기, 순흥의 묵밥 등을 파는 주막거리에 들러 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영주의 선비로서 하루를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주시에는 이곳 말고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 많다. 읍내리 쪽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6세기경의 벽화고분과 불교의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부석사도 빼놓지 말고 돌아볼 곳이다.

영주시의 선비촌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문화체험 공간이다. 너무 소문이 나서 외국 손님치레로 바빠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기를 권한다. 조선이라는 과거로 돌아가 넓디넓은 우주 속에 작은 단칸방, 그 안에 가족들과 알곡처럼 들어앉아 하룻밤의 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여행 메모

선비촌 숙박 예약 054-638-7114/ 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소수서원 054-633-2608

부석사 054-633-3464

읍내리 고분벽화 054-639-6668





주간동아 2005.03.01 474호 (p84~85)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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