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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하나와 앨리스’

뻔뻔한 코미디, 순수한 감성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뻔뻔한 코미디, 순수한 감성

뻔뻔한 코미디, 순수한 감성
이와이 슈운지의 ‘하나와 앨리스’는 원래 네슬레사의 초콜릿 과자인 킷캣의 일본 판매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홍보용 인터넷 단편영화 시리즈로 기획되었다(이 영화에서 하나를 연기한 스즈키 안은 실제로 킷캣의 모델이다). 일본 네슬레의 공식 사이트를 통해 발표된 시리즈는 접속만 298만건에 달하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1년 뒤 이와이 슈운지는 오리지널 단편 시리즈에 추가 촬영분을 덧붙여 장편영화를 완성했는데, 여러분이 앞으로 극장에서 보게 될 영화가 바로 이 버전이다.

영화 주인공 하나와 앨리스는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단짝친구다. 하나는 짝사랑하는 고등학교 만담동호회 선배인 미야모토가 문에 머리를 찧어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자, 자신이 그의 여자친구이고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그 사실을 기억 못하는 것뿐이라고 우긴다. 하지만 미야모토는 하나의 거짓말을 거들며 옛 여자친구 행세를 하던 앨리스에게 빠져버린다.

‘하나와 앨리스’의 기본 설정은 뻔뻔스럽고, 만화 같고, 코믹하고, 유치하다. 이와이 슈운지 자신도 인터뷰에서 작정하고(그렇지 않았다면 기억상실증 조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고백하고 있고, 캐릭터의 깊이 있는 묘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오리지널 디지털 단편들은 아마 그런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다.

뻔뻔한 코미디, 순수한 감성
그러나 굉장히 노골적일 수도 있는 이 설정은 영화에서 생각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두 친구가 한 남자를 두고 싸운다는 설정은 영화의 기본 이야기를 끌어가긴 하지만 분명한 결말도 없고, 영화가 이 설정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클라이맥스인 앨리스의 오디션 장면 이후엔 감독과 주인공들 모두 남자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하나와 앨리스의 삼각관계와 거의 상관없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가볍게 삽입되는 앨리스와 아버지의 만남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홍보 목적의 디지털 단편 코미디 시리즈로 시작된 가벼운 기획이지만 ‘하나와 앨리스’는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세계에서 그렇게 벗어나 있지 않다. 영화는 여전히 일본식으로 예쁘고 정갈하며 몽환적이고 매정한 현실세계에서 살짝 벗어난 감성의 순수성을 추구한다.



영화의 뻔뻔스러운 코미디도 이 분위기를 심하게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코미디 덕택에 자칫 진부해질 수 있었던 그의 세계는 새로운 탐구 방향을 얻는다. 그리고 그 코미디도 생각만큼 유치하기만 하지는 않다. 막나가는 스토커들의 무시무시한 인격 조작처럼 보이는 설정이지만 기억과 추억에 대한 꽤 흥미 있는 사유의 가능성을 제공해주기도 하니까.



주간동아 2004.11.25 461호 (p86~87)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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